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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인, 한전·발전사 상대 첫 손배소...기후피해 책임 물어

  • 기자명 김연지 기자
  • 입력 2025.08.12 11:30
  • 수정 2025.08.12 15: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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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기후피해 농민 개인에게 전가...누적 배출 1위 한전 책임져야"
한전 "기후위기 심각성에 공감...법령과 정부 정책 성실히 따를 것"

국내 농업인 6명이 12일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와 5개 발전 자회사를 상대로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사진=기후솔루션
국내 농업인 6명이 12일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와 5개 발전 자회사를 상대로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사진=기후솔루션

[ESG경제신문=김연지 기자] 국내 농업인 6명이 12일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와 5개 발전 자회사를 상대로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소송에서 소송대리인을 맡은 법무법인 위온과 기후솔루션은 "국내 온실가스 누적 배출 1위 한전 및 발전 자회사를 상대로 농업 분야 기후피해에 직접 법적 책임을 묻는 첫 민사소송 사례"라면서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 구조를 배출원에 근본적으로 묻고 기후 취약계층인 농업인을 포함한 국민들의 생존권과 재산권을 보장하기 위한 상징적 순간"이라고 밝혔다.

"이상기후로 농업 생산량 위협...피해복구는 농민 개인의 몫"

농업은 기후조건에 큰 영향을 받는 산업으로, 계절 주기와 기상 패턴의 안정성이 생산성과 직결된다. 그러나 최근 수십 년간 한반도에선 1912~1940년 평균 대비 최근 30년(1991~2020년) 평균기온이 1.6℃, 강수량은 135.4㎜ 증가했다. 폭염·가뭄·집중호우·냉해 등 이상기상 현상이 빈발하면서 재배 가능 작물의 범위가 급격히 변하고 있다. 

사과와 복숭아는 재배 적지가 북상하고, 벼는 병충해와 수확기 변동으로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다. 산청 지역 딸기농가는 산불과 폭우 피해가 반복되며 생산 기반 자체가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경남 함양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원고 마용운 씨는 “4월 말이나 5월 초에 피던 사과꽃이 4월 초에 피기 시작하면서 갑작스러운 눈과 추위로 얼어 수확이 망치는 일이 잦아졌다”며 “아버지의 뒤를 이어 귀농했지만 농사를 더는 이어갈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충남 당진의 벼농가 황성열 씨는 “병충해와 잦은 강우, 폭염 피해가 해마다 심해지고 있다”며 “수확량이 줄고 품질이 떨어져 생계가 위태롭다”고 말했다. 그는 “농업인이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피해를 계속 떠안게 하는 구조를 바꾸기 위한 소송”이라고 강조했다.

경기 이천과 경북 영덕에서 복숭아농사를 짓는 송기봉·김수옥 씨는 기후변화로 복숭아순나방이 창궐해 나무를 베어내야 했으며, 개화와 착과 불량이 심각해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경남 산청의 딸기농가 농부인 이종혁 씨는 폭우로 딸기하우스가 물에 잠기는 피해를 받았다.

기자회견에서 원고들은 피해 복구를 위한 노력과 비용이 농민 개인의 부담으로 전가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피고들의 법적·도덕적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농업 피해 책임, 국내 누적 배출 1위 한전에도 있어"

기후솔루션 김예니 변호사는 “농업인은 기후위기의 최대 피해자 중 하나지만 그 피해 책임은 온실가스를 대량 배출한 발전 공기업에도 있다”며 “피고들은 국내 누적 배출의 약 27%, 전 세계 배출의 0.4%를 차지하면서도 재생에너지 전환을 미루고 해외 석탄 투자까지 확대해 왔다”고 지적했다.

원고 측에 따르면, 한전과 발전 자회사들은 2011~2022년 동안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연평균 23~29%를 차지했고 이는 세계 누적 배출량의 약 0.4%에 해당한다. 피고는 전체 발전량 95% 이상을 화력발전에 의존하며, 석탄 발전 비중만 71.5%에 이른다. 

