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은 자유시장경제 시스템이다. 재래시장, 농수산물시장, 주식시장, 외환시장, 부동산시장 등 경제활동이 모두 시장을 통해 이뤄진다. 시장에서는 거래가 이뤄지고, 가격이 형성된다. 거래 대상의 가치(value)를 가장 잘 반영하는게 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이다. 가격이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사람들은 엉터리 가격이 판치는 상황을 ‘정의가 실종된 사회, 불공정한 세상’이라고 인식한다. 정의와 공정이 사라진 시장경제는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낙후되고 불공정한 시장을 지닌 국가가 발전한 사례는 역사상 없었다. 그렇다면 자유시장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가치는 어떻게 평가돼야 할까? <ESG경제>는 ‘지속가능한 사회와 공정한 가치’라는 주제로 가치 평가의 중요성과 관련해 박봉욱 감정평가사의 기고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값싼 해외 여행상품, 길거리의 싸구려 액세서리, 시장에서 떨이로 파는 과일, 학교 앞 좌판에서 파는 장난감...’
많은 사람이 ‘값이 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선뜻 구매했다가 뒤늦게 후회한다. 지나칠 정도로 값싸게 산 물건은 대체로 품질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 때 내뱉는 말이 바로 ‘싼 게 비지떡’이다.
이 속담은 조선 시대에 먼길을 떠나는 선비에게 ‘주모가 싸 준 것이 콩비지로 만든 떡(비지떡)’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찹쌀로 만든 떡은 찰지고 쫀득하니 맛도 좋고 영양도 풍부하지만, 비지에 쌀가루나 밀가루를 섞어 둥글넓적하게 부쳐 낸 비지떡은 아무래도 퍼석한 것이 맛이나 영양이 덜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값이 비싸다고 해서 품질이 우수할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비싼 물건을 쓰면 자신의 경제 수준도 높아 보일 거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터무니없이 비싸게 물건을 파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경우를 흔히 ‘바가지를 씌운다’고 한다. 소비자로는 ‘높은 가격, 낮은 품질’의 물건을 샀으니 억울하게 손해를 보게 된다.
가격과 품질이 모두 유사하다면 소비자는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할까?
서비스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좋은 품질에 적절한 가격을 매기면 해당 업계나 소비자 모두에게 좋을 텐데, ‘싼 게 비지떡’인 경우나 ‘바가지를 씌우는 사례’가 심심찮게 나타난다.
몇 년 전 감정평가업계의 중소평가법인 대표가 필자에게 이렇게 물어보았다. “여기 텔레비전 두 대가 있습니다. 한 대는 대기업에서 만들었고, 다른 하나는 중소기업에서 만들었어요. 제품의 질은 비슷해 보이고 가격이 똑같으면 어느 제품을 사시겠습니까?” (필자가 쉽게 답을 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변호사가 사건 수임료로 살아가듯이 감정평가사는 평가수수료로 살아가는 직업이다. 즉 감정평가를 수행할 때 수수료 규정이 있으며, 이는 감정평가액에 연동하여 정해진 금액을 받아야만 하는 강행규정이다. 이를 어기면 법규 위반이 되어 평가회사나 평가사가 징계를 받게 된다. 감정평가업계는 수수료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업계이고, 모든 평가사는 이 수수료 규정을 준수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반 국민이 감정평가가 필요할 때 대형법인과 중소법인, 개인 사무소에 의뢰할 수 있는데 어느 곳을 이용할 것인가? 위에서 예시된 질문의 답처럼 아무래도 대형회사에 눈길이 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실제로 업계 내에서 업태별, 즉 대형 중소형 개인에 있어 평균 수입의 차이는 적지 않다. 수수료는 지켜야 하지만 시장의 수요는 대형으로의 쏠림이 나타나는 것이다. 변호사 세계에도 이런 현상이 심하게 나타나는데 이것은 공정한 게임인가?
적절한 수수료 체계 위해 대형·중소형·개인 등 업태간 새로운 규칙이 필요하다
서비스 시장에서 수수료 체계가 무너지면 시장 질서가 흔들리고 해당 업계는 공멸할 수밖에 없다.
필자가 감정평가협회의 기획이사로 근무할 당시에는 수수료 규정이 지켜야 하는 규정이었으나 강행규정은 아니었다. 감정평가업계 전체의 공생을 생각해야 하는 기획이사의 큰 업무 중의 하나는 ‘(과다한) 수수료 할인’을 억제하고, 과다한 할인이나 불공정한 거래를 색출해서 시장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기획이사 임기를 마치고 현업에 복귀하였을 때 그동안 거래해온 모 대기업 담당자가 평가를 문의하면서 수수료가 얼마가 될 것인가를 묻는 전화를 걸어왔다. 공정수수료를 기준으로 당시 통상 할인율 50% 정도를 적용해 금액을 알려 주었다. 그는 “이사님에게 제일 먼저 문의한 것입니다”라며 전화를 끊더니 이틀 뒤 다시 전화를 걸어와서 “모 평가회사에서는 이사님이 부른 가격의 20% 수준 (공정수수료의 10% 수준)에서 해준다고 합니다”라고 하는 게 아닌가. 필자는 그 대기업으로부터 더 이상 감정평가 의뢰를 받지 못했다.
