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은 보유하는 순간 소유효과 작용
소유효과 함정에 빠지면 처분 힘들어져
시장 회복기에 부동산 구조조정 나서야

우리나라 사람은 부동산 사랑이 유별나다. 집이 있건 없건 재테크를 할 때 주식같은 금융자산보다는 부동산을 선호한다. 돈을 벌어다 주는 것은 부동산 뿐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가정이나 집은 재산목록 1호다. 한국 가계의 자산 중 부동산 보유 비중은 64%로 미국 28%, 일본 34%보다 월등히 높은 건 그래서다.
노후의 안정적 삶을 위해 정부와 언론에서 부동산 비중을 줄이고 금융자산을 늘리라고 귀가 따갑도록 이야기하지만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아마 한국 사람의 부동산 사랑이 일종의 ‘문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부동산은 ‘소유 효과’가 강력하게 작용하는 재산이다. 소유하는 순간 물건의 가치가 높게 느껴지는 것이 소유효과다. 소유효과 그 자체야 그렇게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자기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까. 문제는 소유효과의 함정에 빠졌을 때다. 소유물에 집착한 나머지 비상식적인 행동하기 때문이다.
애착 강한 물건일수록 소유효과 작용
소유효과는 오래 소지한 물건일수록 강하게 나타난다. 중고품이 거래되는 벼룩시장에선 판매자가 가격을 높게 부르는 바람에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그래서 벼륙시장에서 판매자는 소유효과를 버리지 않으면 물건의 새주인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일반 시장의 상인은 판매할 상품을 소유물이 아니라 잠시 보관하는 물건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소유효과의 영향을 덜 받는다.
그러나 부동산은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여서 다른 재산에 비해 애착이 강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쉽게 소유효과의 함정에 빠진다. 아파트를 팔 때 처분에 따른 손익만 따지면 되는 데, 그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아파트 소유자는 과거 집값이 최고치에 올랐던 추억 때문에 그 가격 아래에선 매도를 머뭇거리게 된다. 게다가 자신의 아파트가 어떤 아파트보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소유효과도 작용한다.
부동산 상승기에 어떤 지역의 아파트가 얼마에 팔렸는데, 왜 내 집은 오르지 않느냐며 속앓이를 하는 건 그래서다. 여기서 도가 지나치면 아파트 주민들끼리 얼마 이하로는 내놓지 말자며 방을 써 붙이는 담합 행위를 하기도 한다. 다 소유효과에 빠져 상식 밖의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한 지인의 이야기다. 그는 10년 전 은행 빚까지 동원해 7억원을 주고 아파트를 한 채 샀다. 이 아파트는 부동산 호황기 때 14억원으로 올랐다. 내 집 마련은 물론 재테크도 성공했다며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이 집은 전 세계적인 금리 상승의 여파로 10억원으로 떨어졌다.
노후 준비를 위해 집을 팔려고 내놨지만 문의조차 없었다. 최근 부동산 회복세를 타고 호가가 조금씩 오르더니 11억5000만원에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이 사람에게 집을 팔면 4억5000만원을 버는 걸까, 아니면 2억5000만원의 손해를 보는 걸까.
간단히 생각하면 아주 쉬운 문제다. 아파트 처분에 따른 손익만 따져 보면 된다. 집을 팔면 전체 자산이 늘고 원하는 노후 준비에도 나설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팔면 된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는 14억원이란 추억의 가격이 들어 있다. 11억5000만원에 팔면 2억5000만원을 밑지는 것 같다.
결국 그는 아파트 가격이 좀 더 오를 때까지 관망하기로 하고 매물을 거둬들였다. 만약 집을 구입한 가격인 7억원이 그의 머릿속에 있다면 4억5000만원을 남기고 11억5000만원에 팔아 발등의 불인 빚 상환과 노후 준비에 들어갔을 것이다.
집이 팔리지 않는 한 돈은 집에 묶여 있다. 돈은 굴려야 자가증식을 하면서 재산을 불릴 수 있는데 이런 기회를 포기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만약 11억5000만원에 팔아 규모가 작은 아파트로 옮기고 나머지 돈을 금융상품에 투자한다면 적지 않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5억원을 연 3%짜리 채권 펀드에 넣어두어도 세전 1500만원의 이자수입이 기대된다. 하지만 대개 소유효과 때문에 이런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다. 최악의 경우 11억5000만원보다도 더 낮은 가격에 팔아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는데도 말이다.
지금 부동산 시장은 바닥을 치고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게 얼마나 갈지 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다수 의견이다. 정부의 인위적 거래 활성화 정책과 계절적 요인으로 반짝세에 그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의 기초체력은 여전히 부실해 보인다. 국내외 경제 전반의 불투명성은 걷혀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1000조원이 넘는 가계대출은 국가 경제를 위협하는 뇌관이다. 금리 또한 높은 수준이다. 금리가 떨어질 만큼 떨어져 시중 부동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오지 않는 이상 아파트의 본격 상승은 요원해 보인다.
노후엔 주거 안정성 필수
이런 경제적 변수 말고 인구구조학적으로도 부동산은 예전의 영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재산이 부동산에 몰려 있는 베이비부머들은 노후를 위한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가격이 오르면 처분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들의 매물을 이후 세대가 받아줘야 하는데, 저출산 추세로 앞으로 집을 사들일 젊은 세대는 갈수록 줄어들게 돼 있다. 더구나 젊은이들에게 집은 ‘소유’에서 ‘거주’ 개념으로 바뀌면서 자산으로서 가치와 매력이 떨어게 될 전망이다.
집을 가진 사람들은 부동산 시장이 어느정도 회복됐을 때 매각 기회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본전에 집착하기보단 본인의 재무상태를 정상화하는 계기로 삼으라는 이야기다. 소유효과 함정에 빠져 매매결정이 힘들다면? 거래를 해 전체 자산이 늘어난다면 눈을 질끈 감고 결단에 옮기도록 하자. 원하는 가격과 실제 시세에만 주목하다간 죽도 밥도 안 된다.
그렇다고 내 집 없이 전세나 월세로만 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불요불급하게 큰 집을 깔고 앉아 있는 게 문제이지 살림 형편에 맞도록 규모를 줄이는 구조조정은 꼭 필요하다. 특히 노후엔 주거의 안정성 또한 필수적이다.
계약 만료 때마다 임대료 걱정, 이사 걱정을 해야 한다면 이만저만한 스트레스가 아닐 것이다. 더구나 집은 연금재원으로도 써먹을 수 있다. 주택연금이다. 주택연금은 내 집에 살게 하면서 생활비도 해결해주는 똑똑한 노후 도우미다. 내 집에서 주거 문제를 해결하면서 안정적 생활자금까지 얻는 '일석이조'의 선택인 것이다.
[서명수 ESG경제 은퇴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