위기 상황을 내부 역량과 자원 점검할 좋은 기회로 활용
DB구축, 실무협의체 구성, 현장 네트워크, 교육 등 나서야

미국의 경영전략 컨설턴트 제니스 채폴트(Jennise Chaffold)는 경기침체(economic recession)란 자본주의 시장의 자연스러운 반복 현상이며 이 시기를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경쟁력과 지속성이 결정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경기침체기의 5가지 비즈니스 전략을 제시했다.
1. 비즈니스 상태 점검
경기침체는 기업의 효율성과 내부 자원을 점검할 좋은 기회다. 기업 운영, 상품과 서비스, 비즈니스 가치사슬 전반에 비효율적거나 과잉인 부분은 없는지, 그리고 더 큰 경기침체나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감당할 만한 내부 자원과 역량이 준비됐는지 파악해야 한다.
2. 변화 실행
비즈니스 상태를 점검해 변화가 필요한 부분을 발견하면 그것에 대한 실제적인 개선작업을 시도한다. 조직을 재구성하거나 직원을 재배치하고 상품과 서비스, 비즈니스 가치사슬의 과도한 부분을 줄이고 성장목표를 재조정하며 부족한 내부 역량과 자원을 보충해야 한다.
3. 내부 역량 극대화
실적 부진과 조직 재구성, 직원 재배치에 따른 구성원의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작업을 한다. 지나치게 불안을 조성하는 것은 유능한 직원들의 이직을 초래할 수 있다. 역량있는 직원들이 다음 단계를 준비할 수 있도록 안심시키고 역량 강화를 위한 시간과 자원을 제공한다.
4. 직원 요구사항 충족
경기침체기에 직원들에게 무리한 실적을 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경기침체기는 회사 시스템을 정비하고 내부 이해관계자의 불만을 완화하는 시기다. 그동안 쌓인 직원들의 불만사항을 경청하고 이의 개선 노력을 해야 한다. 임금인상처럼 당장 비용이 많이 드는 요구사항을 충분히 충족하기는 어렵겠지만 밀린 휴가 사용이나 자기 계발시간 제공, 팀웍을 위한 워크숍, 역량 강화 교육 등부터 시도해 볼만하다.
5. 위의 활동 반복
전략이 단번에 완벽한 성과를 내기는 힘들다. 위의 1번부터 4번의 사항들을 꾸준히 추진해 경기침체기를 기업 경영시스템 개선과 내부 역량 강화의 기회로 만들자.
비상경영 시기의 ESG는
글로벌 경기침체 상황에서 우리나라 기업들도 잇단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우크라이나 전쟁 지속 등으로 글로벌 경기는 쉽사리 회복되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대량해고 소식이 연이어 들려오고, 우리나라도 금융권을 중심으로 인력 감축과 조직 축소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ESG는 어떻게 될까? 수년 간 불어 온 ESG 열풍이 경기침체의 찬바람을 맞아 맥주거품처럼 훅~하고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진짜 ESG를 만드는 단련의 시간이 될 것인가? 아마도 입으로만 ESG를 하는 척 했던 기업들은 그 거품이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지만, 지속가능경영을 제대로 하려는 기업들은 진짜가 되기 위한 담금질의 시간이 될 것이다.
경기침체기에 ESG 실무자들은 '돈 안드는 ESG' 실행을 주문 받기 쉽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돈 안들고 되는 일이 어디있을까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경기에는 상대적으로 돈 적게 들이면서 지속가능경영 내실을 탄탄하게 다지는 실행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를 다음 5가지로 요약해 본다.
1. ESG DB를 구축하자
ESG 실무를 조금이라도 해 본 사람은 "ESG=Data" 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숫자가 받쳐주지 않는 ESG는 그린워싱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 딱 좋다. 데이터가 없으면 지속가능보고서 또한 쓸 수 없다. 게다가 ESG 정보공개 범위가 연결기준, 해외사업장 포함, Scope3까지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지속가능경영의 성패는 ESG 데이터 관리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ESG DB를 제대로 구축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 특히 유럽연합(EU)의 글로벌 리딩기업들처럼 ERP와 ESG가 실시간 연동되는 전산시스템을 구축할 경우 수억원에서 수십억원 들일 각오를 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제대로 가야겠지만, 당장 큰 돈 들여 ESG DB를 자동화·전산화하기는 쉽지 않다. 계열사 중에 ERP를 직접 프로그래밍하는 회사가 있다면 싼 값에 가능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 회사의 선택지는 MS 엑셀 밖에 없다.
2019년 영국 런던 유니레버 본사를 방문했을 때, 지속가능경영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실무 차원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돌아온 대답은 "지속가능경영과 관련된 모든 정보의 DB를 구축하는 일" 이었다. 유니레버의 지속가능성 최고책임자(CSO)인 레베카 마못은 '엑셀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의 실무적 실력가였다. 그녀는 이전에 수작업으로 진행한 엑셀기반 DB가 없었다면 현재와 같은 ERP 연동 ESG DB를 만들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상식적인 얘기지만 DB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수작업을 통해 쌓인다.
우리 회사에서 엑셀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찾아보자.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 엑셀로 ESG DB를 만들어 보자. 출발점은 지속가능보고서의 기본 가이드라인인 GRI 2021을 DB화하는 것이다. 회사에 엑셀 잘하는 사람이 없다면 당신이 이 기회에 엑셀의 왕 또는 여왕이 되는 건 어떤가.
