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로보틱스 자회사 되는 ‘알짜’ 밥캣… “상장기업 밸류업에 역행”
㈜두산, 배당금 3배↑…두산밥캣 소액주주 "주식가치 침해" 반발
S&P, 밥캣 신용등급 부정적 관찰대상 지정..."그룹, 부정적 개입가능"
두산밥캣방지법까지 발의...4세 경영 CEO 데뷔 박인원 사장 시험대

[ESG경제신문=김대우 기자] 두산그룹이 내년초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을 합병하기로 한 가운데 그간 그룹 '캐시카우' 역할을 해온 두산밥캣 '소액주주 피해'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매출 10조원짜리 ‘알짜’ 두산밥캣이 매출 530억원인 두산로보틱스의 자회사가 되는 것이 상장기업 밸류업에 역행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계획대로 개편이 끝나면 지주사 ㈜두산은 두산밥캣에서 기존 3배의 배당금을 얻는 효과를 누리지만 개인투자자들은 두산밥캣 주식과 설립후 10년 가까이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한 두산로보틱스 주식을 교환해야 한다. 논란이 커지면서 국회에선 ‘두산밥캣방지법’까지 발의됐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두산그룹은 오는 11월 그룹내 지배구조 개편에 따라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편입한 뒤 내년초 두 회사를 합병한다. 합병 시 단일 회사명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두산밥캣은 상장폐지된다.
앞서 두산그룹은 지난 11일 사업 시너지 극대화와 주주가치 제고 차원에서 클린에너지, 스마트 머신, 반도체·첨단소재 등 3대 축으로 하는 사업구조 개편안을 내놨다.이 중 스마트 머신 부분에서 두산밥캣은 현재 모회사인 두산에너빌리티에서 인적 분할해 포괄적 주식 교환을 거쳐 두산로보틱스의 완전 자회사가 된다. 두산에너빌리티가 보유한 두산밥캣 지분 46%와 일반 주주가 소유한 54%를 두산로보틱스에 넘겨 100% 자회사로 만드는 방식이다.
두산그룹은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합병 비율을 1 대 0.63으로 정했다. 두산밥캣 1주를 두산로보틱스 0.63주로 교환해 준다는 얘기다. 두산은 양사 주가 수준을 토대로 합병 비율을 정하는 현행법을 따랐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두산밥캣 주주들로서는 주식 가치가 침해됐다고 주장한다. 안정적인 실적을 내는 두산밥캣을 믿고 투자했던 주주들이 강제로 적자 기업 '로봇 테마주' 주주로 전락하게 됐는데, 그나마 주식수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건설기계 회사인 두산밥캣의 실적은 ㈜두산에 연결돼 있는데 지난해 ㈜두산의 영업이익은 1조 4363억원이고, 두산밥캣의 영업이익은 1조 3899억원이었다. ㈜두산의 실적을 사실상 두산밥캣이 책임진 것이다. 반면 두산로보틱스는 2015년 설립 이후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고 올해 1분기에도 매출 108억원에 영업손실 68억원 적자다. 다만 로봇시장에 대한 기대감을 바탕으로 두산로보틱스의 주당순자산가치(PBR)는 12배가 넘는다. 두산밥캣의 PBR은 0.79에 머물러 있다.
지배구조 개편이 계획대로 진행되면 지주사인 ㈜두산의 두산밥캣에 대한 실질적 지분율은 약 14%에서 42%로 높아진다. 지분율이 3배 늘어나면서 구조 개편 완료 뒤 ㈜두산은 두산로보틱스를 통해 기존 두산밥캣에서 받던 배당금의 3배를 받게 된다. ㈜두산은 두산밥캣에서 배당금으로 2022년 921억원, 지난해 753억원을 받았다.
두산그룹은 “사업 목적에 맞게 계열사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것”이라면서 “두산에너빌리티는 원전과 소형모듈원전(SMR), 가스·수소 터빈, 해상풍력 등 본연의 원전 및 에너지 사업에 집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스마트 머신 부문에서는 소형 건설기계의 절대 강자 두산밥캣과 협동로봇 글로벌 시장으로 발을 넓혀 가고 있는 두산로보틱스의 사업적 결합에 따른 시너지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이에 대해 논평을 내고 "좋은 회사인데 주가가 낮다고 생각해서, 결국 본질가치를 찾아갈 것이라 믿고 오래 보유하려던 수 많은 투자자들이 '로봇 테마주로 바꾸든지 현금 청산을 당하든지' 양자 선택을 강요받는 날벼락을 맞는 상황이 됐다"고 비판했다.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 합병 방식 자체에도 논란이 제기된다. 두산에너빌리티를 '사업회사'와 두산밥캣 지분(46%)을 보유한 '투자회사'로 인적분할한 뒤 일시적 비상장사가 된 투자회사를 두산로보틱스와 합병하는 것이 '꼼수'라는 지적이다. 비상장사와 상장사의 합병으로 진행되는 탓에 두산밥캣 소액주주 이익이 침해되는 구조가 됐다는 것이다.

이번 개편으로 두산의 지배주주가 손쉽게 두산밥캣에 대한 지배력을 키울 수 있게 됐다는 의심도 사고 있다. 현재 상법 개정 추진 과정에서 논의 중인 '이사의 충실 의무 확대 도입' 필요성을 증명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두산그룹은 상법과 자본시장법상 규정에 따라 합병·교환 비율을 정했기 때문에 법적인 책임은 없다고 거듭 밝히고 있지만 논란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정치권으로도 확산되는 양상이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8일 두산밥캣 합병 논란 재발을 막기 위해 투자자 이익을 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합병가액을 정하고 기업이 그 가액이 공정하다는 입증책임을 지도록 상장법인의 합병비율 산정을 규제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 ‘두산밥캣방지법’을 대표 발의했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이번 구조 개편으로 두산밥캣에 대한 그룹의 보유 지분이 늘어나 부정적인 경영 개입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현행 BB+인 두산밥캣의 신용등급을 부정적 관찰대상(Credit Watch)으로 지정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4세 경영에 접어든 두산 오너가에서 CEO 데뷔전을 시작한 박인원(51) 두산로보틱스 사장이 이번 논란으로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 사장은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의 3남으로, 2022년 말 사장 승진과 동시에 두산로보틱스 대표이사에 올랐다. 박 사장이 두산로보틱스에서 경영 능력을 입증한다면 그룹 내 후계 구도 입지도 다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두산그룹은 형제경영 특성상 소수 지분을 오너가가 나눠 갖고 있는데 2016년부터 그룹을 이끌고 있는 박정원 회장(62)의 ㈜두산 지분율은 올해 1분기 기준 7.64%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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