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고위험 기업 아시아 지역에 가장 많은 것으로 평가받아
탄소집약도 높은 기업 많고, 평가기관 나쁜 선입견도 작용
기업들이 ESG 정보공개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 극복해야

[강찬수 칼럼니스트 겸 환경전문기자] ESG(환경·사회책임·거버넌스) 평가 점수는 기업에 대한 투자를 결정할 때 중요한 잣대로 활용되고 있지만, 평가모델의 표준이 없어 결과에 의문이 제기되는 경우가 많다. 평가기관이 ESG 등급 산정 결과에 대해 명확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다 보니 평가기관과 거래나 주식보유 관계가 있는 기업이 더 나은 평가를 받는 ‘특혜’를 누린다는 수근거림도 있다. 여기에다 개별 기업의 실제 ESG 경영 성과와는 별개로 선입견이나 주변 여건 때문에 등급 판정이 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국제증권관리위원회기구(International Organization of Securities Commission)에서도 지난 2021년 “(같은 기업이라도) ESG 등급이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다”면서 “규제, 입법, 이해관계자에 대한 배려 등의 수준이 높은 지역의 기업이 더 높은 등급을 보이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1만3589개 기업 평가 결과 분석
이러한 추정이 근거가 없지 않다는 게 최근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기업이 어느 지역에 위치하는지, 어떤 업종인지에 따라 평가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UAE·말레이시아·인도 등 국제연구팀은 최근 ‘경영관리 저널(Journal of Management and Governance)’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러한 사실을 통계적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글로벌 ESG 평가기관인 서스테이널리틱스(Sustainalytics)가 2022년 12월 기준으로 보고한 전 세계 1만3589개 회사에 대한 ESG 평가 결과를 분석했다.
서스테이널리틱스은 환경·사회·거버넌스 구분 없이 단일 ESG 통합 점수를 산출하는데, 이런 ESG등급이 업종과 지역별로 어떻게, 왜 다른지를 세부적으로 따져본 것이다.
25년 역사를 가진 서스테이널리틱스는 다른 어느 평가기관보다 많은 회사를 평가하고 있고, 해당 회사의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6만 개 이상의 다양한 뉴스 소스를 검토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20년과 2021년 연속으로 <인베스트먼트 위크(Investment Week)>에서 ‘최고의 지속가능·ESG 조사·평가 제공업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시아·북미 고위험 평가 많아
연구팀이 1만3589개 업체의 지역 분포를 분석한 결과, 아시아 지역 기업이 44.1%로 가장 많았고, 북미(29.6%), 유럽(20%), 오세아니아(2.9%), 남미(2.3%), 아프리카(1%) 순이었다.
기업의 ESG 위험 등급을 분석한 결과, ‘무시할 수 있는 위험’ 등급이 1.6%, 저위험 등급이 24%, 중간위험 등급이 39.6%, 고위험 등급이 24.4%, 심각한 위험 등급이 10.3%로 나타났다.

