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EA 후쿠시마 보고서’ 부정하는 건 ‘글로벌 거버넌스’ 무시 발상
국제기구 인정하지 않으면서 부산국제박람회 유치 호소 힘들어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세계시민 책임·의무 지켜야 생존

[ESG경제=김상민 기자]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일본 명칭 처리수) 방류를 놓고 여야 정쟁이 뜨겁다. 야당인 민주당은 ‘정치적 호재’로 삼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최종 보고서를 ‘깡통 보고서, 일본 맞춤형 보고서’로 깎아내렸다. “IAEA를 신봉하다 큰코 다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과학의 정치화는 안 된다’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우스개 가운데 ‘진실을 말하면 화를 내고, 할 말이 없으면 욕을 한다’는 표현이 있다. 대다수 사람은 진실을 믿는 게 아니라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는 의미다. 후쿠시마 오염수에 관한 국내 공방도 결국 ‘과학적 진실’이 아니라 정파적 성향에 따른 ‘상호 비난’ 수준에서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과거 광우병 괴담이나 사드 괴담처럼.
그렇다면 후쿠시마 오염수를 다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바로 ‘글로벌 거버넌스’의 시각이다.
거버넌스의 진정한 의미는 지배구조가 아니라 협력이며 민주적인 의사결정 시스템이다. (거버넌스의 이해 ① 참조) 그런 의미에서 거버넌스는 정부나 기업, 일반적인 조직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도 적용된다. 지구촌(global village)이란 용어도 세계가 촘촘하게 연결돼 있고 상호 의존성이 높아지는 현상에서 비롯된 말이다.
글로벌 거버넌스, 대항해 시대 이후 지구촌이 상호 연결되며 형
글로벌 거버넌스는 세계 각국이 자급자족하며 따로 살아가던 시대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예컨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속담은 고대 로마 시대부터 전해 내려왔다. 특정한 지역에 가면 그 지역의 문화와 관습을 존중하고 따르라는 의미다. 오늘날에도 이 속담은 여전히 사용된다. 법·제도·문화가 다른 나라를 방문하거나 그곳에서 일할 때 이 속담을 기억하면 매우 유용하다. 갈등을 피하고 더 나은 관계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이란 특정 국가의 국적을 지닌다. 사람들은 오랜 세월 대체로 어느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법과 제도, 덕목을 지키며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렇지만 16세기 대항해 시대가 열린 이후 지구촌이 하나로 연결되면서 사람들에게는 국민뿐만 아니라 세계 시민으로서 덕목을 요구받았다. 세계 시민으로서 지켜야 할 법이 생겨난 것이다.
‘국제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네덜란드의 법학자이자 정치가인 후고 그로티우스. 그는 저서 <전쟁과 평화의 법>에서 전쟁 발발의 정당한 명분을 ‘자기 방위, 재산 회복, 처벌’의 세 가지 요인으로 한정했다. 또 <해양자유론(Mare Liberum)>이란 책에서 공해(公海)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공해란 어느 나라의 주권 하에도 들어가지 않고 세계 어느 나라에도 개방되는 바다를 의미한다.
흔히 ‘공해의 자유(freedom of the seas)'라고 하는데, 이 원칙에 따라 공해는 어느 나라의 국민도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다. 공해 사용의 자유는 선박항행ㆍ어업ㆍ해저전선 부설ㆍ상공 비행ㆍ군사연습의 자유 등을 포함하며, 사용 목적이 한정되어 있지 않다. (공해 개념이 없다면 무역의 99.8%가 배를 통해 이뤄지는 대한민국은 살아갈 방법이 없다) 다만 공해를 사용할 때는 다른 나라의 이익을 합리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조건이 전제된다.
’국제법과 공해의 자유‘가 중요한 것은 이게 개별 주권 국가들이 함께 살아가는 지구촌의 거버넌스 원칙이 되기 때문이다. 개별 주권 국가라서 해서 함부로 타국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는 원칙은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비난을 받는 것도 바로 전쟁 발발의 정당한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1648년 유럽 16개국이 모여 체결한 베스트팔렌 조약은 ’영토 국가가 근대 국가의 초석‘임을 확인한 조약이다. 역사상 최초의 근대적 국제 협약이자 최초의 근대적 국제법을 제정한 사건으로 세계 역사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
유엔의 ’한반도 유일한 합법정부‘ 인정으로 대한민국도 국제사회 일원 돼
국제 사회는 이후 세계 평화를 위해 수많은 조약과 협약을 맺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출범한 국제연맹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탄생한 국제연합(UN)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도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국제법과 각종 조약을 통해 ’진정한 독립국가‘의 지위를 얻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수립됐고, 그해 12월 12일 프랑스 파리의 제3차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결의 제195호 2항에 따라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로 인정받았다.
