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NDC 40% 감축, 2050 탄소중립 목표에도
기업 온실가스 배출량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
기업도 정부도 안이하게 대처하다간 큰 코 다쳐

한국거래소는 유가증권시장(코스피)의 상장법인 792개사 가운데 20%에 해당하는 160개사가 2023년에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공시했다고 밝혔다. 보고서를 공시한 기업이 2019년에는 20개사에 불과했는데, 4년 사이에 8배로 늘어났다.
특히 국내 시가총액 200대 기업 중에서는 80% 정도가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국내 대기업 대부분이 ESG(환경, 사회책임, 지배구조) 경영에 노력한다는 방증이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는 다양한 내용이 담긴다.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유한킴벌리는 몽골에서 지난 20년 동안 숲 조성 사업을 진행해 여의도 면적 11배에 이르는 3250㏊의 ‘유한킴벌리숲’을 조성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2022년 재생에너지 사용량이 8704GWh(기가와트시)로 전년 대비 65%나 증가했다고 밝혔다. LG전자는 2022년 직·간접적으로 이산화탄소 기준 92만7000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했다면서 2030년까지 순배출량을 제로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대기업들은 자신들의 ESG 경영뿐만 아니라 협력회사의 ESG 경영에도 신경 쓴다. 지난해 1월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조사·분석한 대기업 30곳 가운데 26곳(87%)이 협력사가 ESG 경영을 제대로 실천하는지 평가해서 인센티브나 페널티를 줬다.
대기업이 이처럼 솔선수범하고 협력사들까지 ESG 경영에 참여하도록 독려하고 있다면, 기후위기 등 환경 문제 해결 전망도 그만큼 밝아질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2030년까지 11.4%를 줄여야 하는데
환경부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가 지난해 10월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22년 기준으로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 상위 15개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8년보다 9.1% 늘었다. 1위 포스코와 2~6위 발전사들은 배출량이 줄었지만, 7위 현대제철은 25.7%, 8위 삼성전자는 38.6%나 늘었다. 범위를 배출량 상위 50개 기업으로 넓히더라도 상황은 비슷하다. 2018~2021년 사이 배출량이 5.9% 증가했다.
지난해 4월 수립된 제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에 따르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NDC)을 국가 전체로는 2018년 대비 40%를, 산업 부문은 11.4%를 감축해야 한다. 그런데도 계속 늘어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기업들이 밝히는 폐기물 재활용률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제가 크다. 일부 대기업의 경우 폐기물의 95% 이상을 재활용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시멘트 소성로에서 태우는 것도 재활용으로 간주한다. 폐기물을 소각했지만 열을 회수하는 것이기에 재활용이라는 주장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경우 재활용을 ‘폐기물을 원래와 같은 유형의 제품으로 재가공하거나 유사한 성질의 제품으로 재가공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연료로 사용하는 경우는 포함하지 않는다. 이런 규정에 따라 OECD는 물론 유럽연합(EU)과 미국 등은 폐기물 재활용률을 산정할 때 에너지 회수에 사용된 양, 즉 소각한 양은 제외한다.
ESG위원회 운영도 형식적이란 지적이 나온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국내 200개 가까운 기업들이 ESG위원회 혹은 지속가능경영위원회를 구성,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대부분 1년에 한두 차례 회의를 여는 데 그치고 있고, 회의가 열려도 기업에서 보고한 내용을 청취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들도 미흡하긴 마찬가지
국내 대기업의 탄소중립 전략이 불충분하다는 지적이 해외에서도 나온다. 지난해 2월 독일 비영리단체 신기후연구소(NCI)와 탄소시장감시(CMW)는 24개 글로벌 기업의 기후 공약을 평가한 ‘기업 기후 책임 모니터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삼성전자의 경우 탄소 중립 공약 수준이 ‘매우 낮음’ 평가를 받았다.
공급망 내 탄소 감축 계획이 누락되고, 단기 감축 전략이 불충분하며, 자료 공개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삼성전자의 2050년 탄소중립 선언에는 온실가스 직접 배출인 스코프1과 전력 사용 등을 통한 간접 배출인 스코프2만 포함된 것도 지적됐다. 공급망을 비롯해 제품 소비 단계에서 발생하는 배출량인 스코프3이 빠졌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다국적 기업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제적으로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45% 줄여야 하는 상황인데, 이들 24개 기업(전 세계 배출량의 약 4%를 차지)의 약속은 15% 줄이는 수준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다.
지난해 11월 컨설턴트 액센츄어(Accenture)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대기업 중 18%만이 "2050년까지 순 제로에 도달할 만큼 빠르게" 배출량을 줄이고 있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Boston Consulting Group)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자신의 목표에 따라 탄소 배출량을 줄인 기업은 14%에 불과했다.
안이하게 대처하다 소송을 당할 수도
지난해 2월 변호사로 구성된 영국 환경단체 클라이언트어스는 글로벌 정유회사 셸의 이사진 11명을 영국 기업법에 따라 제소했다.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세계 각국 정부가 탄소중립 정책 시행에 돌입한 상황에서 셸이 기업의 방향을 빠르게 전환하는 데 실패할 경우 회사가 위기에 처하고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무늬만 친환경인 ESG 보고서나 형식적으로만 탄소 감축을 내세우는 약속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국내외에서 감시하는 눈이 많아졌고, 자칫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
국내에서도 오는 2026년부터 대기업을 시작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의무화가 예정된 만큼 당장 새해부터는 ESG 계획을 제대로 세우고 곧바로 실행에 옮겨야 국내외 이해관계자들이 기대하는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린워싱(greenwashing)’이란 비판이 받지 않으려면 먼저 구체적이고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또박또박 실천하는 수밖에 없다. 애매모호한 목표를 제시하고 실천을 뒤로 미루는 것은 더는 통하지 않는다.
ESG 투자의 대명사인 블랙록조차도 투자에서 ESG경영을 우선 고려하지 않았다며 지난달 미국 테네시주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그러니 이젠 정말 ESG를 실행해야 할 수 밖에 없는 시대가 열린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강찬수 ESG경제 칼럼니스트 겸 환경전문기자]

#강찬수는 1993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생물생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94년부터 중앙일보에서 30년 동안 환경전문기자와 논설위원으로 일하며 환경, 기상, 과학 분야 기사를 6,700여 건을 썼다. 최근에는 녹조 문제를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녹조의 번성-남세균 탓인가, 사람 잘못인가』란 책을 발간했다. 이에 앞서 『사람과 물』,『에코사전 - 생각하는 십대를 위한 환경 교과서』 등을 저술하기도 했다. 산림청 자문위원, 환경신데믹연구소장 부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한국기후변화학회에서 수여하는 기후변화 언론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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