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층, 질병 재난 등 교차적 취약성 가진 '기후위기 취약계층'
정부, 기본권 보호의무 다하지 않아...감축목표 부적절, 적응대책 부재
인권위 "행정부가 기후 인권 관계성 인식해야"...정책개선 권고 준비중

[ESG경제신문=김연지 기자] 노년층이 기후피해를 가장 크게 입고, 다른 연령층에 비해 기후위기에 더욱 취약한 실정이지만 정부의 대책이 사실상 부재한 것으로 드러나 이들을 위한 기후대응정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2일 국회에서 열린 '기후위기와 노년층의 생명권 보호' 세미나에서 축사를 맡은 이소영 의원(더불어민주당·경기 의왕과천)은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디신’에 게재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2022년 유럽 폭염 사망자 6만여명 중 절반 이상은 79살 이상의 노인”이었다면서 “질병관리청의 ‘기후보건영향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폭염 당시 65세 이상의 온열질환 사망자 수는 연평균의 2배 이상으로 급증한 바 있다"고 말했다.
함께 축사를 맡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남인순 의원(더불어민주당·서울송파구병) 역시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해 온열질환자는 2022년 대비 80%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지난 10년간 온열질환 사망자 수 중 68.5%는 65세 이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오는 8월에 65세 이상 노인인구 1000만명 시대가 열리고, 내년에는 노인인구 비중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전망”이라면서 “취약계층인 노년층이 증가함에 따라 그 규모도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공개된 IPCC 제6차 보고서에서도 “기후변화는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불균등한 영향”을 준다고 분석됐다. 법무법인 지향의 신유정 변호사는 “노인은 질병취약성과 재난취약성, 사회경제적 취약성 등 교차적 취약성을 지녔다"면서 “기후변화에 따른 재해와 재난이 이미 현실이 된 상황에서, 미래세대의 인권침해 완화뿐 아니라 바로 지금, 취약계층을 인권보호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한국 정부, 노년층 위한 기후적응대책 사실상 부재”
지난 3월 기후피해 당사자 노인들 123명과 함께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기후인권 진정을 제기한 신유정 변호사는 “기후위기 상황에서 국가가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조치를 취하지 않아 헌법상의 생명권을 침해했고, 감축목표의 부적절성뿐 아니라 고령자의 특수한 인권침해 위험을 반영한 기후위기 적응 대책의 부재하다"고 진정 제기의 배경을 설명했다. 헌법상의 기본권을 보호할 국가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 변호사는 한국은 1.5도 목표에 부합하는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신 변호사는 지난 4월 유럽인권재판소(ECHR)가 스위스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을 제대로 하지 않아 유럽인권협약 제8조(사생활 및 가족생활을 존중받을 권리, 모든 사람은 그 사생활, 가정생활, 주거 및 통신을 존중받을 권리를 가진다)를 침해했다는 판결을 인용했다.
해당 판결에서는 “인권에 심각하고 돌이킬 수 없는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준을 초과하는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규정과 조치를 마련할 의무"를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국가에게 적어도 지구 기온 상승폭을 1.5도로 제한하기에 적합한 수준에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수립할 의무가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신 변호사는 “한국의 현행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는 2030년까지 달성해야 하는 감축 부담의 75%를 2028년과 2030년 사이에 배치해 미래에 급격한 감축을 요구하는 한편 2023년~2027년 동안의 연평균 감축률은 2%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IPCC 6차 보고서에서는 “즉각적이고 현격한 감축의 중요성을 강조”한 데 반해 정부의 NDC는 IPCC 6차 보고서가 제시한 목표 및 경로에 현저히 미달한다는 것이다.
노인의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한 기후위기 적응대책도 부재하다는 것이 이번 진정 제기의 근거가 됐다. 정부는 지난해 ‘제3차 국가 기후위기 적응 강화대책'을 수립했지만, 이는 고령자를 포함한 취약계층에 기후위기가 미치는 불균등한 영향에 대해 실태조사나 영향평가 등 기초적인 인구통계학적 정보 수집의 토대 아래 이뤄지지 않았다. 해당 적응대책에 포함된 취약계층 보호대책은 폭염에 대한 쪽방촌 주민의 피해 완화와 폭염에 따른 야외노동자의 건강 보호가 전부다.
신 변호사는 “노인이라는 인구집단의 특수한 취약성(장애, 빈곤, 보건 및 사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의 부족, 사회·경제적 자원의 부족, 사회적 네트워크의 상실, 정보 접근의 어려움 등)을 데이터로 확인하고 이를 기초로 한 포괄적 대책이 필요하다"면서 “적절한 적응대책은 노인의 특수한 수요를 포함하고, 사회보장체계, 적절한 주거, 노인들에게 효과적인 재난 관련 정보 전달 시스템, 의료 인프라 등 다양한 요소가 통합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정책개선 권고 준비중"
한편, 신 변호사가 노인 123명을 대리하여 인권위에 제기한 진정은 각하 처리됐다. 세미나에 패널로 참여한 인권위 박태성 사회인권과 사무관은 “해당 진정은 정책 개선을 요구하는 것으로 판단되어 국가인권위원회 사회인권과로 이관됐다"고 밝혔다.
박 사무관은 이어 “유엔 인권이사회도 2021년 ‘기후변화 맥락에서 노인 인권 분석 연구’보고서를 발표하고 국가가 기후위기 대응정책을 수립해야 하며, 여기에 노인이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조치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면서 “인권위도 국제 인권 기준을 국내에 이행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사안을 바라보는 입장이 같다"고 말했다. 진정이 각하된 것은 법리적 해석의 문제일 뿐, 기후위기 상황에서 노인의 생명권 침해 문제가 중대하는 데는 인권위도 동의한다는 것이다.
인권위 사회인권과는 이관된 진정사건과 더불어 2022년 실시한 ‘기후위기와 농어민 인권에 관한 실태조 사’의 내용을 종합해 현재 정책개선 권고를 준비 중에 있다. 또한 2023년 ‘기후위기와 주거권에 관한 실태조사’를 기반으로 또 다른 정책개선 권고를 준비하고 있고, 정부가 2025년 유엔에 제출해야 하는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설정에 대한 권고도 함께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 사무관은 이날 세미나에서 기후와 인권의 연결성에 대한 정부의 안일한 인식을 비판하기도 했다. 박 사무관은 “행정부가 좀 더 기후와 인권이 관계 있다라는 인식을 가져야 된다라고 생각한다"면서 “기후가 왜 인권과 관련이 있지라는 질문을 인권위에 한다, 인권위는 누차 설명하지만 그게 잘 설득이 안된다"고 토로했다.
인권위는 실제로 2022년 대통령을 대상으로 “정부는 기후위기 상황에서 모든 사람의 인권을 보호·증진하는 것을 국가의 기본 의무로 인식하고 기후위기를 인권 관점에서 접근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 및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아울러 ‘취약계층의 보호 및 적응 역량 강화 대책을 마련하고,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할 때 기후위기 취약 계층의 참여를 보장’하라는 구체적인 제도 개선안도 제시했다.
박 사무관은 “향후 다양한 경로를 활용해 기후위기와 노인에 대한 의제를 발굴하고 논의할 계획이며, 국회·시민사회단체·당사자 등과 협력해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정책이 노인의 인권을 제대로 보호·보장하는지 면밀히 살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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