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당장 죽진 않을 ‘냄비 속 개구리’
쇄신 없으면 결국 죽는다는 결연한 의지로
‘현실안주’ ‘관료화’ 냄비에서 뛰쳐나와야

420만 삼성전자 주주 중 한 사람으로서 가슴이 미어진다. 급기야 삼성전자 주가가 청산가치 밑으로 떨어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시장에서 미래 혁신역량에 대한 가치를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까지 몰린 것이다.
10조원 자사주 매입이란 방벽을 구축한 건 다행이다. 하지만 근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현실 호도책이 되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지금의 위기가 유동성 부족이나 주식투자자들의 매도심리에서 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미래에 대한 광범위한 우려가 근본 문제다. 조직문화와 리더십, 기술 경쟁력, 비전과 혁신 역량 등에 대한 진단과 처방은 사실 다 나왔다. 이제 실행하고 변화하는 일만 남았다. 삼성전자의 주주와 직원 등 이해관계자들은 곧 단행될 정기 사장단 인사, 연말 조직개편과 임직원 인사, 내년 초 주주총회 등을 통해 그 가능성을 읽어볼 것이다.
삼성전자의 현재 모습을 하나의 장면으로 묘사한다면 ‘냄비 속 개구리’가 딱 어울린다는 사람이 많다. 지금 따뜻하고 배부르니 뛰쳐나갈 생각 없는 개구리 말이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다 바꿔보겠다”는 각오를 갖고 밖으로 뛰쳐나가면, 주가가 다시 제자리를 찾고 ‘삼성전자 디스카운트’는 저절로 해소될 것이다. 삼성전자 주주들은 지금 이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삼성 위기 탈출의 관전 포인트를 몇가지로 정리해 본다.
①인적쇄신 : 재무·인사라인 중심 최고 경영진 물갈이
삼성의 위기 상황과 관련해 무엇보다 삼성전자 최고경영진의 정면돌파 의지를 기대했다. 부회장 이하 사장단이 자진 사퇴의사를 표명한 뒤 재신임을 기다리길 바랐다. IMF 외환위기 때 삼성전자 최고경영진 모두가 사직서를 미리 제출하는 배수진을 치고 구조조정에 나섰던 결연함을 다시 보고 싶었다.
이 정도 결기는 있어야 위기의 파고를 넘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적쇄신을 해야하는 이재용 회장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도 필요한 행동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의 선택을 달랐다. 자사주를 사는 애사심과 주말 근무를 하는 성실함으로 과거의 실책을 용서받고자 했다. 따뜻한 현실에 더 안주하고 싶은 ‘냄비 속 개구리’의 속성을 드러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죄송하긴 한데, 열심히 할테니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는 보신주의로 비춰졌다.
물론 억울한 사람도 적지않을 것이다. “그게 왜 다 내 책임이냐”고 반문하고 싶을 것이다. 운도 실력이란 말이 있다. 조직을 위해서라면 때를 맞춰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적당히 섞으면 또 썩을 수 있다. 삼성전자 안에는 아직 인재가 많다.
사실 그들의 선택은 중요하지 않다. 이재용 회장의 선택이면 다 끝이기 때문이다. 사장단 인사를 앞둔 이재용 회장은 ‘잃어버린 10년’으로 평가받는 지난 10년의 한순간 한순간을 냉정하게 복기해 보길 바란다. 특히 돈줄과 인사권을 쥐고 최고 의사결정을 주도해온 사람들의 공과를 집중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눈앞의 단기 성과를 위해, 현실에 안주하며 리스크를 회피하고, 미래를 향한 도전을 소홀히하고, 상생과 협동의 산업생태계 구축을 가로막고, 신뢰를 상실하게 만든 사람들, 그런 조직문화를 조장한 사람들을 가려내야 한다. 그들이 누구인지를 내부 조직원과 외부 거래선은 다 알고 있다.
