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은 조직내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파괴, 불신 조장
신뢰와 화합의 조직문화 방해..ESG 내재화로 극복해야

온통 나라가 정쟁으로 시끄럽다. 의리의 시대가 가고, 배신이 판치는 시대다. 신뢰와 협동의 정신이 땅에 떨어졌다. 어제의 적군이 아군으로 등장하고, 오늘의 친구가 원수로 변한다. 누구도 믿기 힘든 세상이다. 오로지 자신의 출세와 안위만 생각한다.
자신의 이익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한다. 정치인들이 이를 부추긴다. 한국인이 좋아하던 지조와 절개는 찾기 힘들고, 약아빠진 기회주의만 설친다. “오직 너 자신만을 믿는다면, 아무도 너를 배신하지 않는다.”
배신은 신뢰를 깨는 것이다. 믿고 의지하는 관계를 끊는 것이다. 배신은 이별과 다르다. 이별은 추억이 그대로 남지만, 배신은 핑크빛 기억조차 흉하게 덧칠한다.
불신(不信)의 시대에 배신은 흔하다. 우리는 가족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없다. 오랜 기간 부모 사랑으로 성장한다. 효도를 바라고 자식을 키운 건 아니지만, 키워줬는데 등을 돌린다면 괘씸하다. 무조건 내 뜻을 따르라 할 수 없다. 따라야 할 일을 거스르면 배신이지만, 옳지 않을 것을 거부하면 소신이다. 가정에서 치명적인 배신은 외도다. 배신의 양면성이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
배신은 의리를 깨는 것이다.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끊는 것이다. 배신은 독립과 다르다. 독립은 경험을 소중히 간직하지만, 배신은 속이 텅 빈 채 껍질만 남는다.
불의(不義)의 시대에 배신은 흔하다. 우리는 주변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없다. 사회에서 타인 배려로 성공한다. 충성을 바라고 은혜를 베푸는 건 아니지만, 끌어줬는데 싹 달라진다면 배은망덕하다. 말을 안 듣는다고 탓한다면 치졸하다. 사리사욕으로 의리를 저버리면 배신이지만, 옳다고 믿는 소신 있는 행위는 용기다. 사회에서 치명적인 배신은 반역이다. 배신의 이중성이 있다. “내 편에서는 변절자, 상대편에서는 영웅이다.”
배신은 누가 하는가? 배신은 친밀한 관계에서 생긴다. 친밀한 관계는 인(仁)으로 맺어진 관계다. 배신은 인을 끊는 것이다. 공자는 인을 강조한다. 인(仁)은 측은지심(惻隱之心)이다. 어여삐 여기고 사랑하는 것이다.
감성적인 사람은 신뢰를 중시한다. ‘좋다, 나쁘다’에 좌우된다. 감정이입을 잘한다. 스트레스를 수용하여 상처로 받아들인다. 감성적인 사람에게 배신은 충격적이다. 큰 상처를 받는다. 치료되지 않으면 우울증으로 간다. 과거가 송두리째 날라간다. 사랑이 미움으로 변하고, 행복이 불행으로 바뀐다. 삶의 의미가 한꺼번에 무너진다.
배신은 두터운 관계에서 생긴다. 두터운 관계는 의(義)로 맺어진 관계다. 배신은 의를 끊는 것이다. 맹자는 의를 강조한다. 의(義)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이다. 나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것이다.
이성적인 사람은 의리(義)를 중시한다. ‘옳다, 그르다’에 익숙하다. 기분전환을 잘한다. 스트레스를 통제하여 상처가 되지 않는다. 이성적인 사람에게 배신은 충격적이다.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해결되지 않으면 불안증·공황증으로 간다. 미래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유일함이 사라지고, 특별함이 깨진다. 인생의 가치가 한꺼번에 무너진다.
