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국 2년 안에 법제화해야...환경파괴 대응한 '혁명적 조치'
기업 CEO와 이사 징역형 처벌 가능, 허가받은 사업에도 적용
매출의 최대 5% 또는 4000만유로(약 577억원)의 벌금 부과

[ESG경제=이신형기자] 대규모 생태계 파괴 행위에 대한 처벌 수위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유럽연합(EU) 환경범죄지침(environmental crime directive) 개정안이 지난달 27일 유럽의회를 통과했다.
유럽의회는 이날 열린 전체회의에서 찬성 499표, 반대 100표, 기권 23표로 이 지침 개정안을 통과됐다고 발표했다. 지침 개정안이 통과됨에 따라 앞으로 EU에서는 불법적인 벌목이나 수자원 고갈, 화학 관련 법률의 심각한 위반 행위, 선박에 의한 오염이 새로운 환경범죄 목록에 포함됐다.
또한 대형 산불이나 생태계 파괴로 이어지는 광범위한 대기와 수질, 토양 오염이 대규모 생태계 파괴에 준하는(comparable to ecocide) 심각한 환경 파괴의 범주에 포함된다.
이런 환경범죄를 저지른 기업에는 매출의 3%나 5% 또는 2400만유로(약346억원)나 4000만유로(약 577억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유로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새로운 지침이 유럽의회에서 통과됨에 따라 EU는 에코사이드에 준하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한 최초의 관할권이 됐다. 전문가들은 EU의 환경범죄지침 개정에 대해 “혁명적인” 변화라고 평가하고 있다.
마리 투상 녹색당 소속 의원은 유로뉴스에 “새로운 지침은 생태계 보호와 이를 통한 인간의 건강 보호를 위해 유럽 역사에서 새로운 페이지를 열었다”며 “환경 범죄를 처벌하지 않는 관행의 종식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현행 EU 및 회원국의 법이 규정하는 법 위반 환경파괴 행위가 지나치게 제한적이고 범 위반 시 제재 수준도 미약해 환경범죄를 막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았다. 환경단체 등이 환경범죄로 판단하지만 처벌을 받지 않는 사례로는 불법적인 참치 어획, 보호 구역에서의 농업에 의한 오염, 불법 사냥, 탄소시장에서 발생하는 사기 행위 등이 있다.
투상 의원은 “환경범죄는 세계 경제보다 2~3배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고 몇 년 만에 세계에서 네 번쨰로 많은 범죄가 됐다”고 말했다.
생태계 파괴 행위 엄벌
유로뉴스에 따르면 일부 전문가들은 대규모 생태계 파괴 행위(ecocide, 에코사이드)를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다섯 번째 국제범죄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제범죄는 국제사회의 이익을 침해한 위법 행위를 말한다. 이들은 EU가 지침에서 ‘대규모 생태계 파괴’를 명문화하지 않고 ‘대규모 생태계 파괴에 준하는’이라고 언급했으나, 강화된 지침이 생태계 파괴를 범죄로 처벌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평가했다.
에코사이드는 “환경에 심각하고 광범위하거나, 장기적인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알고도 저지르는 불법적이거나 고의적인 행위”로 정의된다. 지난 2021년 12명의 변호사가 만들고 ‘스톱 에코사이드 인터내셔널(Stop Ecocide International)이라는 단체가 공표한 정의다.
개정된 EU 환경지침에 따라 환경범죄를 저지를 기업의 CEO나 이사는 최대 8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고 환경범죄가 피해자의 사망으로 이어질 경우 10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네덜란드 출신의 안토니우스 맨더스 유럽의회 의원은 “CEO들이 벌금을 감내할 수 있어도 징역형은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CEO 등 개인에게 법적인 책임을 물으려면 이들의 결정이 미칠 결과를 인지하고 있고 해로운 행위를 중단시킬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한다.
허가 받은 사업에 따른 환경범죄도 처벌
맨더스 의원은 개정된 지침에 따라 허가 받은 사업을 진행하면서 환경범죄에 연루된 경우에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그는 “주의 의무가 있어 허가만으로 더 이상 방어권이 성립되지 않는다”며 “(사업 시작 후) 새로운 정보에 따라 건강과 자연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힌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해당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스트리히트대학의 마이클 포레 국제환경법 교수도 “단순히 허가를 준수하는 것만으로 형사 책임이 면제될 수 없다는 (기업들이)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EU의 환경범죄지침이나 개별 회원국의 법률하에서는 불법적인 행위가 있을 때만 환경범죄 처벌이 가능했다. 기업이 허가 조건을 준수하는 한 환경범죄가 성립하지 않았다.
한편, EU 회원국들은 지침을 법제화하면서 자국 사정에 따라 벌금의 형태를 결정할 수 있다. 또한 역외에서 EU 기업이 저지르는 환경범죄 처벌 여부도 회원국이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