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두고 인생 정리하는 의미 아닌
은퇴 생활 즐기기 위한 목록 만들어야
세계일주, 국내여행, 외국어 배우기 등

버킷 리스트는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과 보고 싶은 것들을 적은 목록이다. 유럽의 중세 시대 때 죄수를 뒤집어 놓은 양동이(bucket)위에 올려놓고 올가미를 씌운 뒤 그 양동이를 걷어참으로써 교수형을 집행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다.
지난 2007년 ‘버킷리스트’라는 미국 영화가 상영된 적이 있다. 모건 프리먼과 잭 니콜슨이 주연한 이 영화는 자동차 정비사 카터(모건 프리먼)가 1년 시한부 생명 선고를 받고 입원한 병원에서 46년전 대학 신입생 시절 철학과 교수가 과제로 내줬던 버킷 리스트를 떠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카터는 우연히 같은 병실을 쓰게 된 사업가 에드워드(잭 니콜슨)과 너무나 다른 서로에게서 중요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둘은 남은 여생 동안 하고 싶은 일을 다 해보자는 데 의기투합하고 버킷 리스트를 작성한다. 그러곤 버킷 리스트를 실행하기 위해 병원을 뛰쳐나가 여행길에 오른다.
아프리카 세렝게티에서 사냥하기, 문신하기, 카레이싱과 스카이 다이빙, 눈물 날 때까지 웃어 보기, 가장 아름다운 소녀와 키스하기, 화장한 재를 깡통에 담아 경관 좋은 곳에 두기… 등등.
목록을 지워나가기도 하고 더해 가기도 하면서 두 사람은 많은 것을 나누게 된다. 인생의 기쁨, 삶의 의미, 웃음, 통찰, 감동, 우정까지…. 영화는 인생의 절박한 순간에 맛본 경험일수록 의미가 있고 가치도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러나 버킷 리스트는 꼭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만 유효한 것이 아니다. 만약 우리가 은퇴와 동시에 자신만의 버킷 리스트를 만들고 하나 하나 행동에 옮긴다면 카터나 에드워드보다 더 오랫동안 행복하게 생애의 마지막 구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30년 ‘포스트 은퇴’ 인생을 보람있게 즐기기
죽음을 앞두고 인생을 정리하는 의미의 버킷 리스트가 아니라 30년 넘는 ‘포스트 은퇴’ 인생을 보람있게 즐기기 위한 버킷 리스트가 필요하다.
미국의 사회학자 윌리엄 새들러는 그의 저서 『서드 에이지, 마흔 이후 30년』에서 40대부터 70대 중 후반의 시기를 '서드 에이지(Third Age)'로 구분하고 이 시기의 가장 큰 특징으로 ‘2차 성장’을 꼽았다.
사람은 일생에 두번의 성장을 하게 되는데, 한번은 20대 초반까지 학습을 통해 경험하는 1차성장이고, 다른 하나는 서드 에이지 때 자기실현을 통해 경험하는 2차성장이다. 문제는 1차성장이 누구나 겪는 보편적 성장이라면, 2차성장은 사람마다 전혀 다른 형태로 진행되며 준비된 사람만이 경험하는 성장이라는 것이다.
윌리엄 새들러는 이렇게 말했다. "2차 성장은 우리에게 대안을 제시해 준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잠재된 재능을 계발하며, 그릇된 점을 바로 잡고, 자신의 흥미와 가치를 따르고, 독창성을 향상시키고, 타인에게 뭔가를 기여하게 한다. 서드에이지의 삶에서는 일과 여가의 구분이 그 전만큼 명확하지 않고, 일과 여가를 병행하는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다.
또 성공적인 서드에이지를 보내고 있는 사람을 보면 남이 보기 좋은 직업보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그 안에서 만족감을 얻는다. 서드 에이지는 외적으로 훌륭한 성공을 이루기보다는 내적으로 더욱 깊어지고 그로 인해 행복해지는 시기다."
설레는 포스트 은퇴 인생
2차 성장을 경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하다. 자신만의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고 하나씩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 은퇴를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인생의 후반기를 새롭게 설계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다양한 성장과정을 자신의 인생에 끼워넣는 것이다.