배신은 왜 하는가? 손해를 안 보려고 배신한다. 사람들은 이익보다 손해에 더 크게 반응한다. 손실회피성향이라 한다. 유다는 은 30냥에 예수를 로마인에게 팔았다. 신념이 달라져서 배신한다. 정치인들은 신념을 바꿔 국민을 당황하게 한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가족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고 했다. 감정이 작용하여 배신한다. 사람들은 은혜보다 상처를 더 오래 기억한다. 섭섭함으로 신뢰를 깨고, 두려움으로 의리를 저버린다. 베드로는 두려움 때문에 닭 울기 전에 예수를 세 번 부인했다.
‘충서(忠恕)의 도’가 있다. 충(忠)은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이고, 서(恕)는 마음을 서로 같게 하는 것이다. 충(忠)은 진정성이고, 서(恕)는 배려심이다.
옛날에 한 처녀가 임신을 했다. 아버지가 딸에게 누구 자식인지 다그쳤다. 겁먹은 딸은 동네에서 존경받는 스님이라 했다. 아버지는 스님을 찾아가 아기를 맡기며 책임지라고 했다. 스님은 아기를 받으며 말했다. “아, 그렇습니까?” 스님은 아기를 위해 젖동냥을 했다. 사람들은 파렴치한 스님을 욕했다. 1년이 지났다. 딸은 죄의식에 시달리다 푸줏간 남자가 아비라고 털어놨다. 놀란 아버지는 스님을 다시 찾아가 사죄했다. 스님이 아기를 돌려주며 말했다. “아, 그렇습니까?”
배신은 ESG 내재화의 적이다. 배신은 조직 내 다양성과 형평성, 포용성(Diversity, Equity, Inclusion; DE&I)을 파괴한다. DE&I는 차별 없이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가진 인재를 포용하고, 그들의 성장 잠재력을 극대화해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둔다.
배신은 신뢰와 화합의 조직문화가 형성되는 것을 가로막는다. 배신이 판치는 한국 사회에 대한 처방은 무엇일까? 우리의 지혜가 담긴 세 가지 사자성어로 접근해 보자.
첫째, 지피지기(知彼知己)다. 남 사정을 알고, 내 사정을 알자. 누구나 사정이 있다. 사정을 알게 되면 이해할 수 있다. 이해하면 소통할 수 있다. 소통은 정신적으로 통하는 것이다. 머리와 머리가 일치하는 것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다. 내 생각이 잘못될 수 있기 때문에, ‘꼭 그렇지 않을 수 있다’를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각자 살아온 사연이 다르고, 살아갈 사정도 다르다. 남의 생각이 맞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를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역지사지(易地思之)다.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자. 누구나 처지가 다르다. 처지를 바꿔보면 공감할 수 있다. 공감하면 소통할 수 있다. 소통은 정서적으로 통하는 것이다. 가슴과 가슴이 일치하는 것이다. 느낌을 나누고 함께 경험하는 것이다. 공감이란 순간순간 남의 마음이 될 수 있는 능력이다. 질문과 경청이 중요하다. 나 중심이 아닌 너 중심이 되어야 한다. 상대 입장이 되는 것이다. 최고의 질문은 무엇일까? 질문하지 않는 듯이 질문하는 것이다. 최고의 경청은 무엇일까? 상대가 말하지 않는 것까지 듣는 것이다.
셋째, 불편불의(不偏不倚)다. 치우치지도 않고, 기울지도 말자. 수시로 상황이 변한다. 중용(中庸)이란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는 것(時中)이다. 중용하면 소통할 수 있다. 소통은 몸으로 통하는 것이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이다. 말이 적으면 언행일치하기 쉽다. 충고·탐색·해석·판단을 자제하자. 말로 할 수 없음을 보는 것을 도(道)라 한다. 말해서는 아니 됨을 아는 것을 덕(德)이라 한다. 말할 필요가 없음을 느끼는 것을 현(賢)이라 한다. 말하고 싶지 않음을 지니는 것을 인(仁)이라 한다. “말은 더디게 하고, 행동은 민첩하게 하라(訥言敏行).”
[이후경 ESG경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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