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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사회와 공정의 가치] ⓶ 공정한 가치평가는 억울한 사람을 없게 한다

  • 기자명 ESG경제
  • 입력 2023.10.25 15:28
  • 수정 2023.11.05 23:48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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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욱 미래새한감정평가법인 이사
박봉욱 미래새한감정평가법인 이사

대한민국은 자유시장경제 시스템이다. 재래시장, 농수산물시장, 주식시장, 외환시장, 부동산시장 등 경제활동이 모두 시장을 통해 이뤄진다. 시장에서는 거래가 이뤄지고, 가격이 형성된다. 거래 대상의 가치(value)를 가장 잘 반영하는게 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이다. 가격이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사람들은 엉터리 가격이 판치는 상황을 ‘정의가 실종된 사회, 불공정한 세상’이라고 인식한다. 정의와 공정이 사라진 시장경제는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낙후되고 불공정한 시장을 지닌 국가가 발전한 사례는 역사상 없었다. 그렇다면 자유시장경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가치는 어떻게 평가돼야 할까? <ESG경제>는 ‘지속가능한 사회와 공정한 가치’라는 주제로 가치 평가의 중요성과 관련해 박봉욱 감정평가사의 기고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식당에서 깻잎을 더 달랬더니 딱 3장 주더라고요.”

“여의도 설렁탕값이 1만2,000원이나 됐다고 했더니 ‘여기 다 그런데 아직 몰랐어?’라고 핀잔을 주더군요.”

“여기 강남에서는 만 원 한장으로 점심 먹기가 너무 힘들어요.”

올해 서민과 직장인들의 대화에서 빠지지 않는 게 물가 이야기였다. 물가 상승, 즉 인플레이션은 실질 소득을 낮춰서 삶을 팍팍하게 만든다. 부동산 등 자산가격을 올려 ‘빈익빈 부익부(貧益貧 富益富)’를 부추기는 나쁜 효과를 유발한다.

물가 상승은 모든 정부의 골칫거리였다. 오죽했으면 과거 권위주의 시절 치적으로 “물가 하나는 잘 잡았어”라는 말이 지금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다. 그렇다면 당시 정부는 정말 물가안정을 기가 막히게 해낸 걸까? 물가를 담당했던 관료들 사이에 믿거나 말거나 식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물가를 잡기 위해 꼼수까지 부렸던 시절이 되풀이되면 곤란

우리나라의 소득이 높지 않고 학생들이 매우 많았던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물가지수의 한 품목으로 국정교과서가 있었다. (교과서를 출판하는 국정교과서주식회사(1952~1999년 존속)라는 공기업도 있었다) 물가당국의 고민이자 딜레마는 ‘교과서 값을 올리려니 물가에 부담되고, 올리지 않으려니 국정교과서(주)의 적자가 쌓여간다’는 사실이었다.

물가담당 국장이 한숨을 푹푹 쉬더니 “뭐 좋은 아이디어 없나?”라며 부하 직원들을 들들 볶았다. 물가를 잡지 못하면 자신이 윗선으로부터 엄청난 질책을 받기 때문이었다. 그때 똘똘한(?) 직원 하나가 눈치를 살살 보더니 입을 열었다.

“국장님, 이렇게 하면 어떻습니까?”

“(큰소리로) 뭐야? 뭐 좋은 생각 있나?”

“물가지수에 반영되는 교과서 가격은 초등학교(현 초등학교) 1, 3, 5학년 교과서입니다.”

“그렇지. (여전히 굳은 얼굴로) 그건 다 아는 사실 아니야?”

“그래서 말씀드리는데 1, 3, 5학년 교과서값은 동결하고 2, 4, 6학년 교과서값은 대폭 올리는 겁니다. 그럼 물가에도 반영되지 않고, 국정교과서(주) 적자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활짝 웃으며) 그래, 일은 바로 그렇게 하는 거야. 아주 좋아!”

직원의 재기발랄한 꼼수(통계에서의 표본 조작)로 물가당국은 웃었다. 그렇지만 2, 4, 6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값이 크게 오른 교과서를 울며 겨자 먹기로 사야 했고, 1. 3. 5학년 부모들은 그 다음해에 비싼 교과서를 사야했다.

가격 왜곡은 이처럼 억울한 사람을 만든다. 미래에 대한 예측을 힘들게 하며, 사람들의 효율적인 행위를 하기 힘들도록 방해한다. 공정(公正)한 사회란 공평하고 올바른 사회, 즉 신뢰가 바탕이 되는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미래를 올바로 예측하고 가장 효율적인 방향에서 행동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억울한 사람이 줄어들게 된다.

아파트 통계조작 후유증…전월세 양산에 영끌족 속출, 재건축부담금의 부당한 납부

얼마 전 국회에서 자료가 하나 나왔다. 아파트 통계 수치를 임의대로 변경하는 한국부동산원의 ‘통계조작’ 때문에 전국의 재건축 단지들이 억울하게 재건축초과이익부담금을 추가로 내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권위주의 시절 물가당국처럼 표본 조작도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재건축초과이익부담금은 ‘재건축을 시작하는 시점(추진위원회 구성 시점)’부터 ‘개발완료 시점(준공시점)’까지 아파트 가격의 상승분에 대하여 부담금을 징수하는 제도다. 정상주택 가격상승분, 공사비, 조합운영비 등을 제외한 초과이익의 10∼50%를 강제로 환수한다.