②거버넌스 개혁 : 이재용 회장이 이사회 의장을
인적쇄신보다 더 중요한 것이 거버넌스와 조직의 쇄신이다. 새 술을 넣을 새 부대를 만드는 일이다. 이를 통해 삼성전자 전체의 의사결정체계와 이 회장의 리더십 강화를 도모해야 한다.
이재용 회장은 이제 ‘경영진의 성’에서 빠져나와 ‘이사회의 성’을 새롭고 강고하게 구축하여 그룹을 지배하는 거버넌스 개혁을 단행하길 바란다.
현 경영진에 둘러싸여 그들의 보고에 의존하는 의사결정을 해서는 혁신을 이루기 힘들다. 이 회장은 지배주주로서의 리더십을 발휘해 일반 주주, 외국인 투자자, 국내 기관투자자들과 강한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주주 중시, 이사회 중심 경영에 나서야 한다. ‘경영진의 대장’이 아니라 ‘주주 진영의 대장’이 돼 달라는 얘기다.
이번 위기의 타개책 중 하나로 많은 전문가들이 이 회장에게 이사회 등기임원 복귀를 당부했다.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해법도 그랬다.
이 회장은 등기임원 지위를 넘어 이사회 의장으로서 리더십을 구축하면 좋겠다. 지금의 이사회는 사실상 경영진을 자문하며 경영진의 의사결정을 추인하는 위치에 있다. 경영진은 회사의 정보를 독점하고 이사회에 제대로 전달하지 않는다. 이사회가 '눈뜬 장님', '고무 도장' 소리를 듣는 이유다.
더구나 이사회 구성을 보면 6명 전원이 내국인이고, 교수·관료 위주다. 글로벌 기술전쟁시대를 돌파할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힘든 구도다. 경쟁업체인 대만 TSMC의 이사회 구성을 보면 완전히 다르다. 7명의 사외이사 중 6명이 외국인이며, 이들 모두 글로벌 기업의 전직 CEO내지 IT업계 리더다. 이들은 직접 글로벌 IT기업을 경영하면서 고비고비 중대 의사결정을 해봤던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러니 경영진을 효율적으로 견제·감시하고 협력하면서 전략적 최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이재용 회장이라면 할 수 있다. 해외유학을 다녀와 영어에 능통하고 해외문화에 익숙하며, 다양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이 회장이 진정성을 갖고 손을 내밀었을 때 시외이사직을 기꺼이 맡아줄 글로벌 경영 리더는 많을 것이다.
이 회장은 TSMC처럼 주주구성에 맞게 이사회의 절반을 외국인에게 맡기고, 나머지 절반도 신망있는 국내 CEO 출신자나 IT 업계 젊은 리더들로 영입하길 바란다. 이를 위해 국내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삼성전자의 현 사외이사들은 이 회장에 그런 길을 열어주기 위해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 전에 자진 사퇴 의사를 표명해주면 좋겠다.
이사회 개편 이후 이사회 의장으로서 이 회장이 할 일은 차고 넘친다. 경영진에서 이 회장이 빠져나오면 삼성전자가 ‘선장없는 배’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법상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 및 경영진 평가보상·임면의 권한과 책임은 이사회가 갖는다. 이를 그대로 행사하면 더욱 강고하고 완벽한 기업 지배권을 확보할 수 있다.
이 회장은 이사회 합의로 실력과 리더십을 겸비한 삼성전자 CEO를 임명한 뒤 책임 경영을 하도록 권한을 위임하되, 이사회의 모니터링을 통해 성과를 엄정히 평가하고 보상하면 된다. 잘 하면 더 크게 보상하며 오래 맡기고, 못하면 바꾸면 된다. ‘경영진 성’의 건너편 ‘이사회의 성’에서 보면 회사 경영실태가 더 잘 보일 것이다.
③그룹 컨트롤타워 복원과 구조조정
이재용 회장이 인적쇄신, 조직쇄신과 아울러 단행해야 할 것이 삼성그룹 차원의 컨트롤타워의 복원과 구조조정이다.
