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로 분류된 플랫폼 노동자 유럽 내 550만명
합의된 지침에는 노동자 지위-플랫폼 기업의 고용관계 명확히 해
노동환경에 중대한 영향 끼치는 플랫폼 알고리즘 투명화 방안도

[ESG경제=김연지 기자] 유럽연합(EU)의 입법 기구인 유럽의회(European Parliament, EP)와 회원국,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지난 13일 ‘플랫폼 노동의 노동 조건 개선 지침’에 잠정합의했다. 지침은 플랫폼 노동자에게 노동자 지위를 부여하고, 플랫폼기업은 사용자로 규정함으로써 플랫폼 노동자들의 법적 울타리가 될 전망이다.
이번 잠정합의는 지난 2021년 12월 9일 EU 집행위원회가 지침을 제안한지 2년만에 이뤄졌다. 지침이 발효되려면 기술적인 세부 조정을 거쳐 EP와 EU 이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채택돼야 한다. 지침안이 공식적으로 채택되면 EU 회원국들은 2년 안에 자국내 법과 제도를 개선해 시행에 들어가야 한다. 지침은 유럽연합 차원에서 특정 정책에 대한 목표와 기준 등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법률 제정은 개별 회원국에 일임하는 법령의 방식이다.
유럽의 플랫폼 노동자 중 550만 명은 실질적으로 노동자의 위치에 있지만, 자영업자로 분류된다. EU 집행위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EU에는 28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노동하고 있지만 최소 550만명의 플랫폼 노동자가 자영업자로 잘못 분류돼 노동자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보장 받지 못하고 있다. EU 집행위는 2025년 플랫폼 노동자가 43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에서 플랫폼 노동자들의 권리 개선이 시급하다고 판단해 지침안을 내놨다.
노동자-플랫폼 고용관계 명확히 하고, 플랫폼 알고리즘 투명성 강화도
‘플랫폼 작업의 근로 조건 개선 지침’은 ▲노동자-플랫폼 고용관계 규정 ▲플랫폼 알고리즘 운영의 투명성 강화 ▲노동자와 노동자 대표의 소통 채널 제공 ▲플랫폼 운영의 책임성 강화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먼저 노동자로서의 지위와 사용자로서의 상태를 명확히 규정한다. 지침은 플랫폼이 지표 5개 중 2개를 충족하면 ‘사용자’로 간주하고, 노동자와 플랫폼의 고용관계를 추정한다. 판단의 기준이 되는 지표는 ▲(플랫폼이) 노동자가 받는 보수를 사실상 결정하거나 보수의 상한선을 설정할 때 ▲디지털화한 수단으로 노동자의 업무 수행을 감독하거나 일의 결과를 평가할 때 ▲노동자가 일할 때 복장·두발·유니폼 등 외관, 고객 응대 방식, 업무수행에 관한 규칙을 따르도록 할 때 등이다.
플랫폼 노동자가 ‘노동자’의 지위를 얻게 되면, 최저임금, 단체교섭, 근로시간 및 건강보호, 유급휴가, 실업 및 상병수당 등 '노동자'의 지위와 관련된 사회적 권리를 보장 받게 된다.
대부분의 플랫폼 노동이 플랫폼의 중개를 통해 이뤄지는 만큼 플랫폼의 디지털 알고리즘에 대한 규율도 신설됐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작업 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알고리즘의 결정을 인지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예컨대 계정 정지나 차단, 일감 배정 등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알고리즘의 결정에 대해서는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이에 따라 플랫폼 노동자들은 알고리즘 시스템과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정보를 제공 받을 권리를 갖게 된다.
그 외에도 지침은 플랫폼에 노동자와 그 대표가 조직을 형성할 수 있는 의사소통 채널을 구축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또한, 플랫폼 기업이 직접 플랫폼을 운영하지 않고 중개회사를 이용하는 경우에도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동일한 수준의 보호를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이번 합의를 두고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Valdis Dombrovskis) EU 사람을 위한 경제 수석 부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디지털 플랫폼은 우리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혁신을 촉진하고 귀중한 일자리 기회를 제공한다”면서도 “이러한 기회는 플랫폼 경제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공정한 노동 조건과 탄탄한 사회적 보호가 동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니콜라스 슈미츠(Nicolas Schmit) EU 일자리 및 사회적 권리 위원회 위원은 “이번 합의는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의 유연성을 희생하지 않으면서도 운전자, 라이더 등 플랫폼 근로자가 마땅히 누려야 할 사회적 권리와 노동권을 보장받도록 한다”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