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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의 에코인사이드] 극한 기후의 역설..."한파·폭염 오면 오프라인 손님은 증가"

  • 기자명 ESG경제
  • 입력 2024.02.04 23:05
  • 수정 2024.02.18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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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기후의 경제적 파장에 대한 연구 활발
기후변화로 인한 세계 GDP 타격 불가피하지만
일부 업종과 서비스는 극한 기후로 매출 늘기도

매서운한파가 이어지는 지난달 24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인근에서 시민들이 두터운 외투를 입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매서운한파가 이어지는 지난달 24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인근에서 시민들이 두터운 외투를 입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SG경제=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최저기온이 -14°C까지 떨어졌던 지난달 23일 아침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A씨는 정류장에서 버스가 7분 뒤에 도착한다는 것을 확인한 뒤 인근 편의점에 들어갔다. 매서운 추위라서 잠시라도 따뜻한 곳에 들어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평소 사무실에 도착해서 아침 커피를 마시던 A씨였지만, 편의점에 머무는 동안 따뜻하게 데워진 캔 커피를 하나 샀다.

이처럼 한파나 폭염이 심할수록 서울지역에서는 오프라인 소매점 매출이 평소보다 오히려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기후변화로 폭염 일수가 늘면 미래의 소비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유종현 교수와 KAIST 기술경영학부 엄지영 교수 등은 최근 ‘소매 및 소비자 서비스 저널(Journal of Retailing and Consumer Services)’에 발표한 논문에서 “한파로 기온이 -15°C 이하로 떨어진 날이 하루 늘어나면 서울 오프라인 소매점의 월간 신용카드 거래액이 11% 늘었다”고 밝혔다. 폭염으로 기온이 35°C를 초과하는 날이 하루 늘면 거래도 4% 증가했다.

한파·폭염 때 소비자들은 온도가 조절되는 실내 환경으로 이동하고, 뜨겁거나 차가운 음료와 같이 ‘열적 편안함’을 제공하는 제품을 구매하는 경향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강추위 하루 늘면 소매 매출 11% 증가

연구팀은 S카드에서 100만 개 이상의 신용카드 거래 내역을 입수했다. 서울 시내 63개 업종 6만8000개 매장에서 얻은 4년치(2017~2020년) 데이터를 425개 구역(동)으로 나눠 분석했다.

연구팀은 또 지상 관측과 위성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로세로 1㎞ 해상도의 기온 데이터를 얻었고, 이를 50m 해상도로 재구성한 뒤 425개 구역별 평균기온 변화를 15분 단위로 산출했다.

2018년 8월 서울 425개 동별 신용카드 거래액. 짙은 색은 거래 액수가 많음을 나타낸다. [자료: Journal of Retailing and Consumer Services, 2024]

분석 결과, 기온 –5°~25°C의 ‘정상 온도’를 보인 날과 비교했을 때, 기온이 상당히 낮거나(-15~-5°C), 상당히 높은 경우(25~35°C)에는 소매 판매가 1% 감소했다. 이는 나쁜 날씨가 소매 판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기존 연구 결과와 일치한다.

하지만, 기온이 -15°C 이하로 떨어지거나 35°C 이상으로 상승한 극단적인 기온이 나타날 때는 매출이 오히려 급증했다. 기온이 -15°C 이하로 떨어지는 기간이 하루씩 늘어날 때마다 지역 및 소매 부문의 월매출은 약 11% 증가했다. 마찬가지로 35°C를 초과하는 날이 늘어날 경우 매출은 약 4% 증가했다.

기상청은 아침 최저기온이 –15℃ 이하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한파경보를, 일최고 체감온도가 35℃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폭염경보를 발령한다.

열적 쾌적성 가설로 설명

연구팀은 한파·폭염이 극심할 때 매출이 오히려 늘어나는 현상을 ‘열적 쾌적성 가설’로 설명했다. 인체에서 열이 발생하는 것과 주변으로 열을 잃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이룬 상태가 최적의 열적 쾌적성을 달성한 것이고,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이런 환경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연구팀 분석에서 비디오나 보드게임, 미술·요리 강습을 제공하는 실내 엔터테인먼트 및 게임 장소에서의 매출은 극한 기온에서 급증했다(한파 때에는 26%, 폭염 기간에는 7% 증가). 피트니스센터와 골프장 등 실내스포츠 경기장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관찰됐다.

쾌적한 온도를 갖춘 장소를 찾은 행동은 폭염 시 냉각 기능을 제공하거나 추운 날씨에 따뜻함을 제공하는 제품 또는 서비스 구매로까지 확장됐다. 극한 기온 기간 카페·레스토랑·빵집·편의점 내 매출이 크게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카페는 기온이 매우 낮을 때 매출이 약 10% 급증했고, 기온이 높을 때는 3% 증가했다. 편의점 매출은 극저온에서는 15%, 극고온에서는 5% 증가했다.

