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폭염은 인류세(人類世)의 대가…인류 생존위해 당장 실천 나서야
기후위기는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지구촌 차원의 공동 책임의식 절실

[ESG경제=김상민 기자] 연일 이어지는 폭우와 산사태에 따른 인명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처럼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질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급변하는 날씨를 보면서 ‘기후위기, 이상 기후, 기상 이변’이라는 말이 이젠 ‘생사가 달린 일’이 됐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폭우와 홍수 속에 ‘집중 호우’라는 표현을 넘어 ‘극한 호우’라는 말이 일상 용어가 됐다. 극한 호우란 ‘1시간 누적 강수량 50mm 이상, 3시간 누적 강수량 90mm 이상’이 동시에 관측될 때를 뜻한다. 한 마디로 폭포처럼 한꺼번에 비가 쏟아진다는 것. 당연히 물이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해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일으키고 있다.
이상 기후는 한국만의 일도 아니다. 폭염과 가뭄, 폭우와 홍수가 지구촌 곳곳을 할퀴고 있다.
유럽과 미국은 폭염에 신음 중이다. 이탈리아 수도 로마는 17일 40도, 18일 42~43도가 예상되고 있다. 그리스 아테네의 유명 관광지 아크로폴리스도 40도를 넘어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미국은 16일 기준 총 14개주에 폭염 경보가 발령됐다. 미국에서만 1억 명 이상이 폭염 영향권에 놓였다. 지구에서 가장 더운 데스밸리는 최대 54도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에서는 35도가 넘는 후덥지근한 폭염이 기승을 부리면서 47개 현 중 20개 현에 열사병 경계경보가 발령됐다. 중국 신장의 사막 기온도 40∼45도를 기록하고 남부 광시의 경우 39도까지 치솟았다.
인도 뉴델리지역은 야무나강이 넘쳐 최소 90명이 사망하고 수많은 이재민을 낳았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16일(현지 시간) 갑작스러운 홍수로 최소 5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됐다. 해당 지역에는 불과 4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6∼7인치(약 150∼180㎜)의 비가 폭포처럼 쏟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 기후’가 지구촌 곳곳을 강타하자 ‘자연의 반격, 인류세의 도래’라며 ‘인과응보(因果應報)’라고 보는 견해도 적지 않다. ‘악한 꽃에서 선한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는 말처럼, ‘하나뿐인 지구’를 아프게 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는 것,
여기서 언급한 인류세(人類世)란 노벨화학상을 받은 네덜란드의 화학자 파울 크뤼천(Paul Crutzen)이 지난 2000년 제안한 새로운 지질시대 개념. 인류의 자연환경 파괴로 인해 지구의 환경체계는 급격하게 변하게 되면서 인류가 지구환경과 맞서 싸우면서 동시에 고통을 겪게 되는 시대를 뜻한다.
지질시대를 연대로 구분할 때 기(紀)를 더 세분한 단위인 세(世)를 현대에 적용한 것으로, 시대순으로는 신생대 제4기의 홍적세(洪積世)와 현세인 충적세(沖積世)에 이은 전혀 새로운 시대이다.
크뤼천의 제안에 따라 2000년 안팎을 인류세의 시작으로 보는데, 인류세의 가장 큰 특징은 인류에 의한 자연환경 파괴이다. 인류는 오랜 세월 지구환경에 맞춰 살아오다가 산업혁명 이후 훼손과 파괴를 일삼았는데, 그 결과 엘니뇨·라니냐와 같은 해수의 이상기온 현상과 지구온난화로 기상 이변이 일상사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과학자들은 기후 변화로 전 지구가 재앙을 맞는 가운데 사하라사막, 아마존강 유역의 삼림지대, 북대서양 해류, 아시아의 계절풍 지대 등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후위기, 가해자와 피해자 구분 어렵고 책임 묻기도 힘들다
인류에게 대재앙이 될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운 것은 책임 소재를 정확히 가리기가 어렵기 때문. 범죄 사건처럼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명확히 가리기 어렵고, 가리더라도 책임 소재를 묻기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예컨대, 지난해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는 200여 개 국가가 기후위기의 원인에 따른 '손실과 피해 대응 기금' 조성에 합의했다. 개도국을 중심으로 한 국가들은 산업혁명 이후 온실가스 배출로 기후위기에 책임이 큰 선진국에게 보상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일부 선진국은 개도국에 대한 자금 지원을 보상이라고 규정하는 것에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다.
