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 밸런스 방식으로 과세 명확성 끌어 올려
업계 "환영"...시민단체는 "세율 대폭 올려야"
[ESG경제=권은중 기자] 영국은 지난해 EU(유럽연합)와 함께 세계 처음 플라스틱 포장재를 사용한 생산기업에 세금을 부과하는 ‘플라스틱 포장세’를 도입했다. 그런 영국이 최근 관련 세제 개편을 추진해 주목된다.
영국 기업통상부(DBT)는 지난달 27일 연례 조세 정책 보고 행사에서 제품 포장에서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기업에 부과하는 플라스틱 포장재세(plastic packaging tax) 적용 범위를 더 늘리고 지속적으로 제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렇게 늘어난 세수는 플라스틱의 재활용 방안 연구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관련 논의는 올해 하반기부터 시작해 올해 말 관련법을 개정할 계획이다.

영국은 지난해 4월부터 플라스틱 포장재의 생산과 공급 과정에서 일정 비율 이상 재생원료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 플라스틱 포장재 세금을 부과해 왔다. 부과 대상은 30% 미만의 플라스틱 재생원료를 포함한 포장재로, 영국 국내 생산품은 물론 수입 제품 모두에 적용됐다. 요율은 1톤 당 200파운드(약 33만원)다.
매스밸런스 방식, 재활용 인정 주목
기업통상부는 이번 세제 개편의 핵심으로 플라스틱 포장에 포함된 화학적 재활용 성분의 비율을 계산하기 위해 ‘매스밸런스 방식(mass balance approach, 물질수지 접근법)’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매스밸런스 방식’은 특정 포장의 실제 플라스틱이 재활용될 수 없더라도, 일부 재활용 성분이 사용될 경우 전체 내용물을 재활용된 것으로 인정해주는 방식이다.
매스 밸런스 방식은 화학 제품 생산 과정에서는 단일 원료가 아니라 다양한 원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매 단계마다 친환경 원료 함유 비율을 복잡하게 따지기보다는 공급망 전체를 놓고 감시와 통제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를 따진다. 이 방식은 노동자 인권과 환경 보호 인증을 받은 카카오나 야자유 같은 제품 사용의 국제적 확대를 위해 유럽 기업들이 최근 도입했다.
예를 들면 매스 밸런스 접근법에 따르면, 비인증 카카오와 인증 카카오를 각각 50% 비율로 섞어 초콜릿을 100톤을 생산했을 경우, 기존 인증제도와 달리 50톤의 100% 인증 카카오 초콜릿으로 표기할 수 있다. 소비자들은 기존 인증 방식과 달리 자신이 먹는 초콜릿에 몇 %의 인증 카카오가 사용됐지는지를 확인하지 않고도, 제3세계 노동자 인권이 보호받은 상태에서 생산된 카카오 농장을 지원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영국 정부는 이런 접근법으로 확대된 세수를 비닐봉지나 포장랩과 같이 플라스틱 필름이나 종이, 알루미늄 호일 등 여러가지 재료가 섞인 포장재(플렉시블 플라스틱)나 재활용이 어려운 플라스틱 제품에 대한 재활용 연구에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플라스틱 포장세, 1년만에 5000억원 육박
이번 영국 정부의 발표에 대해 영국 플라스틱협회(BPF)는 “이번 방식은 플라스틱 재활용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며 “현재 이 세금 부과가 명확하지 않아 많은 기업의 영국 투자를 막았다”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와 관련, 영국 국세청(HMRC)는 플라스틱 포장세 도입 후 9개월만에 약 2억800만파운드(약 3500억원)를 징수했다고 밝혔다. 또 도입 1년만에 약 2억7700만파운드(약 4668억원)을 세수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렇지만 영국 환경단체는 이번 정책에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징수한 세금이 정부 추정치를 초과했다는 것은 플라스틱 포장의 재활용이 갈길이 멀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환경단체인 플라스틱 플래닛(Plastic Planet)은 ▶세율의 두배 상승 ▶제품에 필요한 재활용 성분의 기준을 높여 면세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유럽연합(EU)도 지난해 플라스틱세를 도입하고 재생원료 사용 의무화를 진행했다. 특히 최근 EU는 재생원료 사용 의무화뿐 아니라 페트, 기타 폴리머, 일회용 음료병, 기타 포장 용기 등에 대해 재활용 최소 함량 규제를 강화하는 ‘포장 및 포장 폐기물 지침’ 개정안을 도입해 규제 수준을 높이고 있다.
한국 배출량 세계 3위인데 재활용률은 13%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플라스틱 포장재에 대한 규제나 관련 정책이 제대로 실시되지 않고 있다. 원료 생산자에게 일정 비율의 재생원료 사용 의무를 부과하는 ‘자원순환기본법’ 개정안에 대한 협의가 진행 중인 상황이다.

또 플라스틱 포장재에 대한 기준이 불분명해 플라스틱 폐기물 재활용률이 낮다는 것도 문제점이다. 2021년 우리나라 플라스틱 폐기물 재활용률(발생량 대비 재활용량 비율)은 약 73%이지만 EU기준을 적용하면 22.7%에 그친다. 특히 일회용 플라스틱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 생활계 플리스틱 폐기물의 재활용률은 13%에 불과하다.
EU는 플라스틱의 물성을 변화시키지 않고 재사용하거나 가공해 이용하는 ‘물질 재활용’만 재활용으로 간주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열적 재활용’을 포함시킨다. 열적 재활용은 폐플라스틱을 발전 시설, 시멘트 공정, 보일러 등의 대체 연료를 포함한다.
재활용이 불가능한 비닐봉지나 필름류의 소각 시 유해물질이 배출돼 친환경적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미국 국립과학공학의학원(NASEM) 보고서 자료를 보면, 2016년 기준 우리나라는 1인당 플라스틱 폐기물 배출량 세계 3위로 1인당 연간 88kg에 달하는 플라스틱 폐기물을 배출하고 있다.
이와 관련 우리 정부는 올해부터 ‘자원순환분야 업무계획 중점 추진과제’를 통해 페트(PET) 연 1만톤 이상 생산 업체에 재생원료 3% 이상 사용 의무를 부과하기로 했다. 2030년까지 재생원료 사용 비중 목표치는 30%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