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래포구의 악명 ‘바가지와 바꿔치기’는 자기 무덤을 파는 행위
거짓말과 사기에 대한 응징...선진국은 ‘철퇴’ 한국은 ‘솜방망이’
정치인은 국민, 기업인은 소비자, 범법자는 검경이 단죄해야

[ESG경제=김상민 기자] “호객 행위, 섞어 팔기, 물치기(물을 넣어 무게 늘리기). 바가지를 척결하겠습니다.”
수도권의 대표 어시장인 인천 소래포구 상인들이 최근 자정대회에서 이같이 선언했다. ‘바가지와 바꿔치기의 상징, 소래포구’의 이미지를 바꾸겠다는 것. 그렇지만 이틀 만에 “다리 잘린 게를 또 팔았다”란 뉴스가 나오며 자정 노력이 무색해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원래 지명 솔애(좁은 갯가)가 한자로 바뀌면서 소래(蘇萊, 되살아난다)가 됐다는데, 소래포구는 언제쯤 오명과 악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옛부터 어르신들이 자주 하는 말씀에 세상 3대 거짓말이 있었다. 밑지고 판다는 장사꾼의 말,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노인의 말, 시집 안 가겠다는 처녀의 말(요즘은 진실인 듯도 하다)는 말이 그것이다. (요즘 3대 거짓말로는 ‘담배 끊는다, 술 안 마신다. 다이어트 한다’를 꼽기도 한다)
여기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게 상인의 거짓말이다. 동아시아 역사와 문화에서 ‘상인은 속여서 먹고 사는 사람’이었다. 사회의 신분 순서도 사농공상(士農工商)으로 상인이 가장 밑바닥이었다.
‘상인은 속이는 사람?’...‘신용사회’ 확립 위한 법치 부족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은 ‘부패 없는 깨끗한 나라’를 원하면서 상인을 싫어했다. 농민은 곡식과 면화를 생산하는 가장 숭고한 사람들이며, 상인은 스스로 사회적 부를 창출하지 못하고 농민들이 피땀 흘려 번 돈을 빼앗아 간다고 생각했다. 천박한 상인들은 가장 질이 낮은 견(絹, 거칠게 짠 비단)과 포(布, 베)로 된 옷만 입도록 했다. 중농억상(重農抑商)의 사고는 중국인과 한국인의 잠재의식 속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중국과 한국이 그렇게 도덕을 강조했는데도 오늘날의 모습은 정반대로 나타났다. 중국제는 ‘가짜와 짝퉁’의 대명사로 통하고, 속고 속이는 세상에서 ‘속는 사람이 바보’라는 생각이 중국 사회에 팽배해 있다. 범법자 단죄가 법이 아니라, 권력의 기분에 따라 좌우된 때문이다.
한국에서 남을 속이는 사기(詐欺)는 범죄 건수에서 1위를 기록 중이다. 사기범죄는 해마다 늘어 2011년 22만 건에서 2020년에는 34만7,675건에 이르렀다. 올해 들어서도 전국적으로 나타난 전세사기범, 소시에테제네랄(SG) 증권발 주가조작의 라덕연 일당, ‘5개 종목 무더기 하한가 사태’ 등 사기 뉴스가 끊이질 않는다. 여기에 정치인, 대법원장, 공직자, 언론인, 교수, 골프선수 등 각계각층의 거짓말이 연일 화제가 되는 게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거짓말과 사기가 판치는 현실을 보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거짓말과 사기는 ‘신용’이 바탕인 자유시장경제를 망치는 ‘암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유시장경제가 먼저 확립된 유럽은 어떠했을까?
서구사회도 법치 확립에 시행착오 많았다
마르틴 루터(1483~1546)는 종교개혁의 상징이다. 그는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면죄부까지 팔면서 타락해버린 교황청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처음 로마(교황청)를 찾아가는 사람은 사기꾼을 만나러 가는 것과 진배없다. 두 번째 찾아갈 때는 사기꾼의 습성에 감염된다. 세 번째 찾아갈 때는 자신조차 사기꾼이 되고 만다.”
루터가 면죄부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 ‘95개조 반박문’은 종교개혁의 불씨가 되었고 유럽 사회가 새롭게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다고 세상이 금방 깨끗해지는 게 아니다.
지금 최강국인 미국은 다양한 성격의 이민자들이 모여 만든 땅이다. 종교의 자유를 찾아온 사람,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떠나온 사람도 많았으나, 도둑 사기꾼 등 범죄자도 적지 않았다. 여기에는 약탈을 일삼던 해석들도 있었다. 이들은 결코 처음부터 정직하거나 진실하지 않았다. 19세기 말에 미국의 기업인들은 축재를 위해 거짓말 사기 뇌물 매수 협박 폭력 등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아 ‘강도 귀족(Robber Baron)’으로 불리기도 했다. (미국 개척시대를 그린 서부영화에 보면 강도와 사기꾼이 참 많이 나온다)
미국과 유럽은 거짓말과 사기가 만연하면 자유시장경제의 기틀이 무너질 수 있을 것으로 우려했다. 거짓말과 사기에 대해 철퇴를 가하며 강력한 응징에 나섰다.