2. 지속가능경영 원칙을 수립하자
MSCI, DJSI 등 글로벌 ESG 평가기관도 그렇고 한국ESG기준원(옛 기업지배구조원)도 그렇고, ESG 평가를 할 때 지속가능경영의 원칙과 정책이 존재하는지 살펴 본다. 대부분의 기업은 윤리경영 원칙, 환경경영 원칙 등으로 평가에 대응하지만 그 정도의 수준으로 좋은 평가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평가 뿐만 아니라, 회사 운영에서도 지속가능경영을 제대로 실천하려면 포괄적,구체적인 지속가능경영 원칙과 정책이 꼭 필요하다.
지난해 우리나라 주요 기업들이 ESG 영역에서 한 일 중에 하나가 『지속가능경영 통합 원칙』을 만든 것이었다. 글로벌 평가회사, 투자자, 거래처 등에서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지속가능경영 통합 원칙에는 (1)지속가능경영 비전 선언 (2)인권경영 원칙 (3)준법·윤리경영 원칙 (4)공정거래 또는 지속가능한 구매 원칙 (5)안전·보건 경영 원칙 (6)환경경영 원칙 등이 들어가야 한다. 또 ISO26000, UN의 기업과 인권이행 원칙, OECD의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등 글로벌 가이드라인의 수준에 맞게 제정되어야 한다.
이런 지속가능경영 원칙이 이사회의 검토와 승인을 받고 대외적으로 공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지속가능경영 통합원칙은 잘 하는 기업들의 원칙을 제대로 모은 뒤 우리 회사에 맞게 통합하고 정리하면 된다. 큰 돈 들여 컨설팅 받을 필요가 없다.
3. ESG 실무협의체를 운영하자
아직도 지속가능경영 실무협의체를 구성하지 않았다면 비상경영 시기에 돈 안들이고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ESG 실행 아이템 중에 하나를 빼먹고 있는 것이다. 실무협의체를 구성하고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으자. 교육도 함께 받고, 아이디어를 모으기 위해 워크숍도 자주 하고, 아이디어 공모대회도 열어 보자. 회사가 어렵고 정신 없이 바쁜데 맨날 모여서 말만 하다 말면 뭐하나 싶긴 하겠지만, ESG 실행에 관해 각 부서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파악하는 소득을 올릴 수 있다.
조금 더 나아간다면, 다른 기업 ESG 실무협의체와 공동 워크숍을 할 수도 있다. 완전 다른 회사면 모를까 같은 기업집단 내 계열사끼리 모여 서로의 상황을 공유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면 돈 적게 들이면서 뭔가 협업할 수 있는 일이 떠오를 수 있다. 공동 워크숍 끝나고 자장면에 탕수육 정도는 먹자.
4. 현장에 직접 가 네트워크를 만들자
돈 드는 일을 하기 어렵다면,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위한 조사와 연구의 시간으로 활용하자. 조사와 연구는 현장에서 시작하는 것이 정답이다. ESG 담당자들 중에 의외로 자사의 상품이 만들어지거나 서비스가 제공되는 현장을 가보지 못한 이들이 많다. 현장에 가서 ESG 필터를 장착하고 개선과제를 찾아보자. 눈으로 보고 현장에서 일하는 동료, 협력업체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자. 그리고 현장 근무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자. 현장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ESG는 성공하기 어렵다.
현장 방문은 꼭 우리 회사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회사가 뭘 좀 잘한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문을 두드리고 담당자를 만나러 가보자. 요즘 세대는 온라인으로 소통하다보니 현장 방문, 대면 미팅을 꺼린다고 한다. 꼰대 같은 소리겠지만, 이메일이나 SNS로 주고 받는 정보는 어려 제약, 한계가 있다. 몸소 찾아가서 보고 묻고 듣고 이야기를 나누자.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사무실에서 얻지 못한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현장에 갈 출장비도 주지 않는다고? 그 정도로 회사가 어려우면 계속 다닐지 말지 고민해 봐야 한다.
5. 몸소 ESG 교육을 해보자
회사에서 돈을 못쓰게 하면 머리를 쓸 수 밖에 없다. 머리를 돌리려면 기본 연료인 '지식'이 필요하다. 지속가능경영, ESG는 확실히 공부가 많이 필요한 분야다. 그런데 실무자들이 생각보다 공부를 안하는 것 같다.
지속가능경영, ESG 공부의 시작은 글로벌 가이드 라인이다. ISO26000, UN SDGs, OECD 가이드라인, GRI, SASB, UN 기업과 인권 이행지침 등은 시시때때 자꾸 들춰봐야 한다. 이런 가이드라인은 계속 업그레이드되기 때문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보고 또 봐야 한다.
ESG에 관한 책들이 넘쳐나지만 ESG란 제목을 단 국내 저자의 책들은 실무 활용도만 놓고 본다면 딱히 추천할만한 작품이 적다. 글로벌 가이드 라인만 꼼꼼히 공부해도 실무 면에서 차고 넘친다. 돈 주고 책 사보기 전에 돈 안들이고 다른 기업의 지속가능보고서를 많이 읽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특히 글로벌 리딩 기업들의 보고서를 많이 보면 영어도 늘고 ESG 실력도 는다.
그리고 본인이 ESG 실무자라면, 임직원 교육을 스스로 기획해서 시도해 보자. 물론 외부의 좋은 강사를 모시는 것이 좋겠지만 돈이 좀 든다. 그래서 스스로 ESG 교육을 기획하고 강의안도 만들고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보면, 내가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실력도 일취월장 할 수 있다. 처음부터 강사로 나서는 것이 부담스러우면 사내 ESG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주도해 보는 것도 좋다.
[유승권 이노소셜랩 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