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선진국의 중국 프레임 변화…"탈동조화(디커플링) 불가능"
EU집행위원장 4월 방중 후 확산…중국 반발 “세계 지배 집착”

[ESG경제=김강국 기자] 서방 국가들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등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위협을 논할 때 쓰는 표현이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에서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으로 바뀌고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중국을 향해 '디리스킹'이라는 말이 본격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3월 말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중국을 방문하면서다. 당시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요구한 디커플링을 유럽이 왜 안 따를 것인지를 설명하면서 "나는 중국으로부터 디커플링하는 것이 가능하지도, 유럽의 이익에 맞지도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관계는 흑백이 아니고 대응 역시 흑백일 수 없다"며 "이것이 우리가 디커플링이 아니라 디리스킹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이후 독일·프랑스 외교 당국은 디리스킹을 국제 구도로 끌고 들어갔고, 아시아 국가들도 수십년 동안의 성공적인 경제적 통합을 해체하려는 것이란 점에서 디커플링이 '너무 나간 것'이라는 입장을 미국 측에 전했다고 NYT는 설명했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4월 27일 정책연설에서 "우리는 디커플링이 아니라 디리스킹을 지지한다"고 말하며 디리스킹이라는 용어는 점점 퍼져나갔다. 설리번 보좌관은 "디리스킹은 근본적으로 탄력적이고 효율적인 공급망을 확보해 어느 국가의 강압에 종속될 수 없다는 점을 보장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도 G7 정상회의에서 "중국은 갈수록 국내에선 권위주의적으로, 국외에선 공세적(assertive)으로 바뀌고 있다"고 날을 세우면서도 "(G7의 대중국 연대는) 디커플링이 아니라 디리스킹에 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용어 변화를 두고 중국을 바라보는 서방 내 복잡한 시선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진영이 전방위적 중국 고립 전선을 시도하고 있지만, 유럽 일부 국가가 현실적 이해관계 등을 고려해 차별화된 태도를 보이는 등 단일대오 균열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G7 정상회의 중·러 위협 공동대응...양국은 “국제평화 저해” 비난
NYT는 디리스킹이 대중국 외교 영역에서 널리 쓰이는 용어가 된 것은 민주주의의 진영이 맞닥뜨린 도전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의 위험 행동을 방지하면서도 강압 위협이 충분히 줄어들 정도로 중국과의 관계를 끊어내는 목표는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다만 서방이 쓰는 용어가 디커플링에서 디리스킹으로 바뀌었다고 해도 중국 입장에서는 별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것이라고 NYT는 짚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지난달 말 논평에서 "디리스킹이 디커플링을 감추려는 것일지 모른다는 느낌이 있다"며 "(미국의 접근법이) 세계를 지배하는 지위 유지에 관한 불건전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19~21일 사흘간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정상들은 대러시아 제재 수위를 높이고 중국 위협에 공동 전선을 구축하기로 하자 표적이 된 중국과 러시아는 "G7이 국제평화를 저해한다"며 맹비난하고 나섰다.
앞서 G7 정상들은 20일 공동성명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유엔 헌장 등 국제법을 심각하게 위반한 것으로 가장 강한 표현으로 다시 한번 비난한다"며 추가 제재를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에 대해선 중요 공급망에서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고 경제적 강압에 대항하는 새로운 플랫폼을 창설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G7이 러시아와 중국을 억제할 목적에 "그들만의 위대함"에 빠져있다고 비난했다.
중국 외교부 역시 성명에서 G7 정상들이 오히려 "국제 평화를 저해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중 외교부는 "G7이 미국의 경제적 강압에 공범이 되지 말라"고 촉구하며 "(중국에 대한) 대규모 일방적 제재와 '디커플링(공급망서 배제)', 공급망 교란 행위는 미국을 진정한 경제적 강압자로 만드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국제 사회는 이념과 가치에 따라 세계를 분열시키려는 G7 주도의 서방 규칙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앞으로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미국의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 지리경제학 센터의 조시 립스키 수석 총괄은 CNN에 "2년 전만 해도 G7 정상들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중국을 겨냥한 성명에 서명한다는 건 믿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핵심은 G7이 중국에 더 집중하고 조율된 정책 접근 방식을 유지하려고 노력할 것임을 보여줬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