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피하려면 화석연료 사용 줄여야
남은 석유 매장량 모두 사용할 수는 없어
사회-환경 민감 지역 먼저 채취 금지해야

[ESG경제신문=강찬수 환경전문기자] 기후위기를 피하기 위해 지구 평균 기온을 산업화 이전(1850~1900년)보다 1.5도 이상 오르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는 것이 국제 사회의 합의다.
이 ‘1.5도 목표’를 지키려면 전 세계 땅속, 바다 밑에 묻혀 있는 석유 대부분의 채취를 금지해야 한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대학과 네덜란드 에라스무스 대학 등 연구팀은 최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Nature Communications)’ 저널에 게재한 논문에서 1.5도 목표를 지키기 위해서 채취해서는 안 될 석유 매장 지도, 즉 전 세계 채취 불가(연소 불가) 석유 지도를 공개했다.
캐내고 태우면 안 되는 석유(unburnable) 석유가 묻혀 있는 장소를 표시한 지도다.
1.5℃ 목표 지키려면 1524기가 배럴 남겨야
![전 세계 석유매장량 지도. (단위: 기가배럴) [자료: Nature Communications]](https://cdn.esgeconomy.com/news/photo/202403/6121_8517_5849.png)
연구팀은 우선 ‘탄소 예산(carbon budget)'부터 따졌다. 기온 상승을 1.5도 오를 때까지 배출할 수 있는 탄소, 남아 있는 탄소의 양이 바로 탄소 예산이다.
1.5도로 제한할 확률이 50%인 경우 2020년 기준으로 남은 탄소예산은 이산화탄소(CO2)로 500기가톤(Gt), 즉 5000억톤이다. 1.5도로 억제할 확률을 67%로 높이면 남은 탄소 예산은 400기가톤으로 줄어든다.
그런데 전 세계에서 매년 42기가톤씩 배출하고 있어, 2028년이면 탄소 예산은 고갈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때문에 지금처럼 화석 연료를 계속 사용한다면 1.5도 목표는 달성 불가능하다.
전 세계 화석 연료 자원을 모두 태운다면 CO2 배출량은 거의 1만1000기가톤에 이른다. 화석 연료를 다 태우면 1.5도 탄소 예산의 20배가 훨씬 넘는 이산화탄소가 나오기 때문에 화석연료 대부분은 사용하지 않고 남겨둬야 하는 셈이다.
영국 유니버스티 칼리지 런던 연구팀은 지난 2021년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 "2050년까지 기존 석유 및 가스 자원의 각각 71%와 81%가 추출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논문에서 바르셀로나 대학 연구팀은 기온 상승을 1.5도 미만으로 억제하려면 석유의 경우 쉽게 채취할 수 있는 재래식 석유 자원 2276기가배럴(Gbbl, 1Gbbl=1억5890만㎥) 중에서 1524기가배럴(Gbbl, 1Gbbl=1억5890만㎥), 즉 2422억㎥은 개발하지 않은 상태로 두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생물다양성 풍부한 곳 채취 포기해야
![바르셀로나 대학 연구팀이 제시한 석유 채취 불가 지역 지도. 이들 지역에서 석유 채취를 금지하면 609기가배럴의 석유를 땅속에 남겨둘 수 있다. [자료: Nature Communications, 2024]](https://cdn.esgeconomy.com/news/photo/202403/6121_8515_567.jpg)
문제는 누가 석유 개발을 포기할 것인가다. 국제적 합의에 의해 석유 채취를 금지한다면 보상이 뒤따라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정치적 논란이 예상된다.
이에 따라 연구팀은 논문에서 석유 채취를 포기해야 하는 지역을 선정하는 기준을 제시했고, 그걸 지도에 표시한 것이다.
연구팀은 우선 사회-환경적으로 민감한 모든 지역에서는 석유 채취를 완전히 금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생물다양성이 극히 풍부한 지역(hotspot), 자연 보호 지역, 생물 다양성 보전 우선 지역, 고유종이 풍부한 지역, 도시 지역, 자발적으로 고립 생활하는 원주민의 영토 등을 꼽았다. 남한 면적의 300배에 가까운 2950만 ㎞2의 석유 채취 불가 지역, 채취 금지 구역이 제시된 것이다.
연구팀이 석유 채취 금지 지역으로 표시한 곳에 묻힌 석유는 전 세계 재래식 석유 자원의 26.8%(609기가배럴)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들 지역에서 석유 채취를 금지하면 (기후위기 예방 외에도) 추가적인 지속 가능성 이점을 얻을 수 있다”면서 “화석 연료 채취는 생물 다양성에 심각하고 지속적인 악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잠재적으로 원주민의 인권이나 지역 주민의 건강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이 제시한 609기가배럴은 남겨둬야 할 재래식 석유 자원 1524기가배럴의 절반도 안 된다. 이에 따라 연구팀은 나머지 915기가배럴의 채취를 금지할 대상지를 찾아 나섰다.
연구팀은 추가 대상지 선정을 위한 3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는데, 이 가운데 하나가 인구밀도 기준이다. 농촌 인구 밀도가 ㎞2당 1명이 넘을 경우 그 지역 땅속 석유 자원을 채취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육상과 해상의 고유종(種)의 풍부함 등을 기준으로 담은 시나리오도 제시했다.
‘금지지역’ 내 개발 땐 압력 예상

연구팀은 “석유와 마찬가지로, 가스와 석탄에 대한 채취 금지 지도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서 “북극이나 초심해에서 자원을 채취하는 것도 금지 대상에 포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지금까지도 국제 사회에서는 화석 연료 생산을 제한하기 위한 공급 측면의 기후정책에 대해 논의가 없지 않았다. 대표적인 논의가 화석연료 추출에 세금 부과하기, 화석 연료 보조금 없애기, 추출 중단 조치 또는 할당량 제시, 거래 가능한 생산 허용량 설정 등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이런 채취 유예를 부분적으로 시행하기도 했다. 석유 및 가스 생산의 단계적 중단을 약속하는 최초의 글로벌 정부 연합인 ‘탈석유가스 동맹(Beyond Oil and Gas Alliance)도 설립됐다.
환경운동 단체들도 화석 연료 채취 프로젝트를 중단시키기 위해 공격을 감행하기도 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역시 화석 연료 채취에 대한 투자를 급격히 줄여야 하고, 여러 기존 프로젝트가 '기술적 수명'이 끝나기 전에 폐기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연구팀은 “에너지 기업이나 정부, 투자자가 사회-환경적으로 민감한 영역과 겹치는 지역에서 화석 연료 자원 채취를 피한다면 좌초 자산이 될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연구팀이 제시한 채취 금지 구역에서 향후 석유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할 경우 달라질 미래 환경 정책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 사업을 중단하라는 사회 운동의 압력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경고다.
[강찬수 칼럼니스트 겸 환경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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