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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근절과 예방 위한 공정평가 시스템은?

  • 기자명 ESG경제
  • 입력 2023.12.21 15:03
  • 수정 2023.12.22 19:4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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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의도' 단계부터 막으려면 ‘중립성 담보하는 평가제도’ 도입해야

박봉욱 미래새한감정평가법인 이사
박봉욱 미래새한감정평가법인 이사

연말을 맞아 지인이 좋은 글귀를 보내왔다.

“한번 무너지면 다시 쌓을 수 없는 게 3가지가 있어요. 그건 신뢰, 우정, 존경이지요.”

세 가지 모두 늘 접하는 어휘들이지만, 한 해를 보내는 연말이라는 시점에서 왠지 마음을 찡하게 울렸다. 나는 ‘신뢰, 우정, 존경’이란 가치를 지키기 위해 2023년을 잘 보냈던 것일까?

필자의 직업 특성상 특히 신뢰라는 단어를 두고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올해 무엇보다도 집과 관련한 ‘전세사기’가 우리 사회의 신뢰를 밑바닥부터 허물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과연 ‘대한민국은 선진국인가?’라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사기(詐欺)의 사(詐)는 ‘말씀 언(言)’과 ‘잠깐 사(乍)’가 합해진 글자입니다. 기(欺)는 기만(欺瞞)이란 단어에서 보듯 ‘속이다’는 뜻이다. 사기는 정확하게 ‘말로 잠깐 사이에 속이는 것’ 즉 거짓말이라는 의미다. 이러한 사기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일어나는 범죄행위가 되었다. 2015년 이후 국내 범죄 중 부동의 1위가 사기다. 2015년 25만7,000여 건이었던 사기 발생 건수는 2021년 29만2,042건으로 늘었다.

전세사기는 참으로 나쁜 사기…삶의 터전 빼앗고 희망 사다리 무너뜨려

필자는 사기 중에 참으로 나쁜 사기가 ‘전세 사기’라고 여긴다. 서민과 젊은 세대가 어렵사리 모은 돈으로 만든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고,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희망(希望)의 사다리’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전세사기를 당한 여러 세입자가 절망에 빠져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일도 벌어졌다.

‘신뢰(trust)’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선진사회는 사기범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내린다. 미국에서 650억 달러(85조원)의 폰지사기를 벌인 버나드 메이도프는 징역 15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2021년 감옥에서 죽었다. 가상화폐 테라·루타 사태의 핵심인물인 권도형은 현재 몬테네그로에 있는데, 미국으로 인도될 경우 100년 이상의 징역형도 가능하다고 한다.

사기범에 대한 엄벌 여부는 사법당국의 영역이다. 국내에서는 사기범 처벌 기준이 약하다는 여론이 강하지만, 무엇보다도 사기범을 아무리 강력하게 처벌해도 피해자 구제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애초부터 피해자들이 생기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전세를 이용하는 서민과 젊은 세대가 이를 이용해 안심하고 보금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게 급선무일 것이다.

전세사기 피해 20~30대가 70%…사회초년생과 서민이 집중 표적

국토교통부의 발표에 따르면 정부에서 전세사기 피해 접수를 받기 시작한 2023년 6월부터 10월 말까지 4개월 동안 접수된 피해 건수는 총 1만 건이 넘었다. 9월 말부터 11월까지 전세사기로 의심되는 거래 106건에 연루된 피해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20~30대로 알려졌다. 30대가 50.9%로 가장 많았고, 20대가 17.9%였다.

전세 사기의 피해자가 70%가 20~30대 청년이라는 조사결과는 청년들이 상대적으로 사회경험이나 부동산 거래 경험이 적어 부동산중개사가 제공하는 정보를 그대로 믿고 거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피해 사례를 보면 임차 보증금이 2억 원 이하가 80%를 차지할 만큼 가장 많은 것으로 보아 사회 초년생 또는 중하위 소득계층이 전세사기의 집중 표적이 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

전세사기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으며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우선 주택 시세에 육박하거나 시세보다 높은 임대보증금으로 계약 후 매도하는 경우이다. 부동산중개사와 집주인이 작당 모의하여 고의로 시세를 부풀린 후 세입자와 허위계약서를 작성한다. 이들은 세입자에게 ‘전세계약금의 일부를 현금으로 돌려주겠다’는 당근책으로 유인하면서 계약서상에 통상적인 임대차 금액보다 높고, 시세에 근접하던지 시세보다 높은 금액을 기재한다. 세입자는 실제 시세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과도한 전세금을 집주인에게 지불하게 된다.

세입자와 거래가 이뤄지면 집주인은 곧바로 임대사업자에게 해당 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한다. 이때 새롭게 집주인이 된 임대사업자는 대부분 빚을 많이 지고 있는 신용불량자로서 소위 ‘바지사장’인 경우가 많다. 세입자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문제를 제기할 때는 이미 전 소유자는 임대보증금을 가지고 잠적하고, 명의를 빌려준 신용불량자인 새 주인은 반환능력이 없어 세입자는 전세보증금을 되돌려 받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리는 것이다. 특히 빌라의 경우 전세가율(주택매매가격 대비 전세금의 비율)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워 사기 대상이 되기 쉬운 구조로 되어 있다.

