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에서 신구갈등의 중심에 서 있다면
조선 건국 공신 ’정도전‘의 지혜로 극복

4월 총선이 한 달로 다가왔다. 양당 모두 공천을 둘러싼 갈등으로 나라가 어지럽다. 경제는 하락하고, 민생은 고단하고, 평화는 위태롭다. 교육, 연금, 노동 개혁은 제자리다. 국민은 새로운 정치개혁을 기대한다. 구세대의 오만과 독선을 싫어한다. 야당은 공천의 공정성을 잃고, 여당은 중진 불패의 기조에 20·30대 공천이 희박하다. 공천 갈등의 핵심에 신구갈등이 있다.
신구갈등은 ESG 경영의 걸림돌이다. ESG는 모든 개개인이 나의 일이라 생각하고 일상 업무 속에서 자연스럽게 실행해야 지속가능한 성과를 낼 수 있다. 이른바 전사적 ESG의 내재화다.
신구갈등은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자주 불거진다. 현대 기업에서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대세다. ESG 경영도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한 일부다. 한국 대기업은 상당수 오너가 소유권과 경영권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신구갈등은 오너가(家)의 가업 승계에서 자주 나타난다. 부모와 자식을 따르는 가신이 같을 수는 없다. 노장파와 소장파의 갈등으로 이어진다. 전문경영인이 승계하더라도 소유권으로 복잡하긴 매한가지다. 경영권 교체기에 노장파와 소장파의 격렬한 싸움이 일어난다.
두 계파 간 다른 명분과 주장으로 혼란스럽다. 편 가르기와 희생양 만들기가 진행된다. 각종 비난·비방·험담·모함을 양산한다. 악성 유언비어가 떠돌고, 직장의 평화가 깨진다. 조직원은 어느 편이든 들어야 할 난감한 입장에 부딪히게 된다.
싸움은 본능적이다. 프로이트의 인간관은 투쟁과 도피다. 개인과 조직은 위험에 봉착할 때 투쟁과 도피반응을 보인다. 살려고 하는 자는 상대를 죽여야 한다.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면 철저히 이기주의적이어야 한다.
승-패와 패-승은 결국 패-패로 떨어진다. 싸움은 필연적이다. 토인비의 역사관은 도전과 응전이다. 개인과 조직은 문제에 봉착할 때 도전과 응전으로 대처한다. 살려고 하는 자는 죽고, 죽으려고 하는 자는 산다. 자신의 이익을 달성하려면 이타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승-패와 패-승에서 승-승으로 나아가야 한다.
조직은 유기체다. 사람은 생로병사를 겪고, 조직은 흥망성쇠를 겪는다. 불로장생은 인간의 영원한 꿈일 뿐이다. 역사상 어느 국가도 천년왕국을 이루지 못했다. 진시황은 중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최초로 중국을 하나의 거대한 제국으로 통일했다. 그는 불사(不死)를 꿈꿨지만 49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자신이 세운 제국도 곧바로 무너졌다.
일찍이 슘페터는 자본주의의 동인으로 창조적 파괴를 통한 혁신을 주창했다. 시장은 새것이 나타나면 옛것을 몰아낸다. 세상은 창조적 파괴 활동을 통해 바뀐다. 조직은 혁신을 통해 다시 태어난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갈등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럽다. 가족갈등, 직장갈등, 사회갈등…. 신구갈등은 모든 곳에 존재한다. 신구갈등은 문명갈등이다. 받아들일 수 없고, 버릴 수 없는 평행선에 새것과 옛것이 있다. 갈등이 있는 곳에 싸움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싸움은 사람들 간의 이해관계에서 발생한다. 싸움은 당사자 모두에게 상처를 남긴다.
인간은 감정적 동물이다. 한 번 받은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갈등과 싸움을 놔두면 사회가 혼란스럽다.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여러 사람이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해선 정치가 필요하다. 정치란 갈등과 싸움을 해결하는 활동이다.
