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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경영? 문제는 MZ세대야!

  • 기자명 ESG경제
  • 입력 2023.03.19 22:39
  • 수정 2023.04.02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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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내 ‘멀티 유니버스’ 구축 못하면
MZ세대 다 떠나고 기업 미래도 없다
우리 기업은 평가를 ESG 전부로 착각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의 포스터.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의 포스터.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이 친구는 대학 졸업 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MBA를 마친 후 잘나가는 미국과 유럽의 컨설팅 회사, 은행, 금융회사를 두루 거치고 2년 전부터 유럽계 글로벌 투자회사의 한국 부지사장을 맡고 있다.

종로 뒷골목 김치찌개집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친구는 1년만에 만났는데 보자마자 쏘아 붙였다.

"(친구) 너, ESG 컨설팅 좀 잘해라, 본사에서 한국 기업들의 ESG 대응 현황을 보고하라고 해서, 투자 리스트에 올라있는 기업들의 지속가능보고서를 쭉 봤는데, 솔직히 걱정이 앞섰어. 쓸만한 보고서가 없더라."

"(나) 보자마자, 뭐래?"

우리는 오십이 되었는데도 말투는 고교 시절과 똑같다.

"(친구) 아무리 봐도, 우리나라 기업들이 ESG를 잘못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지 않고서야 지속가능보고서를 그렇게 천편일률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나) 천편일률적으로 만드는 컨설팅 회사들에게 맡기니까 그렇겠지."

"(친구) 너네 회사도 보고서 컨설팅 하잖아?"

"(나) 우린 겨우 3년 차라 아직 갈길이 멀지.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은데?"

"(친구) 얘기하자면 끝도 없지만, 우리 회사만 해도 투자 대상 기업이 얼마나 '지속가능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대응하는지를 아주 중요하게 보거든. 중요한 건 ESG라기 보다는 지속가능성 (sustainability)이라고. 예전에는 기업의 지속가능성이 자체 역량에 좌우되었다면, 지금은 외부 상황의 지속가능성이 간당간당하기 때문에 기업이 자체 역량이 아무리 좋아도 외부 환경변화로 한방에 훅 갈 수 있거든."

"(나) 그건, ESG 개론이지, 그 정도는 우리 기업들도 안다고 생각하는데... 도대체 뭐가 안되는 것 같은데?"

한국 기업들, 지속가능성 위기 잘 몰라

"(친구) 난 우리 기업들이 지속가능성의 위기를 잘 모른다고 봐.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으면 기후위기나 불평등 문제 같은 것을 피부로 느낄 수가 없으니, 이런 문제를 경영전략과 연결하지 못하는 것 같아. 또 한가지 심각한 것은 ESG를 평가 대응으로만 알고 있다는 거지, 내가 우리 팀원들을 시켜서 몇몇 기업의 ESG 담당자들을 인터뷰하라고 했거든, 인터뷰 보고서를 보니까, ESG를 다 평가대응 차원에서 하고 있더라고. 그리고 ESG팀 외에 다른 직원들은 ESG에 대해 아예 관심이 없다고 하더라고."

"(나) 그건, 사실이지. 너희 팀원들이 일을 제대로 하네."

친구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친구) 너는 ESG 컨설팅도 하고 학교에서 강의도 하는 녀석이 그렇게 남의 일처럼 말하냐? ESG는 평가대응이 전부가 아니라고, 전사적으로 해야한다고, 지속가능성을 상품과 서비스에 꽉꽉 채워야 한다고 목이 터져라 외치고 다녀야지."

"(나) 콩알만한 3부 리그 컨설팅회사에서 떠들어봐야 무슨 소용 있겠어? 이미 우리나라 ESG 판이 평가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너도 잘 알겠지만 정부도 그렇고, 교수들도 그렇고, 기업도 마찬가지야. 근본적 지속가능경영엔 관심이 없고 평가점수를 올리는데 급급하지, 우리 회사에 제일 많이 들어오는 컨설팅 의뢰가 KCGS(한국ESG기준원) 평가등급 올려달라는 거야."

"(친구) KCGS? 그 평가는 아직 갈 길이 멀던데."

