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전력망으로 에너지 가용성 증진 방안
전력 수급의 지역별·시간별 불일치 해소
2050 탄소중립의 현실적 방안으로 부상
국제협력과 초국가적 관리기구 설치 관건

[ESG경제신문=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인공지능(AI) 및 로봇 산업의 발달 등으로 전기에 대한 수요가 전세계적으로 폭증하고 있다. 하지만 전기는 생산과 동시에 소비해야 하는 특수한 상품이다.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사용하려면 큰 돈이 든다.
아울러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생산 확대에는 여기에 꼭 필요한 핵심광물의 수급 문제가 발목을 잡는 복병으로 떠오른 상황이다.
이런 문제들을 풀어낼 새로운 대안으로 글로벌 전력 송전 네트워크의 구축이 제시되고 있다. 전세계를 하나의 전력망으로 묶어 전력 생산이 넘치는 나라와 부족한 나라를 묶고, 밤과 낮의 시간차를 이용해 전력 수급의 불일치도 해소하자는 것이다.
중국과학원 지리과학원 자연자원연구소 등 연구팀은 최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전 세계적으로 상호 연결된 태양광-풍력 시스템이 미래 전력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전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를 풍족하게 생산할 수 있는 지역과 수요가 집중된 지역을 연결, 송전한다면 2050년 전 세계 수요 전망치의 3.1배에 해당하는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지역 간 송전을 최적화할 경우 에너지 효율을 향상시키고, 재생에너지의 변동성(간헐성)을 완화하고, 에너지 가용성을 증진하고, 탈탄소화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연결이 달성되면 태양광-풍력 최대 잠재량의 29.4%만 사용해도 필요한 전력을 공급할 수 있고, 초기 투자 비용도 15.6% 절감된다는 분석했다. 태양광과 풍력에너지 설비의 사용 효율을 높인다면, 그만큼 관련 시설을 덜 설치해도 된다는 얘기다. 시설을 덜 설치한다면 관련 광물에 대한 수요도 크게 줄일 수 있을 전망이다.
한밤중 동아시아에 유럽의 태양광 전력 공급
연구팀은 전 지구의 표면을 0.25° × 0.25° 격자(적도 부근에서는 약 27.75㎞ × 27.75㎞)로 나눠 태양광과 풍력 에너지 잠재력을 분석했다. 서유럽과 인도, 중국 동부와 같이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발전 잠재력이 보통 격자당 연간 1 TWh(테라와트시, 1TWh는 10억kWh)를 넘지 않는 낮은 수준이었다. 이에 비해 미국 중서부와 서아시아 및 중앙아시아, 남아프리카, 지중해 인근 북아프리카와 같이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에서는 발전 잠재력이 연간 10 TWh를 초과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울러 시간적 불일치를 활용하는 방안이다. 예를 들어 동아시아의 경우 총 발전 잠재력은 2050년 수요와 유사하지만, 태양광 발전이 멈추는 야간 시간대(UTC 11:00~24:00)의 평균 발전량은 전력 수요에 못 미친다. 반대로 같은 시간대에 서유럽과 남유럽, 중부 아프리카에서는 태양광 발전 덕분에 전력이 남아돌게 된다.
이런 시공간 배치를 고려한다면 동남아시아와 남유럽, 멜라네시아와 같은 지역은 2030년 전력 수요를 충족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은 반면, 중앙아시아와 남아프리카, 북아프리카는 수요를 30배 이상 초과하는 잉여 잠재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됐다.
연구팀은 지역간 송전선로 연결과 시간대별 전력 교환이 이뤄진다면 이러한 불균형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연구팀은 전력 수요가 많은 지역과 발전 잠재력이 큰 지역의 전력 시스템을 상호 연결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스페인과 모로코는 지중해를 가로지르는 3개의 400kV 700MW 해저 전력 케이블을 통해 연결돼 있고, 중앙아메리카 전기 상호 연결 시스템은 6개국을 300MW 전력망으로 연결한 사례를 연구팀은 소개했다.
또, 초고압 직류(UHVDC) 송전선로로 상호 연결해 재생에너지 전력을 거래할 경우 투자 규모를 줄일 수 있고, 동시에 CO₂ 배출량과 대기오염 물질 수준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지역별 전력 생산 잠재력 (TWh/년). 격자별로 태양광과 풍력의 전력 생산 잠재력을 나타낸 것이다. [자료: Nature Communications, 2025]](https://cdn.esgeconomy.com/news/photo/202505/11259_15970_3032.png)
"2030년 대륙 연결, 2050년 글로벌 연결망 완성" 제안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연구팀이 추정한 결과, 전 세계 상호 연결이 가능한 태양광-풍력 총 발전 잠재력은 연간 23만7330 TWh이라는 엄청난 수준이다. 이 양은 2050년 예상 전력 수요의 3.1배, 2100년 예상 전력 수요의 1.2배에 해당한다. 재생에너지가 글로벌 탄소중립에 기여할 잠재력을 나타낸다.
