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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정책 번지수 못찾는 대한민국 정부

  • 기자명 김광기 기자
  • 입력 2023.10.03 08:05
  • 수정 2023.10.15 2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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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공시 의무화 미적거려선 안 돼
ESG는 무역장벽이나 규제가 아닌,
지속가능한 발전 방안으로 인식해야

금융위원회가 ESG 공시 의무화를 1년 가량 유예하는 방안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연합뉴스
금융위원회가 ESG 공시 의무화를 1년 가량 유예하는 방안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연합뉴스

금융위원회가 ESG 공시 의무화 시동을 당초 계획한 2025년보다 1년 늦추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한술 더 떠서 3~4년 유예해 달라는 건의까지 하고 나섰다.

정부가 내세운 명분은 "미국 SEC(증권거래위원회)의 기후공시 최종안이 일러야 올 4분기에 나올 예정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걸 봐야 우리나라 ESG 공시 기준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이런 소식을 접한 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우리 스스로 주체적인 의사결정을 할 생각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공시 의무화 등 글로벌 ESG 정책은 미국이 아닌 EU가 주도

현재 글로벌 ESG 정책을 '이끄는' 곳은 미국이 아니라 유럽연합(EU)이다. 이것은 ESG 영역을 조금이라도 관심 깊게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미국은 트럼프 정부 때 파리기후협약을 뒤집고 석유와 가스 산업을 다시 활성화하는 정책을 펼침으로써 ESG에 역행한 바 있다.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후 파리기후 협약에 재가입하고 오바마 정부 때 세운 온실가스 감축 장기 플랜을 재가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화당 강경파 의원들과 공화당 집권 주 정부들의 반대에 부딪쳐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미 SEC가 스코프3 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공개 의무화 대상을 확정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 의회에서 석유와 가스 그리고 제조공장이 많은 지역의 공화당 의원들이 반대하기 때문이다. 반면, EU는 파리기후협약을 실현하기 위한 실행정책 ’EU 그린 딜‘을 2019년에 발표한 이후 불만 많은 회원국들을 다독여가며 한걸음씩 전진하고 있다.

’EU 그린 딜‘의 목적과 방향은 분명하다. "탈탄소 경제, 순환경제로의 전환을 통한 지속가능한 EU 발전"이다. 이에 따라 EU는 2021년 기업의 지속가능성 보고 지침 CSRD(Corporate Sustainability Reporting Directive)를 제시했고, CSRD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ESRS(유럽지속가능성보고기준)를 지난 6월 확정했다. EU 회원국 기업들은 2025년(2024년 회계년도 자료)부터 ESRS 지침에 따라 지속가능경영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EU의 그린딜 체계.
EU의 그린딜 체계.

우리나라 정부가 글로벌 ESG 정책을 이끌고 있는 EU의 방향성을 따른다면 ESG 정보공개 의무화에 미적거릴 필요가 없다.

안타까운 일은 2020년 11월 국민연금의 ESG 투자확대 발표 이후 불붙기 시작한 우리나라 ESG 열풍은 그 방향성에 있어 번지수를 잘못 찾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정부 ESG 정책은 우물안 개구리 수준

지난 정부가 ESG 정책에서 우물안 개구리를 벗어나지 못했듯이 이번 정부도 역시 그렇다. 우물에서 더 깊은 우물을 파고 있는 느낌이다. 지난 2년여 간 우리 정부는 ESG에 대해 "탈탄소 경제, 순환경제로의 전환, 지속가능한 발전"과 같은 ESG의 본질적 목적과 방향에 주목하지 않았다. 우리 정부가 ESG에 대해 언급한 주요 키워드는 "글로벌 환경규제의 강화, ESG 무역장벽, 환경경영 기업부담 증가, 중소기업 ESG 경영 부담" 등이다.

즉, 우리 정부는 ESG를 지속가능발전 실행을 위한 방법론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역장벽과 규제로 파악한 것이다. 기후위기로 인한 인류생존의 문제, 사회불평등 확대로 인한 사회갈등의 확산 등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로막는 문제에 대해 관심도 없어 보인다.

"장사와 돈"에 치중된 일부 시장 참여자들 관점에서 ESG를 이해하고 목적과 방향성 없이 미국의 눈치만 보는듯한 정부에게 제대로 된 ESG 정책을 기대하는 것은 애당초 무리일까.

