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 대부분 지속가능보고서 제작 외부 대행사에 맡겨
보고서 직접 작성은 ESG 실무역량 강화 및 내재화에 큰 도움

내가 일하는 이노소셜랩의 지속가능경영센터(INSBee)에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컨설팅을 의뢰하려는 대부분의 기업은 보고서 작성 "가이드(코칭)"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작성 "대행"을 요구한다.
이노소셜랩은 원칙적으로 작성 "대행"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보고서 작성 대행을 하지 않는 이유는 회사의 목적 자체가 "기업의 지속가능경영 실무자의 역량을 향상시키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객사가 요구한 프로젝트가 실무자의 역량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하지 않는다.
우리는 ‘셰르파(shrapa)’역할을 충실히 해서 고객이 직접 산 정상을 오르게 하겠다는 목적 의식을 갖고 있다. 고객의 가면을 쓰고 대신 올라가서 사진 찍고 고객이 올라간 것 처럼 하는 것은 우리의 방식이 아니다. 이런 '쓸데 없는' 고집, 원칙 때문에 우리는 돈 벌이를 잘 못하고 있다.
우리가 이런 고집과 원칙을 지키는 이유는 3가지다.
1. 당신이 "진짜" ESG 실무자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내가 일하는 목적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지속가능경영, ESG를 제대로 잘하도록 돕는 것이다. 기업들이 ESG를 제대로 하게 되면 결국 그것은 내가 살고 있는 사회와 환경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 아들이 살아갈 미래도 마찬가지다.
그 목적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람'을 키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의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다. 어떤 기업에 지속가능경영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애쓰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그 기업은 희망이 있다. 그 한 사람이 두 사람이 되고 팀이 되고, 마침내 조직 전체에 지속가능경영 바이러스(?)를 확산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자신이 OO기업의 회사원이라기 보다 지속가능경영 담당자라는 직업인으로써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회사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려고 한다. 그 프로젝트를 통해 그 사람을 성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속가능경영(ESG)의 전문가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내가 요구하지 않아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직접 써 보고 싶다는 말을 한다.
나는 10년 동안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담당자와 그 팀의 팀장까지 맡았던 사람이 지속가능경영에 대해 매우 낮은 수준의 이해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이유는 그 10년 동안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남이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초보자라서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작성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실무자들이 많다. 맞는 말이다. 17년 전 내가 기업에서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처음 쓴 때에 '나'도 그랬다. 내가 직접 쓴 단 한 가지 이유는 회사에서 돈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사는 디자인 비용과 인쇄비를 합해서 900만원을 예산으로 줬다. 그 비용으로 컨설팅을 받는 것은 불가능했다.
당시에는 국내 보고서들이 그리 좋은 것이 없어서 외국 보고서들을 가져다 놓고 영어사전을 찾아가며 보고서를 썼다. 그렇게 고되게 보고서를 처음 써본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
기업에서 실무 역량과 실력을 쌓는 유일한 방법은 일을 "직접" 해보는 것이다. 문제 해결 능력을 직접 가지고 있는 사람과 늘 남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처음에는 별 차이 없어 보이지만 시간이 갈 수록 큰 차이가 난다.
당신이 실력자가 되어 인정 받고 싶다면 직접 부딪쳐야 한다. 부딪치는 두려움과 아픔, 고난, 힘듦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당신은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2. ESG경영 내재화에 보고서 직접 작성은 꼭 필요하다.
10년 넘게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했지만, 기업의 내부 구성원 누구도 ESG에 관심을 갖지 않는 회사를 여럿 경험했다. 이 회사들의 공통점은 지속가능경영이란 남들이 하니까 우리도 하는 척 하는 정도의 이슈였다.
특히, EU와 직접 거래가 없거나 외국 투자사의 요구, ESG 규제 대상이 아닌 기업들은 이런 상황이 더 심했다. 이런 기업들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내는 거의 유일한 이유는 '상장사 ESG 평가' 때문이다. 즉, 평판 관리 때문에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한다.
