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일 14일로 미뤄...독일 자유민주당 반대 도화선
독일‧프랑스 등 개별 국가 이미 공급망 실사법 도입

[ESG경제=이신형기자] 유럽연합(EU) 회원국 대표로 구성된 EU 이사회가 지난 9일 열린 회의에서 공급망 실사법(CSDDD) 최종안 표결을 연기했다.
EU 이사회의 승인을 얻으려면 27개 EU 회원국 인구의 65%를 대표하는 최소 15개국의 찬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로이터통신과 유랙티브 등 외신에 따르면 이번 회의에서 독일에 이어 캐스팅 보트를 쥔 이탈리아가 기권 의사를 밝히면서 표결이 연기됐다.
로이터에 따르면 공급망 실사법이 유럽의회에서 통과되려면 EU 이사회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이사회의 승인을 얻으면 의회 통과는 무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공급망 실사법 통과를 반대한 친기업 성향의 독일 자유민주당(FDP) 소속 크리스티안 린드너 독일 재무장관은 소셜 미디어 X 메시지를 통해 “(공급망 실사법에 대해) 독일만 우려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독일 자유민주당은 독일이 이미 공급망 실사법을 도입한 가운데 EU 차원에서 유사한 법이 또 도입되면 기업에 지나친 부담이 될 것이라며 EU 공급망 실사법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독일은 사회민주당과 녹색당이 공급망 실사법에 찬성하고 올라프 숄츠 총리와 후베르투스 헤일 노동부 장관 등도 이 법을 찬성하고 있으나, 자유민주당의 반대에 부딪혀 찬성 표를 행사하지 못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EU의 한 외교관은 EU 이사회가 이달 14일 다시 공급망 실사법을 표결에 부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랙티브는 공급망 실사법 입법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보도했다. 유럽의회의 마지막 전체회의가 4월에 열릴 예정인 가운데, 다가오는 유럽의 선거 시즌이 다가와 모든 입법 활동이 조만간 중단되기 때문이다.
독일 녹색당 소속의 안나 카바치니 EU 단일시장위원장은 X 메시지를 통해 “FDP가 독일에 기권을 설득했을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압력을 가했다”며 “일개 정당이 유럽 전체를 긴장으로 몰고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투표 연기를 다른 나라를 설득하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독일 법무부 대변인은 “다음 단계를 추측하기를 원치 않는다”며 “협상이 오랫동안 진행돼 왔기 때문에 새로운 시나리오를 가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1단계로 약 1만 3000개 기업에 적용
EU 공급망 실사법은 역내에서 영업활동을 하는 기업이 협력‧납품업체들의 인권 현황과 환경 오염, 온실가스 배출량 등을 자체 조사해 문제가 있으면 해결을 의무화하는 법이다.
해당 기업은 제품의 생산 및 유통 등 공급망에 속한 기업들에 대해 노예 노동이나 아동 노동, 임금 착취, 온실가스 배출, 환경 오염, 생물다양성 훼손, 생태계 훼손, 산업 재해, 직원 건강 위협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 법의 적용을 받는 EU 기업은 또한 비즈니스 모델과 경영 전략 등이 지구 온도 상승폭을 파리협약이 정한 1.5℃ 이내로 억제한다는 목표에 부합하도록 해야 한다.
해당 기업들은 ▲실사를 경영 정책에 도입하고 ▲실질적이거나 잠재적으로 유해한 인권 및 환경 영향을 식별하고 ▲잠재적인 영향을 방지하거나 완화하는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또한 ▲실질적인 영향을 제거하거나 최소화 하고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해 유지하고 ▲실사 정책과 수단의 유효성을 모니터링하고 ▲실사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
EU 집행위의 자료에 따르면 이 법은 직원 수 500명 초과, 매출 1억5000만 유로(약 2025억원) 초과 기업(그룹 1)을 대상으로 우선 시행될 예정이다. 약 1만3000개 기업이 여기에 속할 전망이다. 법을 어긴 기업에는 글로벌 매출의 5%에 해당하는 무거운 벌금이 부과된다.
EU 매출액이 1억5000만 유로를 초과하는 비EU 기업에도 이 법이 적용되나, 3년의 유예기간이 주어진다.
독일‧프랑스‧영국 등 이미 공급망 실사법 도입
독일에서는 2021년 6월 공급망 실사법이 의회를 통과했다.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에 이어 유럽에서 네 번쨰로 도입됐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도 유사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지난 1976년 도입된 OECD의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이 공급망 실사법 마련을 위한 논의의 시초가 됐고, 국제노동기구(ILO)와 유엔이 발표한 기업의 책임경영 관련 국제 원칙과 실사 지침 등도 법안의 토대가 됐다.

EU 차원의 공급망 실사법 도입이 무산돼도 개별 국가의 공급망 실사법은 유지된다. 독일 공급망 실사법은 2023년부터 직원 수 3000명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시행되고 2024년 1000명 이상 기업으로 확대 적용된다.
자체 사업장과 직접 공급업체뿐 아니라 간접 공급업체까지 모든 공급망 내의 강제 노역이나 아동 노동 같은 인권 문제 등을 발견하면, 이를 해결해야 하고 해결 여부를 검증해 독일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 환경 문제는 안전하지 못한 식수 시설이나 비위생적인 시설 등 건강에 영향을 미칠 위생 문제로 국한되고, 생물다양성이나 기후변화 대응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법으로 정한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연간 매출액의 0.35~2%에 해당하는 벌금을 내야 하고, 175만 유로 이상의 벌금을 낸 기업은 독일 정부의 공공조달 사업 참여가 불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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