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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버넌스의 이해]③ 주인의식은 개인 소유권 보장될 때 꽃피워

  • 기자명 김상민 기자
  • 입력 2023.04.25 00:29
  • 수정 2023.04.27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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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구성원이 주인의식 갖도록 만드는 게 좋은 거버넌스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권력으로 개인 재산권 억누르다 파멸
실력과 성과 우대하는 공정가치 실현 때 지속가능성 발현

미국 달러화.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달러화. 로이터=연합뉴스

[ESG경제=김상민 기자]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어라, 서 있는 곳이 모두 참되리라)’ 

중국 당나라의 승려인 임제의현(臨濟義玄), 즉 임제선사의 법어이다. 주체적 삶을 강조하는 이 법어를 좋아하는 사람이 참 많다. 가훈으로 쓰거나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기도 한다. 최고경영자들이 임직원에게 즐겨 당부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주인(主人)이라는 말은 소유와 연결돼 있다. “이 물건 주인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보면 그 뜻을 쉽게 알 수 있다. 주인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대상이나 물건 따위를 소유한 사람이나 고용 관계에서의 고용주를 높여 부르는 말, 혹은 아랫사람이 자신의 소유주를 높여 부르는 말 등으로 풀이한다. 우리말로 ‘임자’라고도 부른다. 과거 계급사회, 신분 사회에서 주인은 노비, 노예, 머슴, 농노, 소작인의 반대말이기도 했다.

주인은 소유권을 가진 사람인데, 그럼 소유란 무엇일까? 소유(所有)는 물건을 가지고 있거나 지배한다는 의미로, 영어로는 ‘ownershiop 혹은 formal possesion’이라고 한다. 소유는 곧 그 사람의 재산(property)을 뜻하므로 단순한 점유와 다르다. ‘소유냐 점유냐’에 따라 정치와 경제체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는 소유권을 기반으로 구축돼 있으며,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점유를 기반으로 한다. (다만 일상생활에서 소유와 점유를 구분하기는 힘들지만)

거버넌스의 성패는 구성원의 주인의식에 달려

소유 즉 재산(property)은 ‘한 개인에게 속한, 혹은 고유한’이란 뜻의 라틴어 ‘proprius에서 유래했다. ‘개인에게 속해 있다’는 의미에서 법적 의미인 소유(ownership)가 나왔다.

소유란 정부로부터 인정받는 권리를 뜻한다. 소유가 점유와 다른 점은 사회나 국가, 관습이나 관례, 혹은 법으로 집행되는 권리라는 점이다. 고대 로마에서는 이러한 소유를 ’도미니움( domonium)’이라고 불렀다.

소유에는 집·옷·보석 등 소비를 위한 개인적 소유, 땅·자본 등 생산을 위한 소유, 자유와 목숨 등 개인에게 속하는 고유 권리에 대한 소유 등을 포함한다. 반면에 점유(possession)는 법적 소유가 아니라 오랫동안 사용하거나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데 따른 ‘관습적 권리’를 뜻한다. 점유는 물리적 힘과 공동체의 암묵적 지지를 통해 권리가 유지되는데, 오늘날도 법 체계가 미비한 곳에서는 자산 대부분이 점유 형식으로 존재한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는 집과 옷은 물론 땅과 자본, 자유와 목숨 등에 대한 소유권을 확실히 인정한다. 반면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땅과 자본 등에 대해서 점유만 인정한다.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부동산이 대체로 ‘30년 임대' '50년 임대' 형식을 띠는 것은 ‘모든 땅은 국가 소유’라는 원칙 때문이다. 과거 황제나 왕이 지배하던 시절에도 백성에게는 점유만 있었을 뿐 진정한 소유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소유권에 대한 역사 자료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독립된 개인이 재산의 주인이 되는 소유(property), 즉 개인 재산권의 보장이 가져다주는 힘은 놀라울 정도였다. 흔히 공동소유 즉 공유(公有)는 사실상 점유를 의미하고 ‘무임승차(free rider)’ 현상 때문에 비효율의 극치를 보였다. 미국과 소련의 역사 사례를 비교하면 매우 흥미로운 결과를 발견할 수 있다.