이런 기업에서 보고서는 대부분 홍보팀이나 홍보팀 산하의 ESG 팀에서 만든다. ESG를 홍보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ESG를 통해 정말 우리 회사의 지속가능경영 수준을 높이고 우리의 이해관계자들에게 더 나은, 더 좋은 회사로 인정받기 위해서라면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홍보용으로 만들면 안된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대행을 맡기면 대행사가 고객사 실무자들에게 원고에 쓸만한 소재나 데이터를 요청해서 그것을 기반으로 원고를 작성하고 편집을 해서 고객사의 검토를 받아 보고서를 완성한다. 보통 고객사의 실무자들은 작년 보고서(대행사가 써준) 원고에 올해 성과를 더한 정도의 자료를 대행사에 보낸다. 그것으로 실무자들의 역할은 끝난다.
즉, 기업의 누구도 지속가능경영 업무가 내 일이 아닌 것이다. 내 일이 아닌, 즉 내가 책임을 지지 않는 일에 대해서 사람은 관심을 갖기 어렵다.
회사내 각 영역의 실무자들이 지속가능경영을 내 일로 받아들이고 내 일에 적용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원고를 직접 쓰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 역할과 책임을 줘야 한다. 그렇게 되면 뭔가 분위기가 달라진다. 내가 쓴 원고이기 때문에 보고서 제작에 관심도 가지게 되고 내년 보고서를 위해 뭐 하나라도 더 하려고 애쓰게 된다.
이 과정이 정말 정말 중요하다. 기업의 지속가능경영, ESG 담당자들의 가장 큰 고민이 지속가능경영의 "내재화"인데, 이것을 하기 위한 첫 걸음은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원고를 직접 작성하게 하는 것이고, 보고서 제작 과정에 직접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3. 좋은 코치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성장하는 사람, 사회를 위해 기여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좋은 코치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대행을 맡기는 순간, 좋은 '코치'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내 발로 걷어차는 것이다.
대행 컨설팅을 받게 되면 코치가 아니라 대리인을 고용하는 것이다. 즉, 가르침을 얻은 기회가 아니라 업무 지시와 잔소리를 하는 역할이 되는 것이다. 업무 지시와 잔소리도 할 수 없는 사람은 그저 메일 전달자의 역할만 한다.
당신이 진정 ESG 영역에서 전문적인 커리어를 쌓고 싶다면,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직접 써보는 일이 필수적이지만, 거기에 더해 좋은 셰르파를 만나는 일도 중요하다.
이 영역에 컨설팅회사들이 대행을 주 사업으로 하는 이유는 컨설턴트 한 명이 많은 보고서를 한꺼번에 작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투입 자원 대비 매출이 높기 때문이다. 대행이 아니라 가이드 컨설팅을 하게 되면 물리적으로 많은 시간을 고객사와 함께 해야하기 때문에 컨설턴트 한 명이 많은 보고서를 쓸 수 없다.
컨설턴트 한 명이 적게는 대여섯개, 많게는 열개 넘는 보고서 대행 수주를 받고, 실제 작성은 1~2년차 주니어들이 맡게 된다. 이렇다 보니 기업명만 바꾸면 똑 같은 보고서를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만들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올해 나온 보고서들 중에도 같은 문장이 여러 기업에서 등장하는 것을 발견했다. 내용은 같을 수 있지만 문장까지 같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대행' 보다 '코칭'이 훨씬 더 많은 에너지, 시간, 노력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코칭보다 대행에 더 많은 돈을 쓴다. 지속가능경영을 제대로 하기 보다 남들 하는 만큼 하는 정도로 보이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코칭 방식의 컨설팅이 더 많은 돈을 받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꺼꾸로다. 기업들은 코칭 방식을 하게 되면 훨씬 적은 비용을 주겠다고 한다. 역설이다.
좋은 코치를 만나는 것은 행운이다. 운명이 바뀔 수 있는 큰 기회가 되기도 한다. 직장인에 만족하지 않고 ESG 전문가가 되고 싶다면 가능한 내 일을 남의 손에 맡기지 말아야 한다. 좋은 코치를 찾아 적극 활용해 보자.
[유승권 이노소셜랩 ESG센터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