다른 직업과 마찬가지로 감정평가사가 생활을 유지하고 품위를 지키면서 국가가 부여한 ‘공정한 감정평가권’을 행사하려면 적절한 수수료 체계가 유지되어야 한다. 그것은 업계에서 일하는 모든 감정평가사의 공통되는 의무이고, 궁극적으로 고객을 향한 서비스 품질을 지키는 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시장 수요가 큰 회사와 그에 따른 큰 담보능력으로 향한다면, 그 현실과 수수료 준수의 당위성 사이에 틈이 발생하고 종국적으로는 ‘합리적으로 마련된 수수료 체계’를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업계의 ‘공정한 상생’을 이루려면 업계 내에서 중소형 회사나 개인을 배려하는 또 다른 규칙이 필요하다고 본다.
신규 진입하는 공인 자격자가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조건은?
회계업계나 변호사업계도 마찬가지겠지만 국가자격증을 지닌 감정평가사들의 ‘공정한 상생’이 되기 위해서는 기성 평가사와 신입 평가사 간의 간극을 좁히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요즈음 필자의 사무실에서 오후 6시가 되면 복도에서 우당탕탕 소리가 난다. 근무시간이 종료된 직원들이 서둘러 퇴근 타이머를 찍고 뛰어가는 소리다. 미국 영화를 보면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교실 문 앞에서 시간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벨이 울리면 뛰어나오는 것과 똑같다. 필자가 평가업계에 처음 진입하였던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자료를 입력하는 여직원이 자정을 넘어 새벽까지 평가사들의 업무를 도와줬다. 물론 시간외 근무수당은 지급되었다.
그러나 요즘은 ‘저녁 있는 삶’을 중시하는 근무환경과 MZ 세대의 워라밸리즘에 따라 웬만히 급한 경우가 아니면 야근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있고 나서 사무실을 둘러 보면 저쪽의 한 그룹은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들이 일하는 열기는 어둠을 뚫는다. 새롭게 진입한 감정평가사들과 소속 평가사들의 그룹이다. 새로이 업무를 배우고 회사 내에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일해야 한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회사별로 다르겠지만 후배 평가사들이 자부심을 지니고 적절한 보상을 받고 있는지는 선배 평가사들이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라고 보인다.
자격자는 공인 자격 그 자체로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공정한 선진 사회
필자가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친구의 아들은 미국에서 수의사를 하고 있다. 한국에서 수의과를 졸업하고 미국 수의대학에서 1년의 실무 과정을 마치면서 미국 수의사 자격을 취득하였다.
필자는 새로 미국 수의사가 된 사람이 미국에서 자격을 취득함과 동시에 취업하는 데 있어 기존 수의사들과 큰 차이가 없는 대우를 받는 다는 이야기에 놀랐다. 신규 진입 수의사가 10만 달러를 받으면 경력 수의사는 13만 달러를 받는다는 것. 모두 연봉의 5배 정도의 수익을 올려야 하고 그 수익을 초과하면 인센티브가 부여되는 것은 동일하다. 경력 수의사라도 인센티브를 받으려면 신입 수의사보다 많은 수익을 올려야 하는 구조였다. 물론 자격자 사회에서 수요와 공급의 역학관계에 따라 신규 진입자와 기존 자격자 간에 대우가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최소한 자격에 대한 자부심을 지니고 일을 할 수 있도록 기존 선배 자격자들이 배려하는 환경이라는 게 매우 인상적이었다.
신규 진입자들이 자부심 지니고 일하는 환경 만들어야 업계 미래가 열린다
최근 제34회 감정평가사 합격자가 발표됐다. 총 204명이 합격했고 그 중 20대가 118명으로 57.8%를 차지했으며 최고령자는 50세였다. 모든 업종이 그렇듯이 갈수록 젊은 후배가 많이 감정평가사의 길로 들어오고 있다. 이들이 감정평가사로서 긍지를 가지고 현업에 임할 수 있도록 선배들이 더 많은 배려를 하여야 할 것이며, 이들이 감정평가의 업역을 넓히고 새로운 기법들을 적용해 나갈 때 필자가 일하는 감정평가업계의 미래도 밝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최근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ESG(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열풍이 뜨겁다. 여기서 사회적 책임이라는 게 사실 ‘공정한 상생’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감정평가업계에서도 대형회사와 중소회사 및 개인 간, 기득권을 가진 선배와 신규 진입하는 후배 간에 서로서로 배려하는 게 바로 사회적 책임이 아닐까 싶다. 국가가 부여한 ‘감정평가권’을 공정하게 집행하면서 건강한 감정평가업계가 되는 게 고객들에게도 궁극적으로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밑바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그 옛날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불렀던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
<박봉욱 미래새한감정평가법인 이사, 감정평가사>
*박봉욱 필자는 현재 미래새한감정평가법인 이사(감정평가사)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 경제학과와 미국 서폭대 소여 비즈니스스쿨(Suffolk Business School, MSF, 미국 보스턴 소재)을 졸업했다. 대신증권과 삼성에버랜드에서 근무한 바 있으며, 한국감정평가사협회 기획이사를 역임했다.


절은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시네요
꼭 당선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