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부재 속에 실망과 실낱 희망 동시에 남겨
러시아‧산유국 뭉쳐 화석연료 퇴출 로드맵 거부
중국 관망 속에 환경이상주의 유럽과 브라질 타협
환경 외교무대에서 글로벌 사우스 한계 노출도
![COP30의 안드레 코레아 두라고 의장(가운데)이 폐막일을 하루 넘긴 11월 22일 막판 합의를 시도하면서 참모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두라고 의장은 개막 전기존의 ‘합의 중심 구조’를 ‘이행 중심 거버넌스’로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AFP=연합뉴스]](https://cdn.esgeconomy.com/news/photo/202512/13682_19662_3638.jpg)
[ESG경제신문=채인택 국제전문기자] 2015년에 나온 파리협약 10주년을 맞는 올해 열린 COP30(제30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는 전 세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 ‘전 세계가 힘을 모아 기후변화 위기를 극복한다’는 환경 이상주의는 무력함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지정학적 균열과 전 세계적인 경쟁과 분쟁이 다자주의에 의한 기후변화 공동대응의 앞길을 막았다. COP30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여섯 가지 국제정치적‧지정학적 벽을 살펴본다.
① 미국의 부재가 준 거대한 글로벌 환경외교 공백
첫째 벽은 미국의 부재다. 지난 1월 4년 만에 백악관에 돌아온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기 때에 이어 또 다시 국제적 기후변화 대응 합의인 파리협약에서 탈퇴했다. ‘기후변화는 사기’라는 독설을 마다하지 않은 환경회의론자 트럼프 대통령은 COP 사상 처음으로 미국 연방정부 차원의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았다.
세계 최강국 미국의 공백은 기후변화에 맞서기 위한 글로벌 다자외교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글로벌 공동대응이 필수적인 기후변화 대응 노력에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자 온실가스 배출국가인 미국이 불참한 것은 향후 이를 둘러싼 글로벌 합의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부재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글로벌 환경 다자외교에 거대한 공백을 초래했다.
![COP30 폐막일을 하루 넘긴 11월 22일 참가국들이 전원회의를 열고 막판 합의를 추진하고 있다. 200개 가까운 국가 등이 참가한 COP30에서는 기후변화로 피해를 보는 가난한 국가를 위한 지원금을 3배로 늘리는 등의 합의를 이뤘다. [AFP=연합뉴스]](https://cdn.esgeconomy.com/news/photo/202512/13682_19664_3755.jpg)
② 사우디‧러시아…산유국들의 화석에너지 퇴출 반발
둘째 벽은 속도조절을 요구하는 산유국과 공동이해국의 강력한 반발이었다. 특히 화석연료의 지속적인 수출이 자국 경제에는 물론 현실권력의 생존에도 중요할 수밖에 없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는 집요하게 화석연료 퇴출 로드맵 마련을 거부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비록 미래에 석유 없는 경제구조를 위한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는 있지만 이를 위해서도 화석연료 수출을 통해 충분한 자금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오일달러에 대한 집착이 강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석유수출국가기구(OPEC)를 이끌며 국제무대에서 정치력과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순조로운 권력 승계를 위해서도 경제성장 실적과 자금 확보가 필수적이다.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는 서방의 경제제재 속에서 지속적으로 전비를 마련하는 한편 전후 복구를 위해서도 석유‧가스 등 화석연료 수출 유지가 절대 필요하다. 산업의 균형적인 발전을 이루지 못한 러시아에선 에너지가 국가재정과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에너지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국내 권력을 유지하고 국제적인 영향력을 확보하는 핵심 도구이기도 하다.
경제성장이 필요한 인도, 산유국과 협력
경제 성장에 값싼 에너지가 필요한 인도도 산유국들과 이해를 함께하는 공동이해국으로서 COP30에서 화석에너지 퇴출 로드맵 언급에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2014년부터 3연임하고 있는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힌두민족주의와 경제성장으로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모디에게 경제성장 성적은 집권 연장과 정치권력 강화를 위한 부적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인도는 지난 8월 27일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기존 25%에서 25%P를 더한 50%의 관세를 두들겨 맞고 현재 막판 협상 중이다. 미국은 자국산 농산물 추가 개방 거부와 러시아산 원유 수입에 대한 보복조치로 인도에 고관세를 때렸다.
