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함께 조종하다’는 어원에서 나온 협력의 의미
살라미스 해전에서 활약한 아테네 시민들이 모범
완벽은 없고 ‘좋은 거버넌스’를 향해 부단히 노력해야

[ESG경제=김상민 기자]
“근래 기업 경영의 화두로 자리잡은 ESG란 무엇인가요?”
“영어로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거버넌스(Governance)의 머리글자를 딴 단어이지요. 기업들이 친환경, 사회적 책임경영,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지구를 망가뜨리지 말고 더불어 살아가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의 지속가능성을 높이자는 의미랍니다.”
“환경의 중요성,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그런대로 알겠는데 지배구조란 게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아요. 지배구조를 좋게 가져간다는 게 손에 딱 잡히지 않네요. 지배구조를 어떻게 가져가는 게 좋은 것인지요? 지배구조라면 지배를 받는 사람도 있을텐데.”
“주주뿐만 아니라 고객, 직원, 협력업체, 지역사회 등 모든 이해관계자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기업의 의사결정이 이뤄지도록 하는 게 거버넌스(지배구조) 개선이 아닐까요?”
“그럼 거버넌스의 기본 원칙이나 좋은 거버넌스가 추구하는 이상이 있을 텐데요?”
“글쎄요. 그건 매우 복잡한 문제가 될 것 같네요. 딱히 뭐라고 정의하기도 그렇고....”
용어부터 헷갈리는 E, S, G 중 거버넌스
ESG와 관련한 대화나 설명에서 가장 헷갈리는 부분이 바로 거버넌스란 용어이다. 거버넌스란 정확히 뭘까?
국제표준화기구(ISO)가 기업뿐만 아니라 모든 조직의 사회적 책임을 위해 마련한 표준안 ISO 26000은 “거버넌스란 조직이 목표를 추구하는 데 있어 의사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사항을 수행하기 위한 체계”라고 정의한다. 여기에서 지배구조란 단어는 없다. ISO의 정의만 보면 거버넌스를 지배구조로 번역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고, 차라리 의사결정시스템이라고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이렇게 볼 때 좋은 거버넌스란 결국 좋은 의사결정 시스템이다. 대체로 좋은 의사결정 시스템은 상명하복이나 독단적이 아니라 민주적인 의사결정 체계를 의미한다. 결국 좋은 거버넌스가 지향하는 이상은 조직(국가, 기업, 단체 등) 내 민주주의, 정확히 조직 내 자유민주주의가 아닐까 싶다.
이런 면에서 거버넌스를 '다스림' '통제' '명령' 등의 의미를 내포하는 '지배구조'로 번역해 법률 조문부터 학계ㆍ언론계 등에서 공식 용어로 쓰고 있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거버넌스의 어원은 그리스어 ‘kubernáo’
거버넌스가 지향하는 이상을 알아보기 위해 거버넌스란 단어의 탄생부터 살펴보자. 거버넌스의 어원은 그리스어 ‘kubernáo’로 알려져 있다. ‘배를 조종하다’는 뜻인데, 이게 라틴어 ‘guberare(guide)’로 변하고, 영어 거버넌스가 됐다는 것이다. 배가 나아가려면 선장 혼자서는 안되고 선원 등 수 많은 사람의 힘이 함께 필요하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거버넌스는 ‘지배’가 아니라 ‘협력’으로 설명하는 게 더 옳다.
거버넌스에서 협력의 의미를 찾고 싶다면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두 나라가 부딪힌 여러 전쟁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게 기원전(BC) 480년 벌어진 페르시아의 제2차 그리스 원정이다. 당시 페르시아 원정군은 대략 20만~50만 명에 이르는데, 유명한 영화 <300>에서 보듯이 테르모필레 전투와 아르테미시움 해전에서 그리스는 패배했다. 페르시아군은 여세를 몰아 아테네를 점령하고 시가지에 불을 질렀다. 아테네 시민들은 바다로 피신했다. 최후의 보루였던 그리스 해군은 지형적으로 대단히 좁은 살라미스 해협에서 전투를 벌였다.
살라미스 해전을 준비하기 위해 아테네는 아티카의 은(銀) 광산에서 나오는 모든 수입을 3단 갤리선을 만드는 데 투입했다. 전투를 위해 동원된 그리스 함대는 368척이었다. 각각의 배에는 배를 젓는 노잡이 170명과 선원 20명, 수병 14명 등 200명가량이 필요했다. (페르시아 해군은 800척 가량이었다.)
당시 만들어진 3단 갤리선은 노를 힘껏 저어서 적군의 전함에 부딪혀 박살하는 방식으로 전투를 치렀다. 가장 중요한 전투 주역은 배 안으로 들어가 노를 젓는 노잡이들이었다. 그들은 노를 젓다가 함선끼리 맞부딪혀서 전투가 벌어지면 병사로 변신해 싸웠다.

엄청난 힘이 들어가는 노 젓기는 행동의 완전한 일치를 요구하면서 단결심을 키웠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같이 땀을 흘리고 물집을 참아가면서 전투에 임했다.
페르시아는 노예들이 노잡이로 투입된 반면, 아테네의 노잡이들은 대부분 재산이 거의 없었던 최하층 시민들이었다. 자유로운 인간이 자유를 지키기 위해 더 용감하게 싸우는 법. 그리스 시민들은 가족과 아테네를 지키기 위해 죽기 살기로 싸웠고, 그들이 아테네의 자유와 독립을 지킨 승리의 주역이 되면서 정치적 위상도 높아졌다.
아테네는 살라미스 해전 이후 시민들의 정치 참여의 정치 의식이 높아졌고, 페리클레스의 영도 하에 민주주의의 황금시대를 맞이했다. 미국 역사학자 존 헤일은 “아테네 해군이야말로 자유의 보루이자 민주주의의 동력”이라고 표현했다.
거버넌스에는 ‘민주주의 가치 구현’이란 의미 담겨
결론적으로 그리스어 ‘‘kubernáo(배를 조종하다)’에서 나온 거버넌스란 단어에는 역사적으로 ‘민주주의 가치 구현’이란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거버넌스를 복종, 다스림, 강제, 명령 등과 같은 상명하달이나 지배의 개념이 아니라 조직 내의 민주적인 협의나 합의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대체로 기업 거버넌스는 ‘기업 내에서 누가 최종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수익과 위험을 배분할 것인가를 규정하는 법적, 제도적, 문화적 시스템’이라는 식으로 설명되는데, 그게 민주적인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거버넌스가 민주적인 의사결정시스템이라고 한다면 완벽한 거버넌스는 존재할까? 거기에 대해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설명으로 대체하면 좋을 듯하다.
정치철학자인 W.B.갤리는 “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합의가 어려운 개념이며, 민주주의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놓고 계속 이의가 제기되는 이상 민주주의에 대한 일치된 정의란 없다”고 말했다. 인도에 가면 신의 숫자가 인도 인구만큼 많다는 말이 있듯이, 민주주의도 정치사상가의 숫자만큼 다양하게 정의된다는 것.
정치사상가들에 따르면 문자 그대로의 민주주의는 역사상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다고 한다. 최선의 민주주의를 향한 노력이 있을 뿐이다. 민주주의 가치가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 가정 등 사람이 사는 모든 곳에서 실현돼야 진정한 민주주의가 이뤄지는 데 그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거버넌스는 앞서 보듯이 탄생의 역사와 추구하는 이상 측면에서 그리스 민주주의와 궤를 같이한다. 이러한 거버넌스도 결국 ‘완벽한 거버넌스’는 없고 ‘좋은 거버넌스’를 향한 부단한 노력만이 있을 뿐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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