대한민국과 북한은 1991년 9월 18일 동시에 유엔에 가입했다. 한국은 2021년 7월 2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되었다. 1964년 유엔무역개발회의가 출범한 이해 회원국 지위가 선진국으로 바뀐 첫 주인공이 바로 우리나라였다.
한국은 국제 사회의 일원이자 선진국으로서 국제법에 따른 ’글로벌 거버넌스‘를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고 실제로 하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이 체결·공포한 조약을 통해 형성되는데, 조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고 ’헌법‘에 규정돼 있다. 조약은 여러 명칭이 있다. 조약·협약·협정·약정·결정서·의정서·선언·규정·규약·헌장·합의의사록·각서·교환공문·잠정협정·공동선언 등으로 어떤 명칭을 사용하든지 당사국에 효력을 미친다.
예컨대 북핵 위협에 맞서 우리나라도 핵무기를 갖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핵확산방지조약(NPT) 가입 국가다. 모든 핵무기 비보유국은 NPT에 의거하여 IAEA에게 평화적인 목적으로만 핵을 이용하겠다는 협약을 맺어야 한다
핵무기를 개발하려면 NPT를 탈퇴해야 하는 데 그럼 국제 사회의 제재로 대한민국 자체가 살아남기 힘들게 된다. 우리나라가 핵무장을 하면 일본도 동일한 행동을 할 수 있고, 우리나라 안보의 중심축인 한미동맹도 훼손된다.
또 핵무기 개발이 이뤄지면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할 수도 없어 결국 ’핵무장과 핵개발 주장‘은 안보 포퓰리즘에 가깝다. 이러한 인식은 여당인 국민의힘은 물론 야당인 민주당도 공통으로 갖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까지 IAEA 의장국 …아인슈타인 “민족주의는 유치한 질병”
그런데도 후쿠시마 오염수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은 일본이 돈으로 IAEA를 구워 삶았다고 말한다. IAEA 분담금 비중을 보면 미국(25.1%), 중국(14.5%), 일본(7.8%) 순인데도 중국 얘기는 언급하지 않는다. 한국이 지난해 9월까지 IAEA 이사회 의장국이란 사실도 애써 감춘다. IAEA 조사단에 우리나라 우방국 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사실도 숨긴다. 무엇보다 미국이 "IAEA 원자력 안전기준은 태평양 섬나라 포함, 모든 회원국 합의를 반영한 것"이라며 일본의 입장을 지지했다는 사실도 깎아내린다.
IAEA는 출범 이래 수많은 조사보고서를 내놨으나 전문성과 객관성 논란은 거의 없었다. IAEA를 부정한 나라는 이란과 북한 정도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도 지난 4일 기자회견에서 ’중립적, 과학적, 객관적, 실증적, 학술적‘이란 용어를 반복해가며 ‘과학적 조사 결과의 정치화’를 경계했다.
국제사회의 일원이 된다는 건 권리 못지않게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예컨대 유엔 산하의 권위 있는 국제기구인 IAEA를 내놓고 비난하면서, 또 다른 유엔 관련 기구인 국제박람회기구(BIE)에 가서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를 말할 수 있을까? IAEA를 모욕하는 정치세력은 부산국제박람회 유치를 말할 자격조차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스스로를 ‘세계 시민’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민족주의(국수주의)는 유치한 질병이다. 그것은 인류의 홍역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글로벌 거버넌스’는 글로벌 국가들이 함께 번영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국제법은 물론 국가간 합의 기구인 국제기구의 권위를 존중하고 신뢰해야 한다. 국제 사회가 무도 인정한 사실을 부인하고 혼자서 나대면 ’불량국가 북한‘처럼 왕따가 되기 쉽다.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의 상황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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