원고 측은 "국제사회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를 추진하는 가운데 국내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9.5%에 불과하며, 공기업들은 재생에너지 직접 확대보다 REC(재생에너지 인증서) 구매에 의존해 의무를 충족해 왔다"면서 "이러한 구조가 국제적 기후목표 달성 노력과 국가의 국민 보호의무를 기후위기의 차원에서 구체화한 탄소중립기본법의 취지를 훼손한다"고 주장했다.

한전과 발전 자회사들은 국가 전력 공급이라는 공기업의 책무를 수행해 왔지만, 이는 과도한 온실가스 배출 책임을 면제하는 사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원고들의 주장이다. 발전 포트폴리오 구성,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 및 전력규칙 개선, 석탄발전소 조기 폐쇄와 같은 결정은 정부 방침과 별개로 기업 경영 판단으로 가능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재난 피해액 과학적으로 산정 가능...배출기업에 기후피해 책임 묻는 일 가능해져

최근 누적 온실가스 배출량을 토대로 재난 피해액을 정량화하는 방법론이 학계에서 뜨겁게 논의되고 있다. 지난 4월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게재된 크리스토퍼 캘러한 교수와 저스틴 맨킨 교수의 연구는 전 세계 111개 주요 다배출 기업의 누적 온실가스 배출량을 정밀 분석했다. 

네이처에 기재된 해당 논문은 기업별 온실가스 누적 기여도를 바탕으로, 1991년부터 2020년까지 폭염으로 인해 발생한 글로벌 국내총생산(GDP) 손실 중 어느 정도가 각 기업의 책임인지 환산했다. 기후솔루션에 따르면, 해당 논문은 온실가스 배출이 초래한 폭염과 경제 손실에 대해 개별 기업에게 그 책임을 정량적으로 묻는 일을 가능케 한 논문으로 평가받는다. 

논문의 방법론을 구체적으로 보면 1990년부터 2020년까지의 온실가스 누적 배출량의 1%당 폭염으로 인한 세계 GDP 손실액은 약 5000억 달러씩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온실가스 1톤당 약 29.07달러의 손실 책임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기후솔루션은 11일 ‘한국 10대 배출 기업의 폭염 손실기여액 분석’ 보고서를 발간하고, 논문의 방법론을 토대로 기후변화에서 비롯된 폭염으로 발생한 세계 피해 가운데 한국 10대 배출 기업의 책임액이 161조 원에 달한다는 분석을 내놨다. 

보고서를 쓴 기후솔루션 조정호 연구원은 “본 연구는 특정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이 폭염 등 기후 피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며 “이는 국가 차원을 넘어 기업에게도 배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조가 처음 마련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기후솔루션 분석 결과, 이 연구 방법론으로 한전 발전 자회사들의 2011~2023년 배출량 기준 손실기여액은 98.1조 원에 이른다. 원고 측은 이 연구를 근거로 피고들이 전 세계 누적 배출량의 약 0.4%를 차지하는만큼 기후위기에 따른 농업 피해의 상당 부분에 법적 책임이 있음을 강조했다.

이번 소송 청구에는 재산 피해액 중 피고들의 전 세계 배출 기여도에 해당하는 금액과 상징적 위자료 2035원이 포함됐다. ‘2035원’에는 현 정부의 2040년 탈석탄 목표보다 앞선 2035년까지의 석탄발전 퇴출 요구가 담겼다. 원고 측은 G7의 2035년 탈석탄 합의를 언급하며, “세계적 흐름에 맞춘 조기 탈석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전은 ESG경제에 "한전과 자회사들도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공감한다"면서 "배출량 감축 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전 측은 또한 "향후 기후위기 관련 법령과 정부 정책을 성실하게 따를 것"이라면서 "제기된 소송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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