여름에는 차가운 국수, 겨울에는 따뜻한 국물을 제공하는 한식당 매출도 추운 날씨에는 10%, 더운 날씨에는 5% 늘었다. 차·커피 등의 음료도 판매하는 빵집은 폭염과 한파 모두에서 매출이 7% 증가했다.

서점은 한파 때만, 에어컨 등 가전제품 판매점은 폭염 때만 매출이 늘었다.

극심한 기상 조건은 대중교통보다 승용차 이용을 늘려 차량 연료 판매 증가로 이어졌다. 휘발유·디젤 판매가 한파와 폭염 때 각각 14%, 15% 늘었다. 추운 날씨에는 의료 서비스 수요도 눈에 띄게 늘었는데, 대학병원은 11%, 약국은 14%, 한의원은 15% 증가했다. 극심한 추위가 면역체계 기능을 손상시킨 탓일 수도 있다.

기후변화 지속하면 폭염 늘어나

연구팀은 향후 기후변화가 계속되면 폭염·한파의 지속기간·강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기상청의 기후변화 시나리오 가운데 온실가스 감축이 이뤄지지 않는 최악의 시나리오(RCP8.5)를 가정하면, 폭염일수는 현재 연간 15일에서 2071년~2100년까지 68.7일로 늘어나는 반면 한파일수는 4.4일에서 0일로 줄어들 전망이다.

폭염 일수가 늘어나면 폭염 관련 매출도 늘어나 2071~2100년 매출은 현재보다 평균 34~215% 증가할 수 있다. 반면, 한파 기간이 줄면 2071년~2100년까지 매출이 41~48% 감소할 수 있다. 두 가지 효과를 모두 고려하면 매출에 대한 순 영향은 7% 감소(온실가스를 대폭 줄이는 최상의 시나리오 RCP 2.6 하에서)에서 166% 증가(RCP8.5 하에서)까지 다양하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기온에 따른 소매 거래 변화. 기온이 -15°C 이하로 떨어지면 지역 및 소매 부문의 평균 매출은 약 11% 증가했고, 35°C를 초과하는 경우 매출은 약 4% 증가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자료: Journal of Retailing and Consumer Services, 2024]
기온에 따른 소매 거래 변화. 기온이 -15°C 이하로 떨어지면 지역 및 소매 부문의 평균 매출은 약 11% 증가했고, 35°C를 초과하는 경우 매출은 약 4% 증가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자료: Journal of Retailing and Consumer Services, 2024]

하지만 오프라인 소매 매출이 늘어난다고 기후변화를 반길 수만은 없다. 다른 부문의 피해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우선 기후변화로 비가 내리는 날이 늘어나고 강수량이 증가한다면 경제성장이 둔화할 수도 있다. 지난 2022년 1월 독일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 등이 네이처(Nature)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강우량이 1㎜를 초과하는 일수가 증가하면 각국의 성장률은 감소한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 해안이나 유럽 중부, 한·중·일 등 동아시아 등 산업지역이 극심한 일별 강우, 즉 폭우로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경제 전반 고려하면 반길 수 없어

지난해 10월 한국은행 금융안정국 지속가능성장연구팀 김재윤 과장 등은 '수출입경로를 통한 해외 기후변화 물리적 리스크의 국내 파급영향'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 각국이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하지 않아 지구 평균 온도가 계속 상승하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은 2100년경 최대 5.4% 감소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미국 델라웨어 대학 ‘기후변화 과학 및 정책 허브’ 연구진은 지난해 11월 내놓은 ‘손실과 피해 현황: 기후변화가 생산량과 자본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2022년 기후변화로 세계 GDP(국내총생산)에서 손실이 1940조 원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기후변화와 관련한 전 세계 GDP 손실률이 1.8%, 규모는 1조5000억 달러(약 1940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 한국도 기후변화 탓에 2022년 2.6%의 GDP 손실을 본 것으로 평가됐다.

기후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경제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를 예측하고 대비하면 그 자체가 꽤 쓸만한 비즈니스가 되겠지만, 거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작은 이익에 눈멀어 큰 재난을 불러오는 우를 범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큰 틀에서 기후 위기를 미리 막으려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

더운 날 카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더 팔리고, 비 오는 날 편의점에서 막걸리와 부침개 상품 매출이 조금 는다고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강찬수 칼럼니스트 겸 환경전문기자]

                          강찬수 칼럼니스트 겸 환경전문기자
                          강찬수 칼럼니스트 겸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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