한국부동산원의 통계조작은 어떤 문제를 불러일으켰을까? 추진위원회 구성 시점에 아파트 가격이 낮게 평가되고, 준공 시의 가격이 정상적으로 평가되어 있다면 재건축 조합원의 개발이익이 실제보다 과대해진다. 과대 계상된 부분만큼 재건축초과이익부담금도 커지게 되는 셈이다. 전국 24개 단지 1만4,000가구를 들여다보니 이 문제로 재건축 부담금을 1조 원 더 많이 내야 하는 처지가 됐고, 어떤 아파트는 3억 4,700만 원의 추가 부담이 생긴 것으로 분석되었다고 한다. 부동산 정책 실패를 가리기 위한 통계조작이 국민의 재산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했고, 결국 공정의 가치를 훼손한 셈이다.

통계조작이 가져온 더 큰 피해가 있다. 정부의 발표만 믿고 ‘집값 안정’을 기대했다가 전세나 월세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뒤늦게 진실을 깨닫고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을 통해 비싼 가격에 집을 샀다가 고금리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통계조작의 피해자들이다. ‘못된 정부의 거짓말’이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했고, 그 거짓말로 인해 지금 한국 경제는 ‘사상 최고의 가계대출과 부동산 부실 등에 따른 소비 감소’ 등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통계조작으로 지목된 한국부동산원은 ‘공기업’ 자격이 있나?

공정한 가치평가를 위해서는 적절한 가치평가 체계가 확립되어야 한다. ‘감정평가 및 감정평가사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감정평가사의 역할은 ‘공정한 감정평가를 도모함으로써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한다’이다. ‘공공성(公共性)’을 지니므로 일정 수준의 지식을 요구하는 시험을 거쳐 합격한 자에게 국가가 감정평가사 자격을 주고 감정평가권을 부여한다. 이는 결국 조세 징수의 기반이 되는 토지 등의 감정평가를 할 때 그 가격을 공정하게 평가하여 세금을 걷는 국가와 세금을 내는 국민 사이에서 ‘공정한 중간자’로서 일하라는 개념이라 하겠다.

필자는 현재 부동산 시장의 조사·관리 및 통계·정보관리 등이 주 업무인 ‘준시장형 공기업인 한국부동산원’이 주택 및 비업무용 부동산의 가격을 공시하고 있는 것은 국민의 조세저항권의 관점에서도 재고(再考)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고도의 경험과 전문성·공정성을 필요로 하는 부동산 평가와 관련해 ‘적정성 조사’라는 이름으로 감정평가권을 부여받은 감정평가사들에 대해 한국부동산원이 일종의 감독권을 행사하고 있는 현행 제도도 과연 정당한 것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국가자격증은 공공(公共)을 위해 일하라는 뜻…공정을 최우선 가치 삼아야

현재 감정평가가 공정하게 이뤄지도록 하는 제도 중의 하나는 공공사업의 시행에 따른 보상을 집행할 때 법원의 3심제와 같은 여러 단계의 평가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헌법 제23조에 제3항에 따르면 “공공복리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따른 보상은 법률로서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 지자체 및 공공기관이 공공사업을 할 때, 토지 등을 수용하려면 1단계로 협의를 위한 평가를 하여 피수용자(토지 등의 소유자)와 협의하도록 한다.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에는 토지수용위원회에 부의되어 2차로 재결 평가를 한다. 이 평가가격도 불복하는 경우 3차로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체계를 갖춤으로써 감정평가로 인하여 재산권이 억울하게 침해되는 것을 막도록 하고 있다.

필자는 서울시 성북구의 도로확장 공사에 따른 인접 토지 및 건물의 수용 과정에 직접 참여한 적이 있다. 당시 목욕탕으로 사용되던 토지·건물의 소유자가 1차 협의 평가에 불복하여 토지수용위원회에 부의된 경우가 있었는데, 1차 협의 평가에서 용도지역별 면적이 잘못되어 과소 평가된 부분을 적정하게 재결평가를 받도록 했다. 이를 토지수용위원회에 직접 설명하여, 피수용자의 억울한 사례를 바로 잡았던 경험이 감정평가사로서 매우 보람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국가가 부여한 자격증을 가진 사람은 공공을 위한 일을 한다는 의미이므로 ‘공정(公正)’을 최우선 가치로 여겨야 한다. 필자도 국가가 부여한 감정평가권을 무거운 책임이자 의무로 받아들이고, 냉철한 도덕성을 바탕으로 공정하게 평가하기 위해 지금까지 최대한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공정한 평가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구축하는 과정, 그게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며 지속 가능한 사회의 기초가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의사, 약사, 한의사,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등 다른 국가 자격증을 가진 사람도 필자와 비슷한 마음가짐으로 올바르게 열심히 일하리라고 믿는다. 동양의 고전 <논어>에 나오는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 즉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바로 서지 못한다’는 말을 오늘도 되새겨 본다.

<박봉욱 미래새한감정평가법인 이사, 감정평가사>

*박봉욱 필자는 현재 미래새한감정평가법인 이사(감정평가사)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 경제학과와 미국 서폭대 소여 비즈니스스쿨(Suffolk Business School, MSF, 미국 보스턴 소재)을 졸업했다. 대신증권과 삼성에버랜드에서 근무한 바 있으며, 한국감정평가사협회 기획이사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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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2023-10-27 15:41:31
한국부동산원 문제 해결돠어야.
빛고을 2023-10-26 15:29:27
감정평가업계의 현실을 잘 보신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일만평 2023-10-26 10:27:30
한국부동산원 문제를 말씀해 주시는군요. 재고되어야 합니다.
정신줄 2023-10-26 10:18:24
좀 정상적인 생각과 행동 하시길
2023-10-25 16:45:03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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