오래전 방영된 KBS 드라마 ‘정도전’은 정치드라마다. 무혈혁명으로 조선을 건국한 위대한 이야기다. 고려가 무너져 가는 어느 날 이방원과 정몽주가 술상을 앞에 놓고 앉았다. 이방원은 혁명의 걸림돌인 정몽주를 회유하며 ‘하여가(何如歌)’를 읊는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이에 정몽주는 ‘단심가(丹心歌)’로 자신의 뜻을 밝힌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고려의 충신 정몽주는 이방원의 칼에 숨졌다. 조선의 건국공신 정도전도 결국 이방원의 칼에 숨졌다. 정도전은 죽으면서 이런 말을 남긴다. “나는 정말로 최선을 다했다.”
조직에서 아무런 의도 없이 정치의 한복판에 설 수 있다. 내가 신구갈등의 중심에 서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이 가장 옳은 길인가.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다. 탁월한 처방이란 게 있는 것인가. 드라마 ‘정도전’의 지혜를 빌려 아이디어를 내 보자.
첫째, 충성이다. 정몽주를 따라보자. 누구를 향한 충성인가. 영웅 이순신은 12척의 배로 300척이 넘는 왜선을 무찔렀다. 이순신은 이렇게 외친다. “충(忠)은 왕이 아닌 백성을 향한 것이다.”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은 베스트셀러 ‘정의(Justice)’의 저자다. 샌델은 이렇게 외친다.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의 선(善)을 고려하는 것이다.”
직장은 현대인의 삶의 현장이고 생활의 공동체다. 조직원 모두가 나름대로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했다. 흔쾌히 기회비용을 내놓은 것이다. 매몰비용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 회사는 오너의 것이 아니다. 조직원 모두의 것이다. 충(忠)은 조직원 모두를 위한 공동선을 향해야 한다. 공동선이란 무엇인가.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다. 샌델은 정의의 기준으로 자유와 평등보다 행복을 최고로 여겼다.
둘째, 유연이다. 이방원을 따라보자.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겠는가. 노장파의 명분이 틀리지 않다. 회사의 발전과 성공을 위해 오랫동안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다. 어느 누가 노련한 리더를 대신할 수 있겠는가. 그대로 존중하면서 경영을 이어가면 되지 않는가. 혁신이 웬 말인가. 회사가 평화로운데 굳이 바꾸면 혼란만 야기된다. 잘못하면 회사가 흔들린다. 소장파의 주장도 틀리지 않다. 노장파가 너무 오래 통치했다. 이제 바꿀 때가 됐다.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이제 젊은 리더가 필요하다. 혁신을 통해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이래도 안 틀리고, 저래도 안 틀린다.
노자는 무위자연을 얘기했다. 억지로 하지 않고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것이다. 그는 3대 미덕으로 자애, 검약, 나서지 않음을 말했다. 자애 때문에 용감할 수 있고, 검약 때문에 널리 베풀 수 있으며, 나서지 않음 때문에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
셋째, 최선이다. 정도전을 따라보자. 누구를 위한 최선인가. 자신을 위한 최선이 되어야 한다. 정치적 인간이란 무엇일까? 자신을 들여다보기 두려워 세상을 비판하는 사람이다. 도덕적 인간이란 무엇일까? 자신이 부족해서 세상을 비판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종교적 인간이란 무엇일까? 자신의 마음과 세상의 모습을 연관하여 보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보통 상대가 싫거나 부러울 때 비판한다. 부러움을 느끼지 않고, 가엾게 보일 때 비판해야 한다. 먼저 비난과 비방, 험담과 모함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선 자신과 싸움에서 이기고, 이어 세상과 싸움에 임해야 한다. “내면에서 하나를 이루면 파워가 생기고, 외부와 하나를 이룰 때 평화가 찾아온다.”
[이후경 ESG경제신문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