이런 상태에서 경제성장을 위해 값싼 에너지 확보가 필수적인 인도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편을 들어 화석에너지 퇴출 로드맵 마련을 거부한 것이다. 이는 자국내 화석연료 개발을 통한 에너지 자립과 유가 하락을 원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이해와도 맞아 떨어진다. 트럼프는 국제사회의 기후변화 합의를 지킬 의사가 없기도 하다.
③ 중국의 어색한 관망과 침묵
셋째 벽은 중국의 어색한 관망과 침묵이었다. 이는 방관 또는 냉담으로도 볼 수 있다.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 문제는 중국의 경제적 이익과는 별개라는 인식을 보여준 셈이다. 중국은 미국이 빠진 글로벌 다자외교무대에서 상당한 역할을 자청하며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시도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경제성장과 공산당의 지속적인 정치력 확보를 위해선 가격 경쟁력이 있는 화석연료 확보가 절실한 중국은 굳이 앞에 나서지 않았다. 중국은 미국의 반대에도 값싼 러시아산 화석연료를 대거 들여와 톡톡히 이익을 본 국가로 지목된다.
![COP30 개최국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대통령이 11월 19일 총회가 열린 벨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브라질은 COP30에서 합의를 이루기 위해 맹활약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AFP=연합뉴스]](https://cdn.esgeconomy.com/news/photo/202512/13682_19665_3843.jpg)
④ 환경다자외교에서 브릭스는 뚜렷한 분열 양상
넷째 벽은 미국이 빠진 틈새 공간에서 보여준 브릭스(BRICS)의 분열과 한계였다. BRICS는 트럼프 행정부가 고립주의로 나오자 그 빈 공간에서 영향력 확대를 시도할 것으로 예견됐다. 하지만 이번 COP30에서 드러난 건 브릭스의 철저한 분열이었다.
개최국 브라질은 다자외교를 통한 기후변화 대응방안 마련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기본적으로는 경제와 환경의 조화에 주력했지만 아마존을 품고 있는 브라질은 생태계 보호와 원주민 권리확보 등에도 힘썼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같은 브릭스 회원국인데도 화석연료 수출이 필요한 러시아는 자국의 이익과 정치상황이 걸린 화석에너지 퇴출 로드맵이란 안건에서 완강한 태도를 보였다. 중국은 그 곁에서 상대적인 관망으로 일관했다.
전지구적인 공감과 협력이 필요한 기후변화라는 과제 앞에서 브릭스 회원국들은 각자도생의 국익외교에 주력한 셈이다. 결국 브릭스가 서방에 견제구를 날리는 수준을 넘어 글로벌 사회에서 본격적인 변화를 추진하고 합의해 공동 대응하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줬다.
앞으로 내부 친목이나 도모하고 상호 협력의 상징이나 반서방 선언문 발표기구로 남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⑤ 유럽권 환경이상주의 한계 보여
다섯째 벽은 유럽연합(EU)와 영국 등 유럽 환경이상주의의 세부족과 한계다. 이번 COP30의 공동선언문에 화석연료 퇴출을 위한 로드맵 논의가 삭제된 것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당초 COP30에선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석유‧석탄‧가스 등 화석연료의 사용을 단계적으로 감축하고 에너지 전환을 위한 로드맵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등 산유국들의 강력하고 집요한 반대로 부딪혔다.
주최국인 브라질은 화석연료 퇴출 로드맵 마련에 앞장서던 입장을 바꿔 합의문에 화석연료를 언급하지 않는 방안을 내놨다.
그러자 기후변화에 적극적인 유럽연합(EU) 국가들과 해수면 상승으로 생존 위기에 부딪히고 있는 아시아·태평양 섬나라들이 여기에 공개적으로 항의하면서 산유국과 충돌했다. 결국 폐회를 눈앞에 두고 시한을 넘기면서까지 논의를 거듭한 끝에 EU 회원국들이 브라질의 절충안을 받아들이면서 공동선언문이 나오게 됐다.
