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가격 뛰자 충전기가 범죄 표적돼
충전기 구리선 절도 시 대당 약 3~6만원 수익
자전거 훔치는 것만큼 구리선 절도 쉬워
충전기 운영업체들, 대응방안 마련 부심

[ESG경제=이진원 기자] 미국 전역에서 전기자동차(EV) 충전기 절도와 파손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전기차 충전 시스템의 핵심 재료인 구리선을 노린 범죄가 기승을 부리며, 전기차 운전자의 충전 네트워크 이용에도 심각한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
전기차 충전기 운영업체들은 이러한 파손과 절도를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적 해결책을 모색 중이지만 아직은 상황을 되돌리기는 역부족이다.
구리 도둑 표적된 전기차 충전기
미국 전기차 충전기 운영업체인 차지포인트 홀딩스의 릭 윌머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자주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 있는 자사의 연구소를 방문해 안전 안경을 쓰고 여러 공구를 이용해 제조한 전기차 충전기를 직접 파손해 보는 실험을 하고 있다.
이는 전기차 충전기 파손 및 구리선 절도 사건이 이어지자 차지포인트가 운영 중인 6만5000개에 달하는 충전기도 범죄의 표적이 되는 걸 막기 위해서다.
윌머는 블룸버그에 “미국 전역에서 이러한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면서 “범죄 방식과 빈도는 가히 충격적인 수준”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마케팅 정보 서비스 회사인 JD 파워에 따르면 미국에서 전기차 운전자들이 5번에 1번 꼴로 충전에 실패하는데, 실패 원인 중 약 10%는 손상되거나 사라진 충전기 케이블인 구리선 때문으로 파악됐다.
가격 오른 구리의 유혹
구리선이 범죄의 표적이 된 건 구리 가격이 급등하고 있어 이를 훔쳐 팔면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구리는 2020년 이후 가격이 거의 두 배로 상승했다. 건설업, 기술 기기 및 강력한 미국 경제 성장으로 인해 구리 수요가 급증하자 가격도 같이 뛰었다.
레벨 2 충전기로 알려진 완속 충전기 하나에는 약 5파운드의 구리가 들어가 있는데, 이는 현재 약 21달러(약 2만8000원)다. 고속 충전기에서 볼 수 있는 레벨 3 충전기에는 그보다 약 2배 많은 구리가 들어가 있다.
유럽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보고되고 있다.
영국의 충전기 운영업체 인스타볼트는 충전기 파손과 케이블 절도가 심해지자 지난 5월 철저한 절도 단속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전기차 판매가 둔화되는 가운데 이러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어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신뢰할 수 있는 충전 네트워크는 운전자들의 ‘주행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 필수적인데, 고장 난 충전소가 늘어나 운전자들이 충전을 둘러싼 불만을 제기할 경우 전기차 판매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 판매가 줄어든다는 건 충전소 운영업체들에는 당연히 부정적인 소식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충전업체들은 따라서 공공 충전기가 자주 고장 난다는 소비자들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전국적인 문제로 확산되는 충전기 파손
이처럼 전기차 충전기 내 구리선 절도 범죄가 기승을 부릴 수 있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구리선 절도가 자전거를 훔치는 것만큼이나 간단하기 때문이다.
공공 충전소는 대개 상업지구나 주차장 구석에 위치하는데 감시나 운영하는 사람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케이블을 절단하는 데는 전동 공구 한두 개면 충분하다.
또 다른 충전소 운영업체인 일렉트리파이 아메리카의 운영 부사장 앤서니 램킨은 “올해 초부터 우리는 이 문제를 최우선 해결 과제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일렉트리파이 아메리카는 올해 들어 현재까지 215개의 충전선 절단 사고를 겪었다. 이는 전년 동기 79건에 비해 크게 증가한 수치다.
북미에 약 3700개의 충전소를 운영하는 플로 역시 올해 들어 늘어나는 충전소 파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 회사는 대부분의 케이블 손상이 우발적인 사고라는 입장이지만, 최근에는 단 한 주 만에 7개의 급속 충전선이 절단되는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지포인트 역시 피해를 입고 있다.
이번 여름 차지포인트 실리콘밸리 본사 외부에 있는 충전소에서 여러 개의 충전선이 한꺼번에 절단되는 일도 일어났다.
차지포인트가 겪는 충전소 파손 사건의 80%가량이 충전선 절단과 관련이 있다. 특히 라스베이거스, 시애틀, 캘리포니아의 오클랜드 등 도심 지역에서 문제가 더 심각하다.
대응 나선 업체들
충전소 파손은 조직적인 범죄의 성격마저 띠고 있다. 그리고 도둑들은 심지어 한 충전소에 있는 모든 케이블을 절단하여 전체 충전소를 무력화시키기도 한다.
범죄자들이 유니폼을 입고 전기 기술자나 공공기관 직원인 척하며 범행을 저지르는 장면이 CCTV에 찍히기도 했다.
충전소 운영업체들은 구리 절도를 막기 위한 다양한 기술적 대응 방안을 모색 중이나 아직 뾰족한 수를 찾아내지는 못하고 있다.
플로는 충전기 안에 절단된 선을 감지할 수 있는 200개의 다양한 센서를 장착해 놓았다. 다만 모든 파손 행위를 자동으로 감지하기는 쉽지 않다.
비용 문제도 만만치 않다. 카메라와 같은 감시 장비는 비용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개인정보 보호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플로는 따라서 ATM과 유사하게 카메라를 내장한 새로운 충전기를 테스트하고 있다. 이 카메라는 파손이 빈번한 지역에서만 운영할 예정이다.
일렉트리파이 아메리카는 현재 약 100개의 충전소에 카메라를 설치했으며, 도둑들에게 경고음을 발신하는 스피커 시스템도 배치하고 있다.
차지포인트는 운전자의 신고를 유도하고 있다. 최근 이 회사는 자사의 앱을 업데이트하여 운전자들이 파손된 충전소를 신고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손상된 충전기를 더 빨리 알아내고 최대한 빨리 수리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구리선 절도는 충전기 운영업체에 큰 손실을 안겨준다.
레벨 2 충전기 충전선 교체 비용은 약 700달러(약 93만원)이며, 급속 충전기 충전선 교체 비용은 최대 4000달러(531만원)에 달한다.
따라서 충전기 운영업체들은 자동화된 감시 시스템, 절단 방지 케이블 등 기술적 해결책을 도입해 비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