다른 전세사기 유형으로 대출 관련 사기가 있다. 세입자가 전세 잔금을 치르고 잔금일이 넘어가기 전에 등기부등본을 다시 발급받아 확인하는 경우가 적다는 점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집주인은 잔금일에 해당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버리는 사기가 발생하는 것이다.

부동산중개인이 제공하는 등기부 등본을 믿지 않고 본인이 직접 등기부 등본을 확인하면 그래도 안전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 역시도 허점이 있다. 잔금을 납부하고 다시 등기부 등본을 확인하였더니 깨끗했고, 이후 그날 확정일자를 받아도, 확정일자의 효력은 그날 밤 12시 즉 하루가 넘어가야 발생한다. 임대인이 그날 대출을 받아 근저당권을 접수해 버리면 세입자는 후순위가 되는 것이다.

전세금 부풀리기와 대출사기…제도 허점 악용에 세입자 피눈물

첫 번째 사례, 즉 전세금 부풀려서 사기 치는 사례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규정에 기인하는 바도 있다. HUG는 작년 11월까지 보증보험 가입 시 시세 산정이 어려운 신축 빌라 등의 경우 공시가격의 150%를 집값으로 인정해줬다. 신축 빌라의 공시가격이 1억 원이면 1억 5,000만 원까지 시세를 인정해 보증을 인정함으로써 시세 수준으로 전셋값을 올릴 여지를 마련해준 것이다. 나쁜 심보를 지닌 임대인은 이런 비율에 맞춰 보증금을 올렸고, HUG 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고 세입자를 안심시키면서 매매가 1억 5,000만 원짜리 주택을 전세금 1억 5,000만 원에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도록 한 것이다. 이 방식은 주택가격이 상승기에는 크게 문제가 없으나 하락기에는 전세보증금이 매매시세보다 높아져 소위 ‘깡통전세’가 전락하게 된다.

필자는 이러한 전세 사기에 극히 일부 감정평가사가 연루되었다는 보도를 접한 바 있다. 감정평가 가액이 시세를 초과하는 즉 소위 ‘뻥튀기’로 작성되어 세입자가 본인의 전세금이 안전할 것이라는 착각을 하는 근거가 되었다는 것이다. 감정평가사는 시장의 가격을 공정하게 평가하도록 국가로부터 자격을 인정받은 사람이다. 만약 시세를 초과하는 감정평가를 고의로 행했다면 처벌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다만 다른 측면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감정평가사는 국가로부터 ‘가격결정자’로서 자격을 부여받은 사람인 만큼 감정평가 행위를 통해 생활을 영위하여야 하는 측면이 있다. 그런 만큼 감정평가사로 하여금 공정한 감정평가를 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 또한 마땅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새로 감정평가사를 시작하는 젊은 감정평가사들의 경우 감정평가의 경험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소위 ‘영업 전선’에 뛰어들게 된다. 본인의 감정평가서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공정하고 명확한 업의 개념’이 확립되지 않은 채 ‘전세금 부풀리기’에 동조했다면 이를 막지 못한 감정평가업계도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공정평가의 시스템을 정비할 의무가 있다고 할 것이다. 올해 몇몇 업계 동료들이 잘못된 일에 연루돼 고초를 겪었고, 이들이 대부분 5년 이하의 젊은 감정평가사라는 점이 필자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사기행각, 시작단계서 막아야…'의도치 않은 피해자' 젊은 평가사에 새 길 열어줘야

감정평가사는 시장에서 ‘공정한 가격 결정자’의 역할을 행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신뢰 사회’가 되도록 기반을 닦는 기능을 한다. 이러한 신뢰 사회를 구축하려면 감정평가업계도 공정성이 담보되도록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 필자는 그러한 제도의 하나로 회계업계에서 운영되고 있는 금융감독원에서 감사업체를 지정하는 ‘6+3 제도(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도, 지정감사제)’를 생각해본다.

지정감사제란 기업이 외부감사인을 자율적으로 6년 선임하면 그다음 3년은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감사인을 지정받는 제도이다. 이는 의뢰인과 회계사의 결탁을 막음으로써 분식회계를 원천봉쇄하는 효과가 있다고 여겨진다.

감정평가업계에도 이와 유사하게 금융기관 담보 평가는 제3의 기관인 감정평가사협회 등에 일괄적으로 의뢰하여 감정평가 의뢰인과 감정평가사의 결탁을 막아 공정성을 제고 하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아울러 젊은이들이 전세사기의 피해자가 된 것처럼 ‘업의 개념’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평가경력이 일천한 젊은 평가사도 어떤 식으로든 피해자가 되었다는 현실을 제도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감정평가업계의 공정성 확보를 전제로 (고초를 겪은) 젊은 평가사의 경우 앞으로 성실히 활동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열어 주는 것이 온당한 처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박봉욱 미래새한감정평가법인 이사, 감정평가사>

*박봉욱 필자는 현재 미래새한감정평가법인 이사(감정평가사)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 경제학과와 미국 서폭대 소여 비즈니스스쿨(Suffolk Business School, MSF, 미국 보스턴 소재)을 졸업했다. 대신증권과 삼성에버랜드에서 근무한 바 있으며, 한국감정평가사협회 기획이사를 역임했다. 필자 블로그(https://blog.naver.com/astrapark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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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2023-12-21 22:01:19
감정평가업계의 단면을 잘 집어 주셨네요
꿈은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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