사법부의 단죄를 받은 대표적인 인물이 ‘폰지 사기(Ponzi scheme)’란 말의 유래인 찰스 폰지. 그는 수익을 기대하는 신규 투자자를 모은 뒤, 그들의 투자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배당(수익금)을 지급하는 다단계 금융 사기 수법의 선구자였다. 찰스 폰지는 1921년 사기 행각이 드러난 이후 1934년까지 감옥생활을 했고, 그 후 국외로 추방돼 말년을 가난에 시달리다가 1949년 사망했다.
찰스 폰지의 대표적 후계자인 버니 메이도프는 총 피해액만 650억 달러에 이르는 폰지 사기를 펼쳤는데, 150년형을 선고받은 후 2021년 감옥에서 죽었다. (메이도프의 장남은 자살했고 차남은 암으로 사망했다. 부인은 거의 파산 상태에서 여전히 소송에 시달리며 연명 중이다.)
테라노스의 창업자인 엘리자베스 홈즈(1984~)는 피 한 방울이면 250개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때 ‘여자 스티브 잡스’라는 얘기도 들었으나, 사기가 들통나면서 지난해 11년3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1990년대에 미 보험회사를 상대로 4억5,000만 달러의 사기를 친 숄람 와이스는 845년의 징역형에 처해졌다.
한국은 거짓말과 사기에 관대
반면에 한국은 여전히 거짓말과 사기에 관대하다. 예컨대 ‘5개 종목 하한가 사태’를 일으킨 강 모씨는 2014년에도 공범들과 코스피 상장사 조광피혁, 삼양통상, 아이에스동서, 대한방직을 상대로 약 1만회에 걸쳐 시세조종을 벌인 혐의(자본시장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면서 징역 2년의 집행유예 4년, 벌금 4억 원이 확정됐다. 감옥에도 가지 않은 솜방망이 처벌이 다시 주가조작의 기회를 준 것이다. SG증권발 주가조작 사태의 주범 라덕연은 2014년부터 불법 투자자문사를 여러 차례 설립했다가 폐업했으나 당국의 감시망에 걸리지 않았다.
라임 사태는 피해 규모가 무려 1조 이상인데, 아직도 그 의혹이 제대로 파헤쳐지지 않고 있다. 옵티머스 사태는 금융감독원 추정 피해액 5,600억원 규모의 대형사기 사건. 주범이자 옵티머스 대표인 김재현에게 역대 대한민국 경제범죄사범 중 최고 형량인 징역 40년이 확정되었다. 그렇지만 연루 의혹을 받은 정관계 인사들은 여전히 단죄의 대상이 되지 않은 채 설치고 다닌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간 증시 3대 불공정거래(미공개 정보 이용·주가조작·부정 거래)로 제재받은 사람은 643명인 데, 이중 23%(149명)는 재범 이상이었다. 4명 중 1명은 과거에 한 번 이상 불공정거래로 적발된 적이 있다는 뜻. 주식 불공정거래의 온상으로 지목되는 유사 투자자문업체는 지난달 2142곳으로 2019년 280건에 비해 4년 만에 8배 가까이 늘었다. 매년 500여 곳의 유사 투자자문업체가 새롭게 나타난 꼴이다.
처벌은 솜방망이다. ‘청담동 주식 부자’로 유명했던 이희진은 불법 투자매매로 피해자 200여 명을 양산하고 시세 차익 130억원을 거둔 혐의로 구속됐으나 겨우 3년6개월간 징역형을 살고 2020년3월 출소했다. 그는 지난 3월 허위 정보를 퍼트려 가상화폐 가격을 올리려 한 혐의로 검찰에 입건됐다.
금융위원회가 2016~2021년 3대 주식 불공정거래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통보한 854명 중 불기소율은 53.5% 457명으로 절반을 넘었다. 주가조작 혐의가 적발돼도 2명 중 1명은 재판도 받지 않았다. 2006년 당시 1,600억원 대 자금과 800여 개 차명계좌를 동원해 자동차 부품회사인 루보의 주가를 조작, 1,100억원 부당이득을 챙긴 제이유그룹 김모 부회장은 겨우 징역 6년형이었다. 감옥에 가도 톡톡히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정직과 신용’이 자유민주주의 번영 기반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경쟁, 시장경제와 계획경제의 주도권 싸움에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가 이긴 원동력은 바로 ‘정직과 신용’ 때문이었다.
사회주의와 계획경제는 목표를 미리 설정하고 국민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없다. 국가가 노동시간과 노동량은 물론 국민의 모든 것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목표 생산량을 달성해야 몸을 온전히 보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생존을 위해서라도 자연스럽게 통계를 조작하고 거짓말을 하게 된다.