평가한 기업은 항공우주에서 유틸리티까지 42개의 부문으로 분류됐다. 은행(6.9%), 제약(6.8%),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6.7%) 등의 비중이 컸고, 종이 및 임업(0.5%)이 가장 낮은 비중을 차지했다.
지역별 ESG 리스크 등급을 보면, 아시아와 북미는 ESG 리스크가 큰 지역으로, 유럽 기업은 ESG 리스크가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위험과 심각한 위험 등급을 더한 비율을 보면, 아시아가 42.6%로 높았고, 남미 36.2%, 북미는 33.9%였다. 이에 비해 유럽은 18.9%였다. <그래픽 참조>
연구팀은 “지역간 ESG 점수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면서 “아시아는 북미에 비해서도 훨씬 더 높은 ESG 위험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유럽은 탄소시장 운영이나 책임 및 공개에 영향을 미치는 엄격한 ESG 규정에서 선두 주자여서 위험도가 낮았다”며 “북미는 ESG 인식이 낮고 이해관계자와 관련된 ESG 문제에 대한 규제 프레임워크가 취약하다”고 평가했다.
아시아와 남미의 경우 에너지 집약적 산업에 대한 노출이 높고, 단위 국내총생산(GDP)당 온실가스 배출량을 말하는 ‘탄소 집약도’가 높고 온실가스 배출이 많아 위험 등급이 높다고 설명했다.
석유·화학 등이 위험이 큰 업종
산업 부문을 위험 등급에 따라 분류한다면, ‘무시할 수 있는 위험 혹은 저위험’ 범주에 속하는 업종으로 내구 소비재, 컨테이너·포장, 미디어, 부동산, 소매업, 운송 인프라, 섬유·의류 등이 포함됐다.
‘중·저위험’ 범주에는 자동차 부품, 식품 소매업, 주택 건축업,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 운송 등이, ‘중간 위험’ 범주에는 자동차, 은행, 금융, 무역·유통 등의 업종이 포함됐다.
에너지 서비스, 의료, 반도체 등은 ‘중간 고위험’ 범주에, 화학, 기계, 제약, 항공우주·국방, 건설자재, 식품, 귀금속, 정유·파이프라인 등은 ‘고위험’ 범주로 분류됐다.
‘심각한 위험’ 범주에는 건설·엔지니어링, 금속, 화학, 석유·가스 생산, 철강 등이 포함됐다.
건설이나 석유·가스 업종이 ‘심각한 위험’ 범주에 들어간 것은 온실가스를 다량 배출하는 데다, 신흥 시장에서 투명성과 부패 같은 거버넌스 이슈의 위험 또한 높기 때문이다.
화학 업종의 경우 ‘고위험’과 ‘심각한 위험’ 범주에 둘 다 속하는데, 해당 산업 내에서도 활동 유형이 다양하기 때문에 다르게 분류됐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운송 인프라와 미디어 산업은 ESG 리스크가 낮은 것으로 분류됐는데, 다른 산업과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나타냈다”며 “금융 부문과 비금융 부문 사이에서도 금융 부문이 비교적 위험이 높게 나타났고, 이는 통계적으로도 유의미한 차이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잠재적 불이익 해소 노력 필요
분석 결과, 지역별·업종별 ESG 평가 점수에서 차이가 있고, 특히 아시아 지역 기업의 평가가 다른 지역보다 나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아시아 지역 기업 전체에 대해 가지고 있는 평가 기관의 선입견이 ‘아시아 디스카운트’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아시아 지역 기업은 거버넌스에 있어 오너 지배 전통이 강해 부패가 많고 일반주주 권익과 이사회 경영에 소홀하다는 선입견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그중 하나다. 국내 기업들은 이런 잠재적인 불이익을 해소하면서, 더 나은 ESG 점수를 받으려는 관심과 노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우선 환경 및 사회 분야 각종 규제·기준 준수, 직원 인권 및 근무 조건 향상, 이해당사자와의 의사소통 확대 등 ESG 경영을 더욱 강화한다면 ESG 점수를 크게 높이고, 불이익도 뛰어넘을 수 있다.
연구팀도 논문에서 “아시아와 북미 지역에서는 기업들이 ESG 정보공개에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표준화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투명한 기업 공개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도 국제 모범 사례를 벤치마킹한 정책을 수립하고, '국가 ESG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는 등의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IFRS재단의 ISSB(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 EU의 지속가능 금융공개 규정(SFDR), 기후 관련 정보공개 태스크포스(TCFD), 과학 기반 목표 이니셔티브(SBTi) 등의 기준을 참고할 수 있다. 법과 제도 확립을 통해 국내 기업들이 보편적으로 ESG 경영에 힘쓰고 있다는 사실을, 노력할 수밖에 없다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아울러 정부는 국내의 독자적인 ESG 평가기준을 지원해 ‘고정관념’을 가진 국제 평가기관의 의존도를 줄일 필요도 있다. 그래야 아시아 디스카운트를 극복할 수 있다.

#강찬수는 1993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생물생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94년부터 중앙일보에서 30년 동안 환경전문기자와 논설위원으로 일하며 환경, 기상, 과학 분야 기사를 6,700여 건을 썼다. 최근에는 녹조 문제를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녹조의 번성-남세균 탓인가, 사람 잘못인가』란 책을 발간했다. 이에 앞서 『사람과 물』,『에코사전 - 생각하는 십대를 위한 환경 교과서』 등을 저술하기도 했다. 산림청 자문위원, 환경신데믹연구소장 부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한국기후변화학회에서 수여하는 기후변화 언론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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