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주총안건 중 지배구조 변화에 가장 큰 관심
지배구조 변화안 가결률 25%로 가장 높아
엔비디아에선 초다수의결안 축소 요구 통과

[ESG경제=이진원 기자] 올해 상반기 미국 기업의 주주들은 ESG, 즉 환경(E)과 사회(S)와 지배구조(G) 중에서 지배구조와 관련된 변화에 가장 높은 관심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로펌인 프레시필즈(Freshfields)가 주총에서 승인된 안건과 관련된 데이터를 분석해 본 결과 새로운 ESG 정책을 승인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주주들은 환경과 사회보다 지배구조의 변화를 목표로 하는 제안에 훨씬 더 많은 지지를 표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월 1일부터 6월 14일 사이에 주주총회 표결에 부쳐진 154건의 지배구조 변화 안건 중 38건이 가결되면서 가결률은 약 25%를 보였는데, 이 같은 가결률은 환경과 사회 변화와 관련된 제안보다 상당히 높은 수치라는 게 프레시필즈의 설명이다.
ESG에 지배구조 관련 이슈는 회사의 윤리적 경영, 주주 권리 보호, 위험 관리, 이사회와 경영진의 역할과 관련된 이슈를 말한다. 또 환경과 사회 관련 이슈는 기업에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보다 지속가능한 공급망 관행을 채택하고,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목표를 채택하도록 강제하는 이슈를 가리킨다.
지배구조 변화와 관련된 안건 중 통과 건수가 가장 많았던 건 회사의 중요한 조치에 대해 주주의 3분의 2나 4분의 3의 찬성을 받아야 하는 초다수의결(supermajority) 요건을 줄이자는 요구였다.
인공지능(AI) 붐을 이끌고 있는 반도체 제조업체인 엔디비아의 주주들도 이러한 요구를 해 통과된 것으로 확인됐다.
또 모든 이사가 매년 재선에 출마하거나 주주가 특별 회의를 소집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도록 요구하는 안도 통과된 경우가 많았다.
주주들의 E와 S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낮아
프레시필즈가 조사한 약 5개월 반 동안 환경에 초점을 맞춘 제안 중 주주의 과반수 지지를 받은 것은 단 두 건에 불과했다.
사회적 이슈와 관련된 제안에 대한 지지는 이보다도 못했다. 즉 혈당 모니터링 의료 기기 회사인 덱스콤의 정치 기부금 보고를 의무화하는 제안 단 한 건만 통과됐을 뿐이었다. 이 안은 52%로 과반수 지지를 받았다.
이처럼 환경, 사회, 지배구조 관련 이슈에 대한 주주들의 지지에 차이가 보이는 건 지배구조 관련 이슈가 다른 두 분야 이슈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치적 감시를 덜 받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또 다른 미국 로펌인 크라벳, 스웨인&무어의 기업 지배구조 전문 변호사 마이클 아놀드는 야후 파이낸스에 “지배구조 변화 관련 제안은 지나치게 규범적인 것으로 간주되지 않고, 최근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ESG에 대한 반발과도 무관하므로 더 광범위한 지지층을 확보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대선 캠페인 기간 중 ESG와 DEI는 뜨거운 이슈였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ESG 요소를 고려한 퇴직 계좌 투자를 ‘영원히’ 금지하겠다고 약속했고, 트럼프의 한 측근은 DEI를 “백인 남성에 대한 편견”이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공화당이 장악한 주에서는 지난해 하버드 대학교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가 입학 지원자 중에 소수 인종을 우대해온 정책을 폐지하라는 대법원의 판결에 편승하여 기업들에게도 인종별로 쿼터를 두고 직원을 뽑지 말도록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반(反)ESG 및 반DEI 기조로 인해 일부 기업은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는 것은 물론 기존 정책 중 일부를 철회해야 했다.
가령 주주의 압박을 받은 전원 생활용품 체인점인 트랙터 서플라이는 6월에 DEI 목표를 철회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트랙터 제조업체인 존 디어 역시 7월에 비슷한 발표를 통해 인력 다양성을 계속 추적하되 문화와 사회적 인식에 초점을 맞춘 행사 참여는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프레시필즈는 올해 많은 환경과 사회 관련 제안이 부결되었다고 해서 이 두 이슈에 대한 주주들의 관심이 줄어들었다는 건 아닐 수 있다고 해석했다.
환경 제안 중 근소한 차이로 부결된 것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데니스, 퀘스트 다이아그노틱스, 다인 브랜드에서 환경 관련 제안은 찬성률이 약 40%로 과반수 지지율에 약간 못 미쳤을 뿐이다.
또한 기업의 기존 DEI 노력에 반대하는 주주 제안이 51건이나 있었으나 이 중 통과된 안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게 프레시필즈 측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이 회사의 팜 마르코글리시는 “오히려 이런 투표 결과는 주주들이 기업의 ESG 진전에 대해 더 만족하고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변화 목소리 가장 컸던 초다수의결 요건
지배구조 이슈와 관련해 가장 변화의 목소리가 컸던 초다수의결 요건은 회사의 정관이나 헌장을 개정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어 변경 사항을 승인받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 늘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실제로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는 최근 ‘초다수의결 투표는 사라질 것인가?’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2019년 테슬라의 초다수의결 요건이 어떻게 의사 결정 과정을 더디게 만드는지 보여주는 한 가지 예로 들었다.
ISS에 따르면 그해 테슬라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제안은 투표에서 강력한 지지를 받았지만, 회사 지분율로 따졌을 때 3분의 2가 아닌 52%만 찬성했기 때문에 통과하지 못했다.
ISS는 보고서에서 “그래도 이제 S&P500 기업 중 여전히 이처럼 초다수의결을 지지하는 지배구조를 채택하고 있는 비율은 3분의 1을 조금 넘는 수준으로 감소했다"면서 "이는 이러한 관행을 유지하는 기업들이 점점 더 예외적으로 보이고 더 많은 감시와 변화 압력에 직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올해 모든 지배구조 관련 제안이 좋은 성과를 거둔 것은 아니다. 프레시필즈의 분석에 따르면 주목할 만한 이상 사례 중 하나는 CEO와 이사회 의장직을 분리하려는 시도였으나 총 44건의 제안 중 통과된 안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