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가 산업과 통상의 생존 이슈로 떠올랐지만
아직 천하태평인 중소 중견기업 많은 게 현실
선진국들, 학생과 시민 대상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제공

풀뿌리 기후행동의 시작은 소박하지만 끝은 창대할 수 있다. 지역 커뮤니티의 주민들이나 소규모 영리, 비영리 단체들이 주도하는 이러한 활동은 대개 작은 모임에서부터 시작되지만 이 작은 모임들이 모여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
도심 숲 가꾸기나 공원의 쓰레기 줍기, 1회용품 사용 줄이기 같은 소소한 환경 보호 활동이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결국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국민의식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숲가꾸기나 자연 보호를 주제로 한 많은 비영리 단체가 전국 단위 또는 지역 단위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들의 기여가 결코 작지 않다. 그들은 각종 강연과 세미나, 캠페인 등을 통해 시민들의 의식을 깨우는 역할도 한다.
그러나 작금의 글로벌 탄소 감축 요구와 탄소 무역 규제, 그리고 ESG공시가 단순히 자연 가꾸기나 환경 보호의 차원이 아니라 산업과 통상의 생존 이슈라 볼 때 현재의 각종 단체가 이뤄내는 기여 가지고는 뭔가 많이 부족함을 느낀다.
기업이든 국가든 탄소 감축 목표 수립과 이행을 위해서는 탄소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며, RE100, ESG공시, CBAM과 각종 글로벌 이니셔티브와 프레임워크의 난해한 요구 사항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 습득도 매우 중요하다.
필자가 주변의 국내외의 수준급 탄소 전문가들과 이야기 나눠보면 그들은 모두 현재 각종 글로벌 감축요구에 대해 상당히 우려하고 있다. 요구 사항이 매우 정교하고 복잡하며 국내 기업 현실 상 달성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깊이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되겠지...아직도 여유만만인 기업들
그런데 정작 직접 당사자들이면서 피해가 우려되는 중소중견기업이나 금융기관 사람들을 만나면 상당수가 과연 이래도 될까 싶을 정도로 여유만만이다. 탄소 규제 압박은 기업 생존의 문제로서 기존 사업 투자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대응이 필요한데 탄소 감축을 위해 투입하는 비용에 대해서조차 투자 수익률을 따지며 허송하는 경우도 많이 본다. 2030년 감축 목표 선언을 한 어느 기업은 아직 6년이나 남았는데 왜 이리 호들갑이냐 한다,
그들도 사내에서 진행하거나 외부에서 진행된 ESG교육이니 탄소중립 교육이니 수강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쩌면 이렇게 무사태평일까?
바로 교육이 문제다. 교육을 통해 문제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해법이 전달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금 진행되는 많은 교육 과정을 보면 아름다운 지구와 우리 이웃 만들기나 환경 보호 실천하기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탄소 이해, 글로벌 탄소 규제의 실체, 탄소 배출 산정과 상쇄, 이니셔티브와 프레임워크에 대한 정확한 내용, 발생 가능한 관련 분쟁과 선제적 대응 등 미적분학을 이해할 ‘고등’ 탄소 교육이 빠져 있다.
각종 환경 단체들이 기업이나 단체를 대상으로 한 탄소 중립 교육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것으로 안다. 여러 열악한 여건에서 그분들이 쏟아 붓는 희생과 노력을 결코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더 깊은 실전 대응 교육이 추가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 탄소 관련한 전문가들에 의한 전문 교육 기관들의 설립도 필요하고 많은 교육과 확산을 맡고 있는 사회 단체의 전문화와 다양화가 속히 이뤄져야 한다.
탄소 선진국인 미국, 호주 등에선 그야말로 다양한 탄소 관련 사회 단체가 활동 중이다. 미국의 경우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지역 주민들의 압박으로 여러 도시들이 재생 가능 에너지 사용을 늘리고, 지속 가능한 농업 기술을 도입하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국민 의식 전환을
이러한 정책들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더 큰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는 경우도 많다. 2017년 시작된 선라이즈무브먼트(The Sunrise Movement)는 총선에서 재생에너지 지지자 선출을 목표로 활동을 해서 당시 지지 후보 20명중 절반이 당선되는 등 국가 정치 무대에서 진보적 기후 의제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에너지 탄소 전문가들이 모여 지식 기부 활동을 하는 단체도 많다. 호주의 비욘드제로에미션(BZE)은 호주와 세계에 적용 가능한 다양한 기후솔루션을 만들고 보급하기 위해 엔지니어링, 과학, 경제, 비즈니스, 금융 및 커뮤니케션 분야의 전문 지식을 제공하는 광범위한 자원 봉사자들로 구성된 싱크탱크이다.
이 단체는 선진국의 배출 제로 경제로의 전환하는데 관련한 독립 연구와 공공 정책 수립에 직접 기여를 하고 있다. 또한 전국적으로 웨비나나 각종 교육, 강연을 통해 탄소 제로 커뮤니티, 기후 행동, 탄소 중립 관련 고용 창출 아이디어 공유, 탄소 제로 경제 전략 제공 등 다양한 전문 확산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사회의 활동가나 전문가 뿐만 아니라 학생들에 의한 활동도 다양하다. 스웨덴의 스쿨스트라이크포클라이밋(School Strike for Climate)이라는 단체는 2018년 15세 소녀 그레타 툰베리에 의해 시작된 학생 파업 운동으로 2019년 3월에는 호주, 독일, 스페인 등 무려 세계 92개국 1,200여 단체가 참가하는 동시 다발 집회로 확산되었다.
현재 세계 7,500개 도시 1400만명의 시민들이 참여하는 단체로 성장했다. 등교 거부라는 다소 과격한 저항 행동으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과학 기반의 탄소 감축에 대한 구체적인 요구를 기업과 국가를 상대로 진행하고 있다.
정부가 기업의 자발적인 기후 조치를 구체적으로 취하도록 탄소중립표준을 만들어 기업이나 지자체의 각종 활동에서 탄소 배출 산정, 감축 및 상쇄에 대해 가이드라인이 되어 주기도 한다. 호주의 클라이밋액티브(Climate Active)는 예를 들어 지자체의 행사에 탄소 배출량 산정과 상쇄에 대한 일종의 인증을 부여하여 그러한 감축 활동의 신뢰성을 높이고 동참을 유도한다.

20여 년 전만해도 탄소 문제는 환경 문제 수준에서 논의된 아젠다였는데 지금은 국제 통상, 무역 장벽, 에너지와 식량 문제, 기업 가치 평가 기반 등 복잡한 고차 방정식이 되었다. 이에 따라 ‘확산’과 ‘인식’의 중요 역할을 맡는 관련 사회 단체들도 질적인 성장이 필요하고 분야도 다양화되어야 한다.
환경보호나 쓰레기 배출 안하기 수준의 환경적 논의는 이 고차방정식의 완벽한 해법이 못된다. 탄소 이해- 탄소 배출 저감- 배출 탄소 자발적 상쇄라는 기반 이해와 실천 속에 에너지와 탄소 통상, 규제, 투자라는 깊은 산업적 이해가 결합되어야 완벽한 퍼즐 맞추기가 된다.
탄소 대응 선진국들에 비해 한국의 탄소 교육은 아직은 초등학생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전문가들의 적극 참여와 지식 나눔, 풀뿌리 기반인 시민들의 적극적 관심과 참여, 그리고 국가 차원의 제도적 지원을 통해 강하고 든든한 풀뿌리 단체가 많이 탄생하길 기대해 본다.
[박희원 넷제로홀딩스그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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