소유권 무시된 공동 사용은 빈곤과 굶주림 초래

영국이 미국 땅에 만든 첫 식민지는 ‘버지니아 컴퍼니 오브 런던’이 1607년 세운 제임스타운이다. (당시 영국 왕이 제임스였다) 제임스타운은 설립 초기 ‘공동체 원칙’을 채택해 모든 구성원이 자신이 제공할 수 있는 것을 공동 상점에 제공하고 필요한 물품을 받아갈 수 있도록 했다.

‘공동 생산과 기여, 개별 사용’의 결과는 빈곤과 기아였다. 처음에 입국한 500명 가운데 440명이 첫 6개월 동안 배고픔으로 사망했을 정도였다. 버지니아 컴퍼니는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한 공동체 원칙을 포기하고 각 구성원에게 3에이커씩 땅을 나눠줘 가족을 부양하도록 했다. 그 결과 생산성이 10배나 증가했고, 대부분의 구성원이 살아 남을 수 있었다.

랠프 해머(Ralph Hamor) 선장이 1615년 쓴 <버지니아의 진짜 이야기>에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과거에 사람들이 공동 상점에서 먹을 것을 얻고 함께 땅을 일구고 옥수수를 심었을 때 어떤 사람은 자기 일을 빼먹을 수 있어서 좋아했다. 일반적으로 아무리 정직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일주일 내내 성실하게 진심으로 수고한 노동량이 단 하루에 일할 만큼조차도 되지 않았다. 자신이 일하지 않아도 수확량이 늘어나고 그것으로 충분히 먹고살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며 생산량 증가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 결과 30명이 일해 얻은 옥수수의 수확량이 자신을 위해서 3명이 생산한 것보다 많지 않았다.”

제임스타운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규칙을 만들었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 못한다(No work, No food)’, ‘포도를 훔치거나 옥수수를 빼돌린 자는 사형에 처한다’, ‘누구나 똑같은 투표권을 갖는다’ 등이었다. 영국을 떠날 때는 귀족, 성직자, 군인, 목수, 농부 등 계층과 계급이 달랐으나 제임스타운에서는 민주적 평등이 이뤄졌다. 그들은 옥수수, 담배, 목화를 심어서 스스로 부를 만들었는데, 개인 소유권을 바탕으로 부를 일군 사람들이 금은보화가 없는 미국을 옥토로 만들었다. 미국은 그 후 개인 소유권을 가장 잘 보장하는 나라가 되었고 세계 패권국으로 올라섰다.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소련의 사례도 소유 즉 개인 재산권이 번영의 핵심임을 알려준다. 1917년 권력을 잡은 레닌은 사소한 개인 소유물을 제외하고 토지와 모든 형태의 사유재산을 국가 소유로 만들었다. 쿨라크(자작농 혹은 모든 농촌 거주자)의 곡물을 모두 몰수하고, 저항하는 농민을 수백 명씩 공개 처형하기도 했다. 도소매 상거래를 모두 국가가 독점하고, 도시의 부동산과 산업시설을 국가 소유로 만들었다.

3년이 흐른 1920년 산업생산은 1913년과 비교해 82%나 하락했다. 곡물 생산은 약 40%나 줄었고 기아의 기미가 나타났다. 실제로 1921~1922년 사이에 5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었다. 경찰 단속에도 농산물과 공산품을 거래하는 암시장이 생겨나 번성하기 시작했다.

레닌은 경제정책 노선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 신경제정책(NEP)을 펼치고, 농민이 국가에 바치고 남은 농산물은 처분할 수 있도록 했다. 그 후 1928년에 러시아의 곡물 생산량은 1914년 이전 수준을 되찾았다.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각 가정에 마음대로 생산하고 팔 수 있는 ‘텃밭’을 허용했다. 집단농장 가정에 배당된 땅은 평균 0.6에이커(2,400㎡, 730평) 정도로 전체 농지의 약 1.5% 정도였는데, 식량 생산의 약 3분의 1이 여기서 나왔다. 1979년엔 이러한 텃밭이 소련 내 육류·채소·우유의 30%, 달걀의 33%, 감자의 59%를 공급했다.

