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핵융합연구장치, 핵융합 에너지 기록 경신
수십 년 연구에도 이제 5초간 1.2만 가구 전력 공급량 생산
전문가들, 상용화까지 상당한 시간 예상

[ESG경제=이진원 기자] “핵융합은 에너지의 미래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기술업계에서 핵융합 기술을 언급할 때 자주 거론되는 말이다. ‘미래의 에너지’나 ‘꿈의 에너지’라는 말을 듣는 게 핵융합 에너지지만, 핵융합 발전을 통해서 인류가 충분히 쓸 수 있는 만큼 청정에너지를 무한대로 생산해 내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걸 의미하는 농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요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핵융합 발전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는 가운데 최근 영국에서 핵융합 에너지 기록이 경신되면서 희망을 줬다.
지난 8일(현지시간) CNN과 BBC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영국 핵융합에너지청(UKAEA)은 세계 최대 핵융합연구장치 JET로 역대 최대 규모의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과학자들은 JET를 사용해 0.2밀리그램의 연료로 5초 동안 69메가줄(MJ)의 핵융합 에너지를 생산했다. 이는 같은 시간 동안 약 1만 2000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양이다.
토카막 방식
JET의 핵융합 발전 방식은 ‘토카막(tokamak)’이다. 토카막은 태양 중심보다 뜨거운 초고온의 플라스마를 강력한 자기장으로 용기 안에 가둬놓고 그 안에서 핵융합을 일으키는 방식이다. 핵융합을 일으킬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온도는 1억 도 이상으로, 이런 고온의 플라스마를 100초 정도 유지하면 핵융합 발전이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JET의 실험을 주도한 300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컨소시엄인 유로퓨전(EUROfusion)의 CEO 암브로지오 파솔리 박사는 “JET가 세신기록은 새로운 핵융합 프로젝트에 희망적인 소식”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실험은 40년 이상 운영되어 온 JET의 마지막 실험이기도 하다.
파솔리 박사는 성명에서 "새로운 에너지 기록으로 입증됐듯이, ITER와 DEMO와 같은 미래 핵융합 장치의 운영 시나리오를 성공적으로 시연함으로써 핵융합 에너지 개발에 대한 자신감이 더욱 커졌다“고 덧붙였다.
한국도 참여하고 있는 ITER는 2007년부터 프랑스 남부에서 건설 중인 세계 최대 국제핵융합실험로(ITER)이고, DEMO는 ITER의 뒤를 이어 상업적 규모로 핵융합을 통해 전기를 생산할 수 있게 설계된 차세대 핵융합 발전소다.

상용화까지 갈 길 먼 핵융합
핵융합은 고에너지의 플라스마(plasma·이온화된 기체) 상태에서 원자핵들이 융합되어 더 무거운 원자핵이 되는 반응을 말한다. 이때 질량이 손실되면서 막대한 에너지가 생기는데, 이 과정에서 탄소가 전혀 배출되지 않아 기후 변화 해결을 위한 꿈의 조합으로 불린다.
하지만 이 핵융합이 통제된 방식으로 이루어지려면 여러 가지 과학과 공학 기술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원자로 내부의 온도는 섭씨 1억 도를 넘어야 하며, 레이저, 초강력 자석 또는 이와 동등한 첨단 장치를 이용해 연료를 제자리에 고정시켜야 한다.
이처럼 복잡한 공학 작업이 요구되기 때문에 일부 모델 제작자는 핵융합 기술의 비용이 실제로 크게 저렴하지 않고 재생 에너지 비용과 유사하거나 약간 높은 수준에 불과할 것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과학자들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왔지만, JET가 생산한 에너지에 대한 BBC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제야 겨우 욕조를 4~5개 데울 정도의 에너지"를 생산했을 뿐이다.
또한 JET의 실험 역시 연료로 투입된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생성해 내는 데 실패했다. 이는 ‘과학적 손익분기점’에 도달하지는 못했다는 의미이다.
미국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 연구소 과학자들은 2022년 말 핵융합 반응에서 연료로 투입된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생성하는 데 성공했지만, 과학자들은 JET를 비롯한 전 세계의 모든 현재 핵융합 실험으로는 ‘에너지 이득(energy gain)’을 달성하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CNN이 인용한 맨체스터 대학교의 핵융합 연구원인 아니카 칸에 따르면 핵융합 에너지가 완전히 개발될 때쯤이면 그것을 기후 변화를 해결하기 위한 주요 도구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늦을 수도 있다. 상용화에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칸은 따라서 JET의 실험 성공에 대해 ”이것은 훌륭한 과학적 결과이지만 아직 상업적 핵융합과는 거리가 멀다“면서 ”핵융합 발전소를 건설하는 데에는 많은 엔지니어링 및 재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녀는 ”하지만 핵융합에 대한 투자가 증가하고 있고 실질적인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수많은 사람을 훈련시켜 이 기술이 금세기 후반에 사용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JET보다 훨씬 더 크고 신기술이 들어간 차세대 원자로인 ITER에 희망을 걸고 있다. ITER를 통해 발전소 규모의 최대 700메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하는 게 목표다.
관계자들은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된다면 2050년까지 프로토타입 ITER이 가동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한편 미국과 유럽만이 핵융합로를 개발하고 있는 건 아니다. 작년에 중국의 ‘인공 태양’은 핵융합 실험 장치 내부에서 플라스마를 7분 가까이 가둬두며 자체 기록을 경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에 있는 한국형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KSTAR)는 2022년에도 원자를 융합할 수 있는 섭씨 1억도 이상의 온도를 30초 동안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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