TCFD의 시나리오 작성 못하는 기업들

기업들의 사정은 다르다.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들은 유럽과 미국 기업들의 요구에 따라 스코프3 온실가스 배출량 뿐만 아니라 기후위기에 관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상세히 공개해야 한다.

미국 정부는 의무화하지 않아도 애플과 같이 우리 기업들과 거래 관계가 크고 많은 미국의 주요 기업들은 자체적으로 넷제로(온실가스 순배출 제로) 목표 달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업체들에게 ESG 정보를 요구하고 있다. EU의 기업들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기업의 기후위기 대응 정보를 공개하는 글로벌 가이드라인 TCFD는 ESG 정보공개의 주축으로 자리잡았다. 기업의 지속가능성 정보 공개를 위한 글로벌 주요 가이드라인인 GRI, ESRS, ISSB 등이 모두 TCFD 프레임을 내재화했다. 우리 정부도 TCFD를 빼고 ESG 정보공개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TCFD 공시 체게
TCFD 공시 체게

TCFD 보고에서 필수적인 것인 바로 "2℃ 이하 시나리오"다. 산업혁명 이전 온도보다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2℃ 이내로 막아보자는 것이 파리기후 협약의 최종 목표이고, TCFD는 2℃ 이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상황을 가정하여 각 기업의 대응 시나리오를 제시하라는 것이다. TCFD는 파리기후협약의 목표년도인 2050년까지의 시나리오 제시를 권고하고 있다.

2℃ 이하 시나리오 작성의 출발점은 법과 규제, 시장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즉, 국제기구 및 각 국가가 2℃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제시하는 법과 규제를 기업이 준수했을 때 기업 경영에 어떤 변화가 오고 그것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작성해야 한다. 거기에 더해 각국 정부의 신재생 에너지 확대 정책에 따라 화석 에너지 가격의 상승, 신재생에너지 가격의 하락을 예상하여 기업의 미래 재무제표에 반영하는 작업도 해야 한다.

한국에는  2℃ 이하 목표 달성 계획 아직 없어

그런데, 우리 기업들은 2℃ 이하 시나리오 작성에 애를 먹고 있다. 정부가 2℃ 이하 목표 달성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시나리오 작성에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이 불확실하다. 파리기후협약과 TCFD는 205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 실행 계획을 내놓으라고 하는데 우리 정부의 계획은 2030년에 머무르고 있다.

넷제로 달성을 위해서는 신재생에너지 공급확대가 필수다. 미국과 유럽의 기업들이 공급망에 속한 국내 기업들에게 RE100을 요구하고 넷제로의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요구해도 이렇다할 답을 주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은 계속 제자리를 맴돌다 못해 뒷걸음질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정부는 기업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ESG 정보공개 의무화를 연기한다고 했지만, 정말 기업들의 ESG 부담을 줄이고 글로벌 ESG 무역장벽을 넘기 위해서는 신재생에너지 공급부터 늘리는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하루살이에게 내년을 얘기한다는 것

아무리 5년 임기 정부라고 해도 그 이후까지 충분히 생각했으면 좋겠다.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위한다는 생각이 있다면 ESG를 규제와 장벽으로 이해하는 좁은 시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하루살이에게 내년의 일을 얘기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법정스님은 이렇게 답했다.

"하루살이에게도 자식이 있고 또 그 자식의 자식은 내년에도 그리고 10년 후에도 하루를 살 것이다. 부모와 자식의 인연은 모든 인연 중에 가장 큰 인연인데 그 인연을 무시하고 살 수는 없다."

1987년에 브룬트란트 보고서를 통해 발표된 UN의 지속가능발전의 정의는 이렇다.

"(현재 세대가 그들의 자식인) 미래 세대가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 세대의 필요를 충족하는 것." 한마디로 현 세대가 미래 세대의 밥그룻(환경과 자원, 사회 통합과 안전 등)을 키워주지 못할망정 깨버리지는 말자는 것이다.

정부가 단순히 ESG가 아닌 지속가능발전을 진지하게 고민했으면 좋겠다. 우리 기업의 ESG가 성공하려면 지속가능발전이라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하고, 그 그림을 그리는 가장 큰 주체는 바로 정부다.

[유승권 이노소셜랩 ESG센터장]

 유승권 이노소셜랩 ESG센터장
 유승권 이노소셜랩 ESG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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