합의문 발표가 무산되고 빈손으로 돌아가는 대신 적절한 수준에서 절충안을 받아들이고, 대신 다음 기회를 모색하기로 한 셈이다.
형식은 타협과 절충이었지만, 실질적인 측면에선 대표적인 화석연료 생산자인 산유국의 조직적인 반발과 로비 앞에 EU의 환경 이상주의가 물러선 형국이 됐다.
뉴욕타임스(NYT)는 공동선언문에 화석연료 언급이 빠진 것을 두고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등 산유국의 승리”라고 평가하며 실망을 드러냈다.
⑥ 환경외교 무대에서 글로벌 사우스는 한계 노출
여섯째 벽이 경제력‧외교력에선 밀리지만 주권국가 숫자에서 압도적인 글로벌 사우스의 무기력함이다.
아시아‧중남미‧아프리카‧남태평양 등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유엔총회처럼 표 대결을 하는 국제기구에선 숫자를 바탕으로 위력을 발휘해왔다. 그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서방과 중국‧러시아 등 권위주의 국가의 사이에서 발언권과 영향력을 확대해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장시간의 협의를 통한 합의와 절충으로 공동선언문을 내는 방식의 COP에서 글로벌 사우스는 별다른 세력을 형성하지 못했다. 특히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국가존망을 위협받는 수준의 환경 재앙을 겪어온 아시아와 남태평양 도서 국가들은 유럽과 손잡고 화석연료 퇴출을 압박했다.
하지만 산유국과 관련 이해당사국의 강력한 반발 앞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합의체 국제기구의 특징 때문에 기후변화와 관련괸 글로벌 사우스의 국제사회 발언권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음을 확인시켜준 COP30이었다.
![한국의 태안 화력발전소. 전체 전기의 3분의 1을 화석연료에서 얻고 있는 한국은 11월 17일 COP30에서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탈석탄동맹에 가입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현재 61기인 석탄발전소 중 40기를 2040년까지 폐쇄하고, 나머지도 내년 중 폐쇄 일정을 확정하기로 했다. [AFP=연합뉴스]](https://cdn.esgeconomy.com/news/photo/202512/13682_19666_403.jpg)
결국 환경정치학에서 최대 문제는 지정학
이러한 여섯가지 벽으로 상징되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폐회를 하루 넘겨 결국 합의된 공동선언문은 글로벌 사회의 실망과 함께 희망도 동시에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공공선언문에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격차 논의 및 지구 온도 상승폭 초과를 억제하기 위한 행동, 기후위기에 대처할 재원 마련, 기후 관련 무역 장벽 등에 대한 대응 등은 담겼다.
비록 가장 중요한 의제의 하나로 간주됐던 화석연료 퇴출을 위한 로드맵 논의는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지만 이 정도 합의라도 이룬 것은 상당한 성과로 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COP30에선 NDC 격차와 관련해 지구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1.5도 이하로 억제하는 행동의 이행 가속화를 위한 자발적 이니셔티브를 새롭게 운영하기로 했다. 기후위기에 대처할 재원과 관련해선 해수면 상승과 폭풍, 가뭄 등 기후변화 위기 대응에 쓸 재원을 2035년까지 현 수준의 약 3배로 늘리도록 촉구했다.
기후 관련 무역장벽과 관련해선 탄소세 같은 일방적인 무역행동을 비판하고 기후변화 대응조치가 국제무역에서 자의적이거나 부당한 차별 수단이 되어선 안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성명에서 “COP30이 필요한 모든 것을 이뤘다고 볼 수는 없다”고 실망감을 드러내면서도 어려운 상황에서 이 정도 합의라도 이룬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기후위기 적응 재원 확충, 지구 온도 상승폭이 목표치인 섭씨 1.5도를 일시적으로 초과할 것이라는 인식 등 의미있는 진전을 이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COP은 합의를 바탕으로 하는데 (현재와 같은) 지정학적 분열시기에는 합의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결국 이번 COP30에선 지정학이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