지금 삼성그룹의 또다른 문제는 그룹안 삼성 ‘전자’의 다른 ‘후자’ 계열사 경영에 대한 과도한 개입이다. 그룹의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이 2017년 해체된 이후 그룹 내 컨트롤타워 역할은 삼성전자, 그 중에도 재무·인사라인이 맡아왔다.
이들은 그룹의 자원배분을 무기로 다른 계열사들의 예산과 인사를 좌지우지했다. 이에 따라 ‘후자’들은 독자적 의사결정과 혁신적 미래 도전이 힘들어져 더욱 ‘전자’에 의존하는 처지에 놓였다고 하소연한다. 삼성 금융 계열사들 안에서 삼성생명과 다른 금융회사들 간의 관계도 엇비슷한 모습이다.
이 회장은 전체 계열사를 망라해 미래기술과 산업전략에 밝은 인재들을 모아 그룹 컨트롤타워를 복원해야 한다. 새로운 컨트롤타워는 그룹 전체의 비전을 재설계하고, 인재를 영입·육성하기 위한 평가보상체계를 새롭게 구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엔지니어들을 우대하되, 재무라인과 견제·균형의 관계를 형성하고, 후선 관리업무 쪽은 조직을 슬림화하면서 보수체계도 다른 국내 그룹사들 수준을 감안해 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

④젋은 인재들의 아이디어를 경영에 반영
마지막으로 이재용 회장에게 기대하고 싶은 것은 미래 젊은 세대들과의 격의 없는 대화와 소통이다. 지금 삼성의 젊은 인재들은 이 회장 만큼이나 그룹의 지속가능성을 걱정한다. 그리고 나름 위기를 타개할 아이디어도 갖고 있다. 그들의 소리를 경청하고 현장 경영에 반영하는 모습 만으로도 삼성의 조직문화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삼성에는 ‘잃어버린 10년의 그림자’가 짚게 드리워져 있다. 기존 경영진 아래서 잘못 배우며 나쁜 조직문화에 빠진 중간 간부가 많다는 소리가 나온다. 기존 경영진을 대체할 혁신형 경영진을 구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그래도 삼성 안에는 아직 인재가 많으니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중간 간부들 아래 젊은 직원들은 유연하고 스마트하다. 선진국에서 태어난 선진 인재들이다. 이들이 임원 자리에 오를 때까지 이 회장이 함께 손을 잡고 땀 흘리고 대화하며 한 발짝씩 나아가야 한다.
최근 빠져나간 인재들을 포함해 외부의 인재들을 다시 끌어들이고, 아직 공부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지원해 삼성의 우군으로 만들어야 한다.
삼성전자가 이번에 자사주 매입·소각하는데 투입하는 10조원이면 연봉 5000만~1억원 직원을 10만~20만명 채용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돈이다. IT 벤처 수천개를 지원할 수도 있다. 삼성전자는 아직 100조원의 현금성 자산이 있고, 매년 30조원은 새로 벌어들이고 있다. 삼성전자에 미래를 걸어보자는 젊은 인재들을 얼마든지 육성하고 영입할 역량을 갖고 있다.
삼성의 위기 탈출은 그룹의 혁신에 대해 주주와 시장, 그리고 미래세대에 믿음을 줘야 가능하다. 그 첫걸음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따뜻한 냄비를 박차고 나오면 된다.
문제는 끊임없이 뒷다리를 잡는 냄비 속 현실안주파들이다. 이미 거대한 세력을 만들었고 문화를 형성했다. 이들을 뿌리칠 사람은 단 하나, 이재용 회장 뿐이다.
“우리가 맞을 경제전쟁은 무력전과 다르다. 자기가 전쟁을 하고 있는지, 전쟁에 지고있는지도 모르면서 망해간다. 끓고 있는 '냄비 속에 갇힌 개구리'처럼 죽는 줄도 모르고 무기력하게 당할 수 있다. 이 전쟁의 패자는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이 1993년 '신경영선언'에서 남긴 말이다.
[김광기 ESG경제 대표기자·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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