문제는 MZ세대야

ESG경영이 뿌리를 내리고 내재화하려면 직장 내 MZ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불통과 갈등이 해소되어야 한다. 사진=픽사베이 제공
ESG경영이 뿌리를 내리고 내재화하려면 직장 내 MZ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불통과 갈등이 해소되어야 한다. 사진=픽사베이 제공

"(나) 한국 문화가 그렇잖아, 엄마 뱃속에서부터 평가당하고 경쟁하는 사회잖아. 윗 사람 설득하려면 평가를 강조할 수 밖에 없지, 그렇게라도 안하면 ESG에 관심갖는 기업 하나도 없을 걸?"

친구는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친구) 우리 회사도 그렇지만 글로벌 투자회사 치고 KCGS 평가를 중요하게 보는데가 어디 있어? MSCI도 볼까말까한데.“

"(나) 그럼, 뭘 보는데...?"

"(친구) 앞으로 점점 더 악화될 환경과 사회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적응할 것인가를 기업 경영전략에 제대로 현실적으로 반영하고 있느냐 없느냐 하는 따져보는 거지. 언론에 이미 보도되었지만 삼성도 2050 넷제로 선언은 했지만 단기·중기 실행전략이 두루뭉실 한거야. 그래서 외국 평가사에게 한방 먹은 거고... 우리같은 투자회사들이 볼 때 온실가스 문제에 별 생각이 없어 보이는 거고... 그렇다 보니 ESG투자 목록에 포함시키기가 어려운 거지."

"(나) 그래서?"

친구는 에너지와 식량위기 문제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 그만, 거기까지. 그런 전 지구적 얘기를 해봐야, 1~2년짜리 임기 밖에 안되는 우리나라 기업 임원들이 뭘 어떻게 하겠어? 자기 목이 거기에 달렸으면 몰라도."

"(친구) 그런 거시적인 문제를 신경쓰지 못하면, 눈 앞에 닥친 문제라도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여 줘야하는데 너무 안일하다고 봐."

"(나) 뭐가..?"

"(친구) 작년 말과 올해 초에 우리회사 지속가능성팀이 온라인으로 글로벌 컨퍼런스를 했어. 주제가 뭐였나면 『MZ세대와 멀티 유니버스』였지. 내용이 뭐였나면, 기존 세대는 유니버스가 하나라는 거지, 그런데 MZ세대는 멀티 유니버스고, 그래서 기업내에 멀티유니버스를 구축하지 않으면 MZ세대가 다 떠난다는 거야. MZ세대가 떠난 회사가 앞으로 지속가능성이 있겠냐는 거지."

"(나) 그래서?"

"(친구) 우리나라 기업들도 지금 새로 들어온 MZ 직원이 1년을 못 버티고, 아니 2~3개월 만에 그만두는 경우가 엄청 많아. 삼성도 작년에 신입직원 인재 유지가 큰 이슈였다고."

"(나) 다른 데도 마찬가지야. 공무원, 공기업도 그래."

"(친구) 그렇다니까? 우리나라 기업들이 10년, 20년 후에도 최소 지금 정도라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겠어? 머리 잘 돌아가고 쌩쌩한 젊은 친구들이 많아야 하는데, 지금 기업 인력구조를 봐. 어지간한 대기업들은 전부다 30대 후반이 평균 나이야. 5년만 있어도 40대가 평균 나이라고. 책임질 것 많은 40대들이 무슨 모험과 혁신을 하겠어. 다들 자기 자리만 지키겠지. 온실가스, 에너지, 식량문제에 신경을 못쓰면, 최소한 젊은이들이 들어와서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반은 마련해 줘야지. 안그래?“

친구는 MZ세대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선 기업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기업문화부터 확 바뀌어야 하는데,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사들에 비해 지금 세상 돌아가는 걸 너무 모르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

"(나) 그래. 기업 사람들 만나면, 실제 신입이 없다고 걱정이 많아. 10년째 부서 막내인 사람도 있고, 들어왔다가 금방 나간다네. 이렇게 되니까 회사 내에 노하우가 쌓이지 못하고 자꾸 외주에 의존하게 되고, 내부 역량은 점점 더 약해지고, 악순환이 반복되는 거겠지."

에브리 씽, 에브리 웨어, 올 앳 원스

소주 한 병과 김치전을 추가했다.