성장은 새로운 선택권을 부여한다. 세상 밖으로 밀려나와 죽음만을 기다리는 의미없는 여생이 아니라 새롭게 펼쳐지는 인생 후반기를 자기 의지대로 설계하고 진화해가는 제2 도약기로 만드는 것이다. 물론 버킷 리스트는 은퇴 후 재정형편에 맞는 현실적인 내용이어야 한다.
버킷 리스트를 쓰다가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당장 죽어도 상관없다고 할 정도로 이루기 힘들 것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냥 이루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리스트 정도로 생각하고 가볍게 작성하는 것이 좋다.
버킷 리스트는 군대의 소망 리스트와 유사하다. 군대에서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것 등을 적었어도 정작 휴가 나와 몇 개 먹고 즐기고 나면 나머지는 그냥 덤덤해진다. 대신 군대 간 사이에 등장한 새로운 것에 취해 새로운 소망 리스트가 생겨난다. 버킷 리스트로 그런 식으로 달성해 나가면서 한편으론 이미 작성한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걸 채워 넣은 유연성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을 모두 여행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가 몇 군데 다녀온 뒤 여행지에서 얻은 새로운 소망을 써 넣거나 자신이 정말 갖고 싶었던 차를 시승해 보고는 부족한 승차감 때문에 그 차를 지우고 다른 새 차를 끼워 넣는 식이다.

얼마 전 한 국내 대기업에서 직원들에게 버킷 리스트를 만들어보라고 했더니 혼자서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세계일주 떠나기, 다른 나라 언어 하나 이상 마스터하기, 열정적인 사랑과 행복한 결혼, 국가가 인증하는 자격증 따기, 국내여행 완전 정복, 나보다 어려운 누군가의 후원자 되기, 우리 가족을 위해 내 손으로 집 짓기, 나 혼자만 떠나는 한 달간 자유여행, 생활 속 봉사활동과 재능 나눔, 1년에 책 100권 읽기 등으로 나타났다.
다음은 한 일간지에서 소개한 주제별 버킷 리스트다.
◇여행=1 유럽 여행가기, 2 경이로운 대자연 경험, 3 시골서 한달 살기, 4 1년 동안 세계일주, 5 혼자 여행 떠나기, 6 제주 올레길 트레킹 7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기, 8 캠핑카·크루즈 여행하기, 9 해외에서 크리스마스 보내기
◇취미=1 외국어 배우기, 2 한가지 악기 마스터, 3 에세이·시 등 글쓰기, 4 고전 100권 읽기, 5 매주 공연·전시회 보러가기, 6 텃밭 가꾸기, 7 그림 관련 취미 갖기, 8 수영 배우기, 9 취미 동호회 가입, 10 수화 배우기
◇관계=1 가족 들과 여행하기, 2 매년 가족사진 찍기, 3 누군가 멘토되기, 4 옛날 동창 만나기, 5 애인 같은 이성 친구 만들기, 6 외국인 친구 사귀기, 7 7명 용서하기, 8 스마트폰 전화번호부 정리, 9 첫사랑에게 편지쓰기
◇일 성취=1 제2 직업 만들기, 2 한 분야 최고 되기, 3 내 이름으로 책 출간하기, 4 개인 사무실 만들기, 5 나만의 강연 열기, 6 귀농하기, 7 창업하기, 8 10년 후부터 일 안하고 놀기, 9 자격증 10개 따기
◇보람=1재능기부하기, 2 봉사단체 가입하기, 3 어려운 아이들 후원하기, 4 협동조합 만들기, 5 사회적 기업 운영, 6 장기 기부하기, 7 아프리카 봉사활동 가기, 8 봉사활동 1000시간 채우기, 9 유기견 돌보기
◇일상=1 유언장 작성 및 웰다잉 실천하기, 2 나쁜 습관 고치기, 3 전원주택에서 살아보기, 4 다이어트·금연 성공하기, 5 좋아하는 가수 콘서트 가기, 6 드레스 입고 파티가기, 7 세컨드 하우스 짓기, 8 레스토랑에서 고급 코스요리 먹기, 9 주식 투자하기
◇도전=1 버킷리스트 만들기, 2 어릴 적 꿈 재도전하기, 3 몸짱 만들어 사진 찍기, 4 무대공연 데뷔하기, 5 파워블로거 되기, 6. 공모전 참가하기, 7 파격적으로 염색하기, 8 무인도에서 살아보기, 9 타투해 보기
[서명수 ESG경제신문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