유럽연합(EU)과 미국 등을 중심으로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한 ESG(환경·사회적 책임·지배구조)가 강조되고 있으나, 실천까지는 요원한 실정이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국제 공조는 불협화음만 남길 가능성이 크다. 결국 남은 해결방안은 지구촌의 일원으로서 각자 책임감을 갖고 ‘나부터 먼저’를 실천하는 게 가장 현실성이 있어 보인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폭우와 산사태를 계기로 ‘기후위기’를 보는 시각이 확 달라졌다. ‘배달 음식을 줄여 플라스틱 감축에 나서겠다’거나 ‘일회용 컵 사용을 자제하겠다’는 등 일상에서 소소한 실천을 다짐하는 분들이 많아진 건 정말 반가운 변화다.
그렇다면 실천은 언제부터 해야 할까?
역사적으로 재미있는 사례가 하나 있다.
영국과 프랑스는 ‘백년전쟁’을 벌일 만큼 역사적으로 앙숙이었다. 국토의 넓이나 인구 측면에서 프랑스가 앞섰으나, 해군력에서는 대체로 영국이 우위였다.
프랑스가 여느 때처럼 해전에서 패배한 다음, 군 책임자가 재상을 만났다.
“사령관, 해전에서 번번이 패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게 말입니다. 저희에게는 배를 만들 전나무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래? 그럼 전국적으로 전나무를 많이 심게나.”
“네에? 전나무를요? 배를 만들 재목으로 쓰려면 100년이 걸리는 데요,”
“내 말이 그 말이야,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심어야 할 것 아닌가?”
기후위기를 대하는 마음도 프랑스 재상의 마음처럼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누가 기후위기를 일으켰느냐’의 논쟁을 하기 전에, 미래 세대를 위해 하루라도 빨리 지금부터 실천하는 마음이 더욱 필요해 보인다.
폭우와 산사태를 대하는 정부와 시민의 눈길도 ‘책임소재 가리기와 응징’보다는 ‘미래를 위한 실천적이고 체계적인 대책’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김상민 ESG경제연구소장]

관련기사
- 올해는 ‘역사상 가장 더운 해’…"날씨는 날마다 새 기록"
- 지구 기온 역대 최고...산업화 이후 이산화탄소 배출 50% 급증
- 유럽 올여름 폭염에 ‘역대 최악 물 부족’ 경고
- 세계은행 헛돈 썼나...美 보고서, “기후위기 완화와 무관한 사업 많았다”
- 의류업계, 환경파괴 책임론...ESG경영으로 돌파
- 이사회 멤버 절반 "기업들 기후위기 대응 역량 부족" 지적
- 앨 고어 "극한 기후, 새로운 수준 도달"…17년전 '불편한 진실' 재조명
- 기후위기 보여주는 '하나뿐인 지구영상제' 9월 1일 개막
- 기후위기로 전세계 ‘비상’…G20 화석연료 감축 논의는 '빈손'
- ‘온실가스 배출량’ 지난해 3.5% 줄었다…정부 "원전 덕분"
- IPCC 새 수장에 英교수…"기후재앙은 행성(지구) 존망 가를 위협"
- 북유럽은 폭우, 남유럽은 폭염·산불…“정신 못 차리겠네”
-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해는?’…"올해 2023년이 무려 99%"
-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 9개월 만에 260만개 ‘컴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