소련 권력자들은 현실 속에서 ‘개인 소유 즉 개인 재산권의 위대성’을 알았으나, 제도를 바꾸지 않았다. 여전히 공동 생산방식을 취하고 배급경제를 유지했다. 아무리 적은 부(富)라도 개인에게 허용하면 국가 통제를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두려워했다. 그들에게는 정치적 권력 독점이 경제적 생산성보다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개인 재산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사람들은 무기력증에 빠졌고 ‘발전이 없는 사회’가 되었다. (현재 북한 김정은 정권이 권력 유지를 위해 핵무기 개발에만 힘쓰고 주민들의 삶은 본체만체하는 행태와 비슷하다.)

지속가능한 성장의 핵심 요소는 소유권

좋은 거버넌스란 국가나 기업 등 조직이 활발한 생명력을 갖도록 하는 의사결정 시스템이다. 이러한 생명력의 핵심이 바로 모두 주인이 되는 세상, 즉 개인 재산권의 보장이었다. 여기서 개인 한 명 한 명이 모두 재산권을 가진다는 의미이므로, 사유재산(私有財産)이란 표현보다는 개유재산(個有財産)이란 말이 더 어울려 보인다.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윌리엄 제임스는 ‘진리를 따질 때 반드시 실제적 의미를 따져야 한다.’라고 주장한 실용주의 철학의 대표 학자이다. 그는 “(소유를 잃을 경우) 모두 자아의 상실을 느끼며 우리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게 된다.”고 주장했다.

경제사학자인 더글러스 노스와 로버트 토머스는 <서구세계의 성장>이란 책에서 경제성장의 핵심은 소유권이라고 설명했다. 개인 소유권을 보장한 사회, 즉 개인에게 노동의 대가를 보장해주는 사회가 경제발전을 이룰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서유럽 발전은 효율적 경제조직이 뒷받침하고 있는데, 효율적 조직이란 제도적 틀과 소유권을 수립함으로써 개인이 경제적으로 성공하도록 노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더글러스 노스는 산업혁명을 촉발한 한 원인으로 영국의 특허권 도입을 꼽기도 했다. 현대적 특허법의 모태가 된 영국의 전매조례는 발명자에게 14년간 독점권을 부여하는 게 핵심인데, 도입 시기는 조선에서 병자호란(1636년)이 일어나기도 전인 1624년이었다. 소유와 단순 점유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미국 속담이 있다. “렌터카를 세차하는 사람은 없다. (No one washes a rental car)”

‘수처작주’를 말씀한 임제선사는 무소유를 실천해도 주인의식을 갖고 행복했겠지만, 장삼이사(張三李四) 일반인 시각에서 무소유는 자기 존재의 부정이나 다름 없다. ‘노력 봉사, 열정페이, 노력착취’는 곧 노예처럼 취급받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MZ세대가 연공서열을 싫어하는 이유

좋은 거버넌스에서 주인의식이 중요하고 그 핵심에 개인 소유권이 있다면, 일반 기업에서 임직원에게는 어떻게 주인의식을 심어줄 수 있을까?

먼저 오늘날 많은 기업이 도입하는 우리사주를 들 수 있다. 우리사주는 결국 임직원도 기업의 일정 부분 소유권을 갖고 주인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주식이 없는 임직원에게는 ‘성과 연동 보상’이 주인의식을 위해 필요해 보인다. 특히 젊은 세대는 일은 열심히 했는데 보상은 연공서열에 따라 주는 방식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들은 ‘단순한 연공서열은 공정이 아니다’고 느낀다.

흔히 공공조직은 민간조직보다 효율성과 생산성이 떨어진다. 신상필벌이 지켜지지 않고, 성과에 연동하는 보상이 약하기 때문이다. 공공이나 민간이나 ‘실력보다는 아부가 앞서고, 성과보다는 거짓말과 사기가 판치는 조직’은 좋은 거버넌스라고 할 수 없다. 바꿔 말해서 좋은 거버넌스란 ‘성과 연동 보상, 즉 공정(公正)’이 보장된 거버넌스라고 할 수 있겠다.

오로지 권력만을 지향하고, 개인 재산권을 부정하며, ‘결과의 평등’을 내세운 사회주의 국가야말로 나쁜 거버넌스의 대표적 사례였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아부와 거짓말이 득세하는 나쁜(?) 거버넌스가 자리 잡은 곳은 어디일까?  <ESG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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