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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이 ESG 공시의 첫 희생자가 될 수도

  • 기자명 ESG경제
  • 입력 2024.01.17 00:13
  • 수정 2024.01.18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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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공급망 및 금융 배출권 공시를 감안하면
중소기업에 주어질 순차적 공시 적용 의미 없어
정부와 대기업, 금융권 손잡고 지원책 마련해야

한국형 ESG공시 기준을 만들 KSSB 출범식 모습. 금융위원회와 KSSB는 올 1분기 중 ESG공시 세부 로드맵을 발표할 예정이다. 사진=금융위원회
한국형 ESG공시 기준을 만들 KSSB 출범식 모습. 금융위원회와 KSSB는 올 1분기 중 ESG공시 세부 로드맵을 발표할 예정이다. 사진=금융위원회

빠르면 2026년부터 ESG공시가 의무화될 예정이다. 우리 기업들의 대비는 충분할까?

산업마다 다르고 기업마다 다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사업 규모와 시스템 면에서 월등한 초대형 기업들이 주도면밀한 준비를 하고 있는데 비하여 중견· 중소기업들의 준비는 매우 소홀하다는 사실이다. 얼마나 준비가 잘되고 있는지 묻기에 앞서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 지부터 의심해야 할 수도 있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당장의 생존을 위해 사투 중인 중소기업에게 지속가능성에 대비하라는 주문은 한가하게 들릴 수 있다. 관심은 갖고 있지만 정보가 부족하고 관련 인력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의무적인 ESG 공시가 시차를 두고 단계적으로 시행될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ESG 의무 공시가 기업의 규모에 따라 순차적으로 시행된다면 중소기업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준비해도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에 준비를 소홀히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견·중소기업들이 간과하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예상과 달리 ESG 정보를 조기에 공개해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는 두 가지 이유가 그것이다.

첫째는 대기업의 연결 공시다. 당장 ESG공시를 하게 될 대기업들은 자기 자신의 ESG성과만을 공시하는 것이 아니다. 자회사인 연결 대상기업들의 성과를 합산하여 공시함은 물론이고, 공급망에 포함된 납품회사의 ESG 성과 역시 공시하여야 한다. 공급망으로 연결된 대기업을 통해 중견·중소기업도 자신의 ESG 성과를 간접 공시하게 되는 것이다. 상전인 대기업이 요구하는데 납품 업체가 ESG 정보 제출을 거부할 재간이 있을까?

둘째는 금융기관의 금융배출량 공시다. 금융지주사를 포함한 금융기관 역시 ESG 공시의 예외가 아니다. 대형 금융기관들은 글로벌 대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수년 전부터 상당한 인력과 시스템을 갖추고 ESG 공시를 준비해 왔고 최근에는 공시보고서의 초안들도 완성되고 있다.

문제는 금융기관의 ESG 공시에 포함되는 소위 “금융 배출량 공시”다. 금융배출량 공시란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 등 금융 서비스를 받는 모든 기업의 탄소 배출량을 금융기관이 통합 공시하는 것인데 이 공시에서도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은 예외가 될 수 없다.

결국 중견·중소기업은 당장은 의무 공시의 대상에서 제외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공급망으로 연결된 대기업과 금융 서비스로 연결된 금융기관을 통해 처음부터 공시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간접적 공시라고는 하지만,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대기업과 금융기관의 위세가 대단한 국내 현실에 비추어 직접 공시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대기업이나 금융기관을 통한 간접 공시의 결과는 무엇일까? 공시를 통해 탄소 절감의 목표 달성을 보여주어야 하는 대기업은 절실하다. 특히 수출이나 해외 투자가 많은 대기업이 그렇다. 이들은 탄소절감의 성과를 보이지 않거나 처음부터 기준 이하인 중소기업을 공급망에서 퇴출 시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거래를 끊어버리는 것이다.

금융배출량을 공시하는 금융기관의 입장은 더 절박하다. 금융 배출량의 개선이 없으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불이익을 당하거나 거래가 단절될 것이기 때문이다. ESG 성과가 부진한 중소기업들에게 금융 서비스를 중단하는 것 밖에 다른 대안이 없을 것이다.

실제 몇몇 금융기관이 준비 중인 가상의 ESG 공시 자료에서는 산업별로 집계된 금융배출량 자료가 확인된다. 철강, 화학, 전자전기, 건축 등의 산업군에 속한 모든 기업의 정보가 망라된 것이다. 아직은 미완성인 이 자료들이 취합되고 공표된 후 중소기업들이 감당해야 할 부담을 지금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준비가 부족한 중소기업이 ESG공시의 첫번째 희생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예감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수많은 납품업체를 가진 대기업들이 납품 중소기업들을 위하여 자료와 정보제공에 적극적이고, 금융기관들 역시 세미나와 강좌 등을 통하여 거래 기업들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도 이런 지원에 힘을 보태고 있다.

중소기업들의 ESG정보를 통합 관리할 정부 주도의 “통합 데이터 플랫폼” 구상 등은 더 없이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정부가 앞장서는 보다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지원책도 나왔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해본다.

[김의형 PwC컨설팅 고문/전 한국회계기준원장]

                         김의형 삼일회계법인 고문
                         김의형 전 한국회계기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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