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거버넌스포럼 “과도한 자기주식 보유 정당화 우려”
주주 충실의무 원칙과 충돌...논의서 전면 재검토 불가피

[ESG경제신문=김대우 기자] 자사주 의무소각을 핵심으로 한 3차 상법 개정안에 갑자기 들어간 ‘경영상 목적’이라는 포괄적 예외 조항이 과도한 자기주식 보유를 오히려 정당화하는 역효과가 낼 것이라며 전면 삭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1일 논평을 통해 “3차 상법 개정안의 ‘경영상 목적’ 예외는 공론화된 적이 없는, 사실상 막판에 추가된 ‘깜짝 조항’(개정안 제341조의4 제2항 제5호)”이라며 “의무소각의 실효성을 약화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과도한 자기주식 보유를 제도적으로 정당화해 상법 개정의 취지와 주주이익 보호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주장했다.
포럼은 “회사가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정관에 이를 규정하고 주주총회 승인을 거쳐 자기주식 보유·처분 계획을 마련하면, 신규 취득분은 물론 기존 보유분까지 계속 보유할 수 있도록 예외 조항을 둔 것은 표면적으로는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자기주식 소각 의무 예외의 통로를 지나치게 넓게 열어 놓았다”고 지적했다.
‘임직원 보상, 우리사주제도, 신기술 도입, 재무구조 개선’ 등 광범위한 목적 아래 자사주 보유·처분이 허용되면, 사실상 경영진이 자의적으로 계획을 설계하고 주총 동원으로 추인받는 통로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는 얘기다.
포럼은 “무엇보다도 이번 예외조항이 현재 발행주식 총수의 10%는 물론 50% 이상까지 과도하게 쌓아 둔 자사주에 대해 ‘괜찮다’는 신호를 줄 수 있다”며 “애초 의무소각 논의는 이런 비정상적인 자사주 비축을 해소하겠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는데, 포괄적 ‘경영상 목적’ 예외는 그 근본 취지를 희석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꼬집었다.
포럼은 “실무적으로도 발행주식의 1%를 넘는 임직원 보상이나, 대규모 자금조달·사업제휴 등은 대부분 신주발행으로 충분히 해결이 가능해, 굳이 대량의 자기주식을 장기간 쌓아둘 합리적 이유가 크지 않다”며 “시장은 이미 상당수 기업의 과도한 자사주 보유가 총수·지배주주 측의 지배력 강화와 경영권 방어를 위한 수단이라는 점을 알고 있는데 이번 예외 조항이 ‘추상적인 목적 공시 아래 자사주를 더 보유하라’는 잘못된 신호로 줄 수 있다”고 부연했다.
개정 상법은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와 전체주주이익 공평대우의무를 명시해, 신주발행과 자기주식처분 모두에서 이 의무를 엄격히 준수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이에 따라 제3자 배정 유상증자의 ‘경영상 목적’ 역시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하고, 자금조달이 필요하더라도 주주배정을 우선고려한 뒤 부득이할 때 제3자 배정을 선택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런데 자기주식 보유·처분에 별도의 ‘경영상 목적’ 예외를 두고, 정관 개정 특별결의와 자기주식보유·처분계획에 대한 보통결의만 통과하면 그 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본다면, 이사는 자사주 활용과 관련한 판단에서 사실상 면책에 가까운 지위를 얻게 된다.
이는 과거 자본시장법상 시가 기준 합병비율 산정 절차만 지키면, 합병 과정에서 전체주주 이익 고려 여부와 무관하게 이사가 사실상 책임을 지지 않았던 실무 관행과 유사한 구조다.
절차 남용 자본시장의 역사...또 다른 절차적 면책 수단 제공
우리 자본시장에서는 이미 주주총회 특별결의가 소수주주 축출과 상장폐지, 지배주주 이익 극대화를 위한 도구로 악용된 전례가 많다. 특히 현금교부형 포괄적 주식교환과 같은 구조에서는, 절차적 정당성을 앞세워 실질적인 재산 탈취를 정당화했다는 비판이 반복돼 왔다.
상법에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를 명문화한 것은 이러한 절차 만능주의에 제동을 걸고, 이해상충거래를 단순한 절차 준수로 포장하지 못하게 하려는 제도적 약속에 가깝다. 그럼에도 자기주식 보유·처분에 대한 ‘경영상 목적’ 예외는 또 다른 형태의 절차적 면책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막 도입된 주주충실의무 원칙에 새로운 구멍을 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경영상 목적’이 아니라, 주주가치와 전체주주이익이라는 잣대에 따라 실질을 따지는 사후 책임체계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상법 개정의 취지가 살아날것이라는 점에서,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예외 조항의 전면 재검토가 불가피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달 25일 국회에는 회사가 취득한 자기주식을 원칙적으로 1년 이내에 소각하도록 하는 상법 제341조의4 신설 개정안이 제출됐다. 이 개정안은 자기주식의 법적 성격을 명확히 하고, 보유·처분 절차를 규율하며, 수십 년간 누적된 자사주 제도의 왜곡을 바로잡겠다는 ‘비정상의 정상화’기조를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더불어민주당 코스피5000 특별위원회가 주도한 이번 개정은, 그간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남용돼온 자사주를 주주가치 환원 수단으로 전환하고 자본충실을 강화하겠다는 정책 기조와 궤를 같이한다. 특히 신규 취득분뿐 아니라 기존 보유 자사주에도 일정 유예기간을 두고 소각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시장에 ‘과다 보유 자사주는 정리해야 한다’는 강한 신호를 주려는 취지가 반영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