과거 동유럽에서 유행했던 말이 ‘공산당은 배급을 주는 척하고, 인민은 일하는 척한다’였다. 소련을 세운 레닌은 거짓말의 달인으로 거짓말에 대한 수많은 명언을 남겼다.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 혁명을 위해서는 거짓말해도 괜찮다.”, “거짓말은 혁명을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이며, 거짓말을 백번 하면 참말이 된다.(정보조작과 반복을 통한 세뇌 전술)” “거짓말을 창조하지 못한 자는 위대한 혁명가가 될 수 없다.” “거짓말은 클수록 좋다.”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옹호자들은 진실을 강조했다. 자유민주주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링컨의 별명은 ‘정직한 에이브(Honest Abe)’였다. 어려서부터 모든 일에 정직하였기 때문이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당신은 일부 사람을 평생 속일 수 있고, 모든 사람을 잠깐 속일 수는 있겠지만, 모든 사람을 평생 속일 수는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위대한 투자자 워런 버핏도 “CEO(최고경영자)를 뽑을 때 진실성, 지능, 열정(energy)의 세 가지를 본다. 만약 진실성이 없다면 지능과 열정이 당신을 망칠 것이다”며 진실성을 으뜸 자질로 꼽았다.
이처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장 큰 자산은 ‘믿음과 신용’이다. 정치인이 국민의 믿음을 잃으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다. 기업인이 고객의 믿음을 잃으면 해당 기업이 망한다. 소래포구처럼 상인이 신뢰를 잃으면 설 자리를 잃는다. 미국의 경우 가장 심한 욕이 ‘거짓말쟁이(liar)’라는 표현이다.
경제학자들이 성장의 요소로 ‘노동(L), 자본(K), 기술’을 꼽는다. 그렇지만 이는 껍데기에 가깝다. 선진 경제, 창조를 촉발하는 경제는 한순간에 이뤄지지 않는다. 수십, 수백 년의 시행착오 거쳐 도덕, 관행, 법률, 신용 등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깊이 뿌리내리며 완성된다. 하드웨어 이상으로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레닌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경쟁에서는 생산성이 높은 쪽이 승리한다”고 말했다. 사기와 거짓말이 판치는 세상에서 생산성이 올라갈 리 없다. 레닌의 거짓말 찬양 자체가 사회주의 체제의 패배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이병철, “무규범한 인간이 늘어나면 나약한 사회 된다”
한국사회는 세계사에 유례가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그렇지만 소프트웨어의 발달은 무척 더뎠고, 여전히 후진성을 면치 못한다는 느낌이다. 그렇지 않다면 돈을 받거나 거짓말을 일삼는 정치인이 이렇게나 설치고, 아부와 국민 속이기에 능한 관료가 정권 가리지 않고 출세하며, 주가조작이나 사기범이 오히려 떵떵거리며 살아갈 수 있을까?
‘정직과 신용’이 기반이 된 ‘좋은 거버넌스’를 구축하려면, 사기꾼과 거짓말쟁이에 단호해야 한다. 거짓말쟁이 정치인은 국민이 단죄하고, 속이는 기업인은 소비자가 단죄하고, 사기범과 주가조작범은 검경이 단죄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한국에는 미래가 없다. 이병철 삼성 창업자는 자서전 <호암자전>에서 법과 도덕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논어(論語)에는 내적 규범이 담겨 있다. 간결한 말 속에 사상과 체험이 응축되어 있어, 인간이 사회인으로서 살아가는 데 불가결한 마음가짐을 알려준다. 법률과는 대극의 위치에 있다. 법도 인간사회의 불가결한 규범이기는 하나, 이미 발생한 인간의 행위밖에 다루지 못한다. 어떤 행위가 발생한 연후에 작용하는 것이 법이다. 행위가 발생하기 이전에는 법은 아무 상관이 없다. 남을 기만하거나 살상하거나 혹은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가 있고, 그것이 발각되어야만 비로소 작용하는 것이 법이다.
인간사회의 규율에 적대하는 행위의 발생을 막는 것이야말로 개개인이 갖는 내적 규범인 것이다. 내적 규범을 상실한 인간, 즉 무규범한 인간이 늘어나는 사회는 과연 어떻게 될까. 함부로 법률만 발동되고 죄인만 늘어난다. 그 결과 사람들 사이에는 불신감이 쌓이고 연대감이 희박해져 나약한 사회로 전락하고 만다.”
이병철 창업자의 말은 공자의 무신불립(無信不立)과 일치한다. ‘사람에게 믿음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즉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미덕은 역시 신뢰(信賴)라는 말인다. 그 적이 바로 거짓말과 사기 아닌가. 오늘도 거짓말을 일삼고 검은돈을 받은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한다’고 언론에 나와 설치는 꼴을 보니 무더운 여름밤이 참 으로 길 것 같다.
[김상민 ESG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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