연구팀이 구상하는 시나리오는 2030년대에는 인접 상호 연결망을 구축하고, 2040년대에는 대륙 상호 연결망으로 발전시키고, 2050년대에는 전 세계적인 상호 연결망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북미-유라시아, 남미-아프리카를 가로지르는 대륙 횡단 회랑을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으로 서아시아-북아프리카, 남아시아-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동아시아 등과 같은 연결망도 구축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연결망을 통해 북미-동유럽 회랑은 동쪽으로 최대 6.8TW, 서쪽으로는 최대 6.0TW를 지원해야 하고, 남미-서아프리카 및 중부 아프리카 회랑은 동쪽으로 최대 10.5TW, 서쪽으로 8.0TW에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글로벌 상호 연결은 에너지 및 인프라 활용 효율을 크게 향상시켜 넷제로 에너지 목표 달성에 드는 전반적인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밝혔다. 풍력 및 태양광 발전소의 설비 용량을 22.1% 감소시키고, 저장 시스템의 설비 요구량을 37.0% 낮추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태양광 발전시설, 풍력 터빈, 에너지 저장 및 송전 시설 건설에 대한 초기 투자는 15% 이상, 즉 약 22조4700억 달러의 잠재적 절감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글로벌 상호 연결은 광범위한 지역 간 전력 공유를 촉진해 에너지 가용성을 잠재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연구팀은 전력 교환 시장의 점진적인 확대로 2050년대에 이르면 연간 거래량이 3만8470 TWh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연구팀은 “전 세계 상호 연결된 시스템은 높은 재생에너지 보급률을 달성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 전환을 이끌어내는 데 뛰어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 연구팀이 구상한 글로벌 전력 네트워크. 지역별 노드를 중심으로 숫자는 송전 능력(TW, 테라와트)을 나타내고, 색깔은 송전망 연결 시가를 말한다. [자료: Nature Communications, 2025]](https://cdn.esgeconomy.com/news/photo/202505/11259_15971_3135.png)
“연결망 위한 국제협약과 초국가적 기구 필요”
연구팀은 전 세계적으로 상호 연결된 전력망에 대해 극한 또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의 회복력을 평가하고, 잠재적 위험을 파악하기 위한 스트레스 테스트도 수행했다. 이 테스트는 기후 변화, 극한 기상 현상, 양립할 수 없는 지역 정책, 지정학적 긴장, 시장 경쟁이라는 다섯 가지 주요 시나리오를 대상으로 했다.
향후 기후 변화는 태양광 및 풍력 발전과 전력 수요의 변동성을 증가시켜 가변적인 재생에너지가 주를 이루는 전력 시스템에 상당한 어려움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태양광 광도나 풍속, 전력 부하 등의 변수를 고려하면 글로벌 전력 공급의 불확실성이 상호 연결된 그리드 내에서 0.1% 미만의 수준으로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상호 연결 정도가 높아짐에 따라 감소할 것으로 연구팀은 전망했다.
2021년 2월 텍사스 겨울 폭풍으로 대표되는 극한 기상 현상은 빈번하고 심각한 지역 발전 장애를 유발하여 전력 공급에 상당한 위협을 가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상호 연결된 그리드는 이러한 장애에 대처하는 데 탁월한 견고성을 보여준다고 연구팀은 주장했다.
다만, 세계적으로 상호 연결된 전력 시스템은 양립할 수 없는 지역 정책, 지정학적 긴장, 그리고 공격적인 시장 경쟁으로 인한 차질에는 여전히 취약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선진국은 자신들의 에너지 자립을 우선시할 수 있으며,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과 같은 지정학적 위기에 대응해 에너지 자립에 대한 우려를 고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전력망 전체가 붕괴되는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한다면, 전 세계 태양광·풍력 발전의 낭비율(curtailment)은 41.2%로 늘어나고, 그에 따라 실제 에너지 시스템에 통합돼 사용되는 비율(penetration)은 22.9% 줄어들게 된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상호 연결된 전력 시스템의 장기적인 신뢰성과 복원력을 보장하기 위해 조율된 국제 계획, 안정적인 지정학적 환경, 그리고 공정한 시장 조건이 중요함을 의미한다.
연구팀은 “지역적이고 자급자족적인 방식에서 광범위하고 통합된 글로벌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려면 이해관계자 간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지역 간 투자를 조율하며, 경쟁적이고 공평한 초국가적 에너지 흐름을 보장하기 위한 탄탄한 국제 협정과 초국가적 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손정의, 2011년 아시아슈퍼그리드 제안하기도
한편, 중국 연구팀의 이번 연구는 글로벌 전력 네크워크 구축은 지난 2015년 유엔 지속가능개발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주창한 “글로벌 에너지 상호 연결(Global Energy Interconnection, GEI)” 구축 계획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뒤에 있는 정치적 의도까지도 따져볼 필요는 있다.
하지만, 2011년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몽골의 신재생에너지를 바탕으로 아시아 국가 간 전력 연계를 추진하는 ‘아시아 슈퍼 그리드’를 제안한 바 있고, 이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동북아 슈퍼그리드’ 전략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기도 했다.
남북 긴장 상황 등 지정학적 요인 때문에 동북아 슈퍼 그리드의 추진이 지지부진하지만, 역으로 슈퍼그리드 논의가 남북한의 긴장을 완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전력 부족으로 고통을 겪는 북한으로서도 이런 논의에서 얻을 게 많다면 관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재생에너지 확보가 시급한 한국이나 일본으로서는 글로벌 에너지 네크워크 구축 논의를 외면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동북아 전력공동체 같은 형태의 지역 협력체계를 마련할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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