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불확실성과 관세 전쟁, 美전기차 시장 변수
中, 전기차 판매 둔화 속 업계 통합 가속화 가능성
유럽, 강화된 탄소 규제로 전기차 판매 호조 기대

[ESG경제=이진원 기자] 올해도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이어지겠지만, 3대 전기차 시장인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사이에선 온도 차가 클 것으로 예상됐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 정책이 강화되고, 기술 발전과 인프라 확충이 뒷받침되면서 올해도 전기차 수요는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자동차 리서치 회사인 S&P 글로벌 모빌리티는 지난해 말 발표한 보고서에서 올해 전 세계 전기차 판매는 29.9% 증가한 1510만 대에 이르고, 전기차의 자동차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의 13.2%에서 올해 16.7%로 올라갈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월 20일 취임 후 선거 공약대로 전기차 보조금을 줄이거나 없애고, 관세 전쟁이 심화하고, 중국 경제 둔화세가 이어진다면 미국과 중국의 전기차 시장은 주춤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반면 올해부터 더 엄격한 탄소 배출 규제가 시행되는 유럽의 경우 제조사들이 자의건 타의건 간에 전기차 판매를 늘려야 하는 처지라 판매 성장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정치적 불확실성 커진 미국
올해 미국의 전기차 시장이 성장하려면 정치적 불확실성을 잘 헤쳐나가야 한다. S&P 글로벌 모빌티니의 자동차 인텔리전스 부책임자인 스테파니 브린리는 9일 “트럼프 집권 2기를 맞아 전기차 시장에 불확실성이 가득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미국 소비자들은 특정 신형 전기차에 대해 최대 7500달러(약 1100만원)의 연방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자동차 제조업체들도 전기차 생산 및 인프라에 대한 연방 정부의 지원을 통해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트럼프 2기에선 이런 모든 혜택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주도해 통과시킨 기후 법안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포함된 전기차에 대한 연방 세액공제를 자동차 산업에 해를 끼칠 ‘녹색 신사기(green new scam)’라고 비난하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다만 로이터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해 보면 차기 행정부는 자동차 제조업체에 잠재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산업의 광범위한 규제 완화를 추진할 것으로도 예상되기 때문에 트럼프가 세액공제 혜택을 줄이더라도 그것이 전기차 시장에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관세도 전기차 시장에 위협을 줄 수 변수로 거론된다. 트럼프는 멕시코, 캐나다, 중국 등에서 수입되는 자동차 부품 등을 포함한 제품에 부과하겠다고 위협해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길 탈 캘리포니아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 전기차 연구센터 소장은 “이러한 정책 변화는 미국 내 전기차와 부품의 생산 확대를 통해 얻은 비용 절감 효과를 상쇄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무역 장벽은 저렴한 모델을 생산하는 외국 기업이 미국 시장에 진입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다시 말해서 미국 소비자들이 전기차 구매를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인 높은 가격 문제가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심화하면서 전기차 수요를 억제하게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일부 대형 전기 자동차 제조업체가 소비자와 제조업체에 여러 혜택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판매 실적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점에서 관세 전쟁으로 가격 인하 가능성이 낮아지는 건 그들에게 중대한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테슬라의 경우 지난해 연간으로 전년 대비 약 2만 대가 적은 178만9226대의 차량을 인도하면서 10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인도량이 전년보다 줄어들었다.
성장 둔화 예상되는 중국
세계 1위 전기차 시장은 중국의 전기차 시장은 계속 성장하겠지만 성장 강도는 지난해보다는 큰 폭으로 둔화할 것으로 전망됐다.
중국승용차협회(CPCA)에 따르면 배터리 전용과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포함한 전기차(중국에서는 신에너지차로 통칭) 판매량은 지난해 42% 급증하여 약 1100만 대에 달했다.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비야디의 지난해 판매량은 2023년까지 최소 20% 성장하겠다는 목표를 훨씬 뛰어넘는 40% 이상 늘어난 약 430만 대에 달했다.
그러나 14일 CNBC가 인용한 HSBC 분석가들은 전기차 업계의 통합이 심화하는 가운데 올해 중국의 전기차 판매가 20% 증가에 그치고, 비야디의 판매 성장률은 약 14%에 불과할 것으로 내다봤다.
HSBC의 중국 자동차 연구 책임자인 유치안 딩은 보고서에서 “현재 중국 자동차 업체들은 매출 증가에도 불구하고 마진이 감소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수 없는 이상 업계 통합의 속도가 빠르게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경쟁하듯 급성장하는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면서 고객 유치를 위해 가격 경쟁을 하는 게 독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회사 샤오미는 지난해 테슬라의 모델 3보다 4000달러(약 585만원) 저렴한 가격에 더 긴 주행 거리를 자랑하는 SU7 전기 세단을 출시하기도 했다.
전기차 판매 점유율 급등도 중국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둔화할 것으로 보는 주요 이유로 거론됐다. CPCA는 현재 중국의 전기차 판매 점유율이 지난해 하반기까지 50%를 넘어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적인 신용평가사인 피치의 중국 자회사인 피치보화의 원유 저우와 애널리스트는 “이런 높은 점유율 때문에 2025년에는 신형 전기차 판매 성장률이 15%에서 20%로 둔화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EU, 엄격해진 규제로 전기차 시장 활성화 기대
올해 EU의 전기차 시장은 미국과 중국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긍정적이다.
EU는 올해부터 자동차 제조사들에게 더욱 엄격한 탄소 배출 규제를 시행한다. 이 규제에 따르면 신차의 평균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을 2021년 대비 15% 감축해야 한다. 감축하지 못한다면 최대 150억 유로(약 22.5조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벌금을 피하려면 판매 차량의 최소 20%가 전기차여야 한다. 지난해 유럽 제조사들의 전기차 판매량이 전체 차량 판매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3%를 약간 넘는데 그쳤다는 점에서 이는 제조업체들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럽게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규제를 따르고 벌금을 내지 않기 위해 제조사들이 적극적인 판매 활동에 나서면서 유럽의 전기차 시장은 지난해보다는 더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다.
펠리페 로드리게스 국제청정교통위원회(ICCT) 유럽 지역 부국장은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새로운 규제를 충족하기 위해 앞으로 몇 달 안에 저렴한 전기차 모델을 다수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ICCT에 따르면 제조업체들은 전차 판매되는 차량에서 전기차의 비중을 약 28%까지 확대해야 규제를 충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유럽 자동차 제조사들은 전기차 판매를 늘리 귀애 내연기관차(ICE) 가격을 인상하는 전략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전기차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 소비자들의 선택을 유도하는 게 목적이다.
또한 일부 국가에서는 전기차 수요를 늘리기 위해 전기차 보조금 정책도 재검토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독일은 전기차 보조금을 축소했지만, 강화되는 EU 탄소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보조금 재도입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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