" (친구) 너, ‘에브리 씽, 에브리 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에올) ’봤냐 ?"

영화 '에에올'의 한 장면
영화 '에에올'의 한 장면

친구는 영화광이다. 개봉영화는 거의 다 본다. 고등학교 때에도 주말 자율학습 빼먹고 영화 보러 갔다가 담임교사한테 혼난 적이 있다. 우리 둘은 양자경, 임청하, 왕조현, 그리고 장만옥 중에 누가 최고인지 말 싸움을 자주 했다. 친구는 왕조현이었고 나는 장만옥이었다.

" (나) 유튜브로 봤지."

" (친구) 그런 건 좀 영화관에 가서 봐라. 스마트 폰으로 영화가 보이냐?"

" (나) 집에서 모니터로 봤어."

" (친구) 내 생각엔 에에올이 지금 상황을 아주 잘 묘사하고 있는 것 같아. 프레임은 멀티버스인데 결국 세대 간 갈등이 핵심이잖아."

" (나) 그렇지..."

"(친구) 우리 세대까지는 유니버스가 하나 였잖아.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장 들어가 결혼하고 집 사고 차 사고 애들 과외시키고 시집장가 보내고. 인생의 선과 기준이 하나였던 거지. 그 하나의 선을 얼마나 성실하게 잘 따라가느냐 하는 것이 인생의 성패를 좌우했고."

"(나) 그래서, 너는 성공한 인생, 나는 덜 성공한 인생?"

"(친구) 1년에 겨우 두 번 애들 보는게 뭔 성공이냐. 맨날 햇반에 컵라면 먹는게 뭔 성공이냐고."

친구의 가족은 미국 뉴욕에 살고 있다.

"(친구) 중요한 건, 에에올에 나온 것 처럼 MZ세대는 멀티 유니버스라는 거지. 우리네 세상에서 삼성맨은 회사에서도 삼성맨, 집에서도 삼성맨, 주말에도 삼성맨, 휴가가서도 삼성맨이잖아. 그런데, 요즘 애들은 회사에서만 삼성맨이고 퇴근해서는 유튜버고, 주말에는 바리스타고, 사진작가고, 이런 거지. 이걸 윗 세대는 이해를 잘 못해요. 우리 세대는 회사 일 잘해 보려고 책도 읽고 학원도 다니고 심지어 자기 돈으로 대학원도 다니고 막 이랬는데, MZ세대는 안 그래요. 회사에서 임원 된다는 게 그들 인생의 성공을 의미하지 않으니까. 회사 유니버스 외에도 다른 유니버스가 많으니까, 굳이 회사에서 성공하려 애쓰지 않는 거지."

"(나) 그게 ESG랑 무슨 상관 있는데."

"(친구) 당연히 아주 큰 상관이 있지. 그 정도 분석도 못하면서 무슨 ESG 컨설팅을 하냐."

"(나) 한 수 알려주셔."

"(친구) 미래 인재 확보가 안되면 ESG가 무슨 소용이야. 그리고, ESG에 S를 보면 회사 구성원이 일하기 좋은 직장을 만들고 이들이 지속가능경영을 잘 할 수 있도록 내재화해야 한다고 나와 있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큰 상관이 있지."

"(나) 그러니까, 자네 말은 우리 기업들이 MZ세대가 떠나지 않고 일을 잘 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 ESG에서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이라는 거지?"

"(친구) 딩동댕! 그런 기업이 되려면 당연히 환경 문제나 사회 문제를 높은 수준으로 콘트롤 할 수 있어야 되는거야. MZ세대의 눈이 그렇게 높으니까."

김치찌개 집을 나와 근처 카페에서 유럽과 미국 투자회사들이 우리나라 기업들의 ESG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얘기를 들었다. 생각보다 심각했다. ESG 컨설팅과 강의 한답시고 다니는 내가 부끄러웠다. 친구는 "잘 하라"고 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한다고 자칭하는 어떤 ESG 월간지는 최근 호에 우리나라 기업들의 ESG 전략이 고도화 단계에 이르렀다고 썼다. 내 생각엔 어림없는 소리다.

[유승권 이노소셜랩 이사, ESG센터장]

유승권 이노소셜랩 이사 (ESG센터장).
유승권 이노소셜랩 이사 (ESG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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