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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핑크, 올 연례서한서 ‘ESG’ 언급 자제...공화당 의식했나?

  • 기자명 이진원 기자
  • 입력 2023.03.17 18:21
  • 수정 2023.05.16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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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와 환경 등 ESG 관련 언급 최대한 서한 말미에
서한 발표도 예년보다 늦어...전문가들 "공화당 비판 의식?"

2018년 9월 20일 야후 금융 콘퍼런스에 참석한 래리 핑크 블랙록 CEO.  AP=연합
2018년 9월 20일 야후 금융 콘퍼런스에 참석한 래리 핑크 블랙록 CEO.  AP=연합

[ESG경제=이진원 기자]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투자자들에게 보낸 올해 연례 서한에서 전과 달리 기후변화와 환경 같은 ESG 이슈 언급을 최대한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매년 1월 발표해 온 연례 서한을 올해는 3월 중순에야 내놓은 것도 미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반(反)ESG 흐름을 의식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래리 핑크는 글로벌 투자시장에서 ESG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설파하는 전도사로 통하는 인물이다.

핑크 회장의 2021, 2022년 연례 서한만 보더라도 기후와 환경 문제를 집중 부각했다. 하지만 이번 연례 서한에서는 기후 문제의 경우 서한 뒤쪽에서 잠깐 언급하는 데 그쳤다. 환경 문제도 “기업이 환경 경찰은 아니다”라며 해결 주체를 정부에게 떠넘기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올 서한에서는 아예 'ESG' 표현이 등장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가 연례 서한에서 ESG 이슈를 지나치게 부각함으로써 거듭 보수세력의 표적이 되는 걸 의식해 관련 언급 수위를 낮춘 게 아니냐는 지적이 시장에서 제기된다.

ESG 이슈 뒤로 빼고 ‘선택’ 강조

핑크 회장은 매년 공개적으로 투자 서한을 작성 발표하는데, 이는 투자기업 경영진과 비즈니스 리더들의 필독 대상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런데 그는 최근 이 서한을 자신이 중시하는 ESG 이슈의 집중 부각에 활용해왔다. 예를 들어, 2020년 서한에서는 기후변화 문제가 블랙록의 투자기업 평가에 ‘결정적 요인(defining factor)’임을 언급했다. 더 나아가 여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않는 기업은 포트폴리오에서 제외하겠다는 엄포를 놓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는  기후변화나 ESG에 대한 논의를 서한의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대신 '선택'의 중요성을 주로 강조했다. 가령 이런 대목이 있다.

“고객은 항상 우리가 하는 일의 중심에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투자 목표와 선호도와 투자 기간 및 위험 인내 범위가 폭넓게 다른 고객을 상대로 서비스를 제공한다”면서 “우리는 고객 각자에게 투자 목표를 달성할 선택권을 지원하며, 고객이 세운 목표와 지침에 따라 그들의 자산을 (대신) 관리해준다.”

“기업이 환경경찰 노릇 할 수 없다”

핑크 회장은 또 기부기금, 보험사, 국부펀드 외에 미국의 공적·사적 연금이 대리투표 절차에 참여하도록 하는 블랙록의 ‘투표 선택권(Voting Choice)’ 관련 구상도 언급했다. 이런 식이다.

“우리가 고객 돈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그 돈은 그들의 것은 아니다. 우리 것도 아니다. 오직 우리 고객의 것이다. 우리 책임과 의무는 그들에게 있다. 우리가 지금처럼 광범위하고 다양한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해 본 적이 없었다. 블랙록에게 '선택'이 지금처럼 중요한 적이 없었다.”

이어 현재 S&P500에 속한 기업 중 절반 이상이 온실가스 배출 공시를 자발적으로 하고 있다면서 기업 활동과 정부 정책의 ’분리‘를 강조했다. 그는 “(자발적 공시) 기업 수가 앞으로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지만 지금까지 몇 년간 일관되게 말해 왔듯이 정부는 정책을 만들고 법안을 제정해야지 (블랙록 같은) 자산운용사와 기업이 환경경찰 노릇을 해선 안 된다”고 했다.

ESG 단어 등장하지 않아

예년과 달라진 연례 서한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점은 핑크 회장이 9000단어로 이루어진 긴 서한 중에 ESG란 단어를 한 차례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선택‘이란 단어가 20회 이상, ’고객‘이 100회 넘게 언급된 것과 대조적이다.

’기후‘에 대한 언급도 편지의 후반부가 돼서야 처음 나왔다. 핑크 회장은 블랙록이 기후 위험을 모니터링하는 방법에 대해 거론하면서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이 여전히 장기 투자 전략의 일부임을 강조했다. 그는 “장기 투자를 위해서는 인구 통계, 정부 정책, 기술 발전,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 등 수익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장기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썼다.

핑크 회장은 작년 연례 서한에서만 해도 공화당의 ’워크 자본주의(woke capitalism·정치적 목소리를 올바른 양 내는 기업들의 경영 방식을 꼬집는 용어)‘ 지적을 해명하는데 상당 분량을 할애했다. 그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고객·종업원·거래기업·채권자·정부·사회일반에 이르기까지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신경을 쓰는 자본주의)‘는 정치 운동이 아니라면서 기업들이 이런 신념과 흐름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한 바 있다.

공화당 비판과 투자 철회 의식했나

연례 서한 내용의 이 같은 변화는 ESG투자를 비난하는 공화당이 ESG 활동에 앞장서 온 블랙록을 집중 표적으로 삼고 공격하고 있는 가운데 일어났다. 핑크 회장이 이런 공격을 의식해서 연례 서한에 변화를 준 것이란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예를 들어, 지난해 말 플로리다주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블랙록에 맡긴 투자금 약 20억 달러(2.6조 원)를 회수하겠다고 으름짱을 놨다. 이는 미국의 여러 주 가운데 블랙록으로부터 회수한 투자금 중 최대 규모였다.

플로리다주 외에도 사우스캐롤라이나, 유타, 아칸소, 미주리, 루이지애나 등 공화당이 장악한 주들이 블랙록과 핑크 회장으로부터 수억 달러에 달하는 투자금을 회수하거나 투자 계획을 철회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핑크 회장은 공화당의 공격을 의식하는 듯한 모습을 잇따라 보여 왔다. 그는 올해 1월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공화당의 공격을 언급하며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는 “ (공화당의) 오해를 풀려고 애쓰고 있지만, 비난 세력이 비즈니스 공격에 그치지 않고 인신공격까지 한다”며 “내 전 경력을 통틀어 이런 인신공격은 처음이다. 그들은 ESG투자를 사악하고 위협적인 행태로 몰아가려고 애쓴다”고 거북한 심정을 드러냈다.

ESG투자로도 수익 창출 가능하다는 점 강조

에너지 산업 의존도가 높은 공화당 주들은 기업들이 화석연료 사용을 중단할까 봐 걱정하면서, ESG를 그들 주 경제의 직접적 위협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친환경 투자를 강조하는 블랙록이 곱게 보일 리가 없다.

핑크 회장의 반대파들은 블랙록 같은 큰 기업들이 ESG를 우선시함으로써 주주에게 가치를 되돌려주겠다는 기본적 약속을 어기고 있다는 비난을 해 왔다. 그는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수익 창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올해 연례 서한을 마무리했다.

“나는 블랙록 고객을 옹호하고, 장기적 관점의 투자를 격려하고, 투자 과정의 위험과 기회를 알려주는 데 힘써왔다. 블랙록 설립 이래 고객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우리 약속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런 신념으로 우리는 주주에게 엄청난 수익을 안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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