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10억달러 이상 기업 2026년부터 의무화
기후 관련 리스크와 탄소 감축 수단도 공개해야

[ESG경제=이신형기자] 미국 연방 정부에 앞서 캘리포니아주가 대기업을 대상으로 스코프3 배출량을 포함한 탄소 배출량 공개 의무화를 법제화했다. 스코프 3 공시란 기업이 온실가스 배출 관련 정보를 공개할 때 자기 회사의 직간접 배출량은 물론 공급망 협력업체들의 몫까지 합산해 전부 공시하는 것을 말한다.
가디언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가빈 뉴솜 주지사는 지난 7일 캘리포니아주 의회를 지난달 통과한 탄소 배출량 공개 법안에 서명했다.
온실가스 배출량 공개 대상 기업은 캘리포니아에서 영업활동을 하는 기업 중 연간 매출액이 10억달러(약1조3500억원)를 초과하는 기업이다. 상장사뿐 아니라 비상장사도 매출 기준을 충족하는 기업은 2026년부터 의무적으로 스코프 1, 2 배출량을 공개해야 하고 2027년부터 스코프 3 배출량도 공개해야 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새로 제정된 캘리포니아주법은 GHG 프로코콜에 따라 측정한 탄소배출량을 연례보고서(사업보고서에 해당)를 통해 공개하도록 하고 탄소 감축 수단도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공개 내용에 대한 제3자 인증도 거쳐야 한다. 탄소배출량을 공개하지 않은 기업에 최대 50만달러의 벌금이 부과되고 불성실하게 공개한 기업에는 최대 5만달러의 벌금이 부과된다.
정보 공개 위치를 연례보고서로 정한 것은 공개한 정보에 대해 무거운 법적 책임이 따르는 법정공시의 지위를 갖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해당 기업의 소송 리스크가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로이터에 따르면 기업의 이사는 투자자에게 부정확한 진술을 할 경우 책임을 져야할 수 있고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벌금을 부과하거나 심각한 문제일 경우 사법당국에 고발할 수도 있다. 또한 주주들이 기업이 공개한 정보가 사실을 오도했다고 판단할 경우 기업 임원을 고소할 수도 있다.
스코프3 배출량 2030년까지 면책조항 적용
다만 스코프3 배출량을 공개하지 않은 기업에 대해서 2030년까지 면책조항이 적용된다. 스포크3 배출량 측정의 어려움 등을 고려한 조치다. 세계자원연구소(WRI)에 따르면 2021년 현재 북미 기업 중 스코프 3 배출량을 공개하는 기업은 54%로 유럽의 71%보다 적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도 연내에 기후공시 의무화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SEC는 지난해 공개한 초안에서 스코프 1과 스코프 2 배출량 공시 의무화 방침을 밝혔으나, 전면적인 스코프3 공시를 요구하는 캘리포니아주와 달리 스코프3의 경우 ▶스코프 3 배출을 포함하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한 기업이나 ▶스코프 3 배출량이 중대한(material) 기업에 한해 공시 의무화를 도입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캘리포니아주 정부의 이번 법 제정에 대해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는 지지 의사를 밝혔으나, 캘리포니아주 상공회의소는 이 법이 제정되면 기업의 비용과 업무량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했다.
미국에서 가장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적인 캘리포니아주는 엑손모빌과 셸, 셰브론, BP, 코노코필립스의 5개 정유사와 전미석유협회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소장에서 캘리포이나주는 이들 정유사가 수백억달러 상당의 피해를 입혔고 화석연료에 의한 피해를 축소해 대중을 기망했다고 주장했다.
캘리포니아주는 또한 기후변화에 따른 피해 복구를 위해 이들 정유사가 제공한 자금으로 기금 조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뉴솜 주지사는 X 메시지를 통해 “캘리포니아는 대규모 오염을 일으킨 기업에 책임을 묻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주의 탄소 공개 법제화, SEC에 영향 줄 듯
가디언에 따르면 게리 겐슬러 SEC 의장은 지난달 열린 의회 청문회에서 캘리포니아주의 탄소배출량 공개 의무화가 관련 연방 규정(SEC 기후공시)의 “기준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캘리포니아주에서 (탄소배출량을) 공개한다면 기업들이 이미 공시 정보를 확보하게 돼 본질적으로 공시 비용이 덜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SEC는 코노코필립스, 필립스 66, 전미석유협회(API) 등을 포함한 정유업계로부터 기후공시의 요구 조건을 완화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고 가디언은 보도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특정 기업이 캘리포니아 법에 따라 공개한 3 배출량이 스코프 2나 스코프 3 배출량보다 많다면 이를 중대하지 않다며 SEC 기후공시에 포함하지 않는 게 정당화되기 힘들 것이라고 법조인들은 지적했다.
로펌 페니위크(Feniwick)의 론 레웰린 변호사는 "스코프 3 배출량 공개를 의무화하는 캘리포니아주의 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스코프 3 배출량을 공시하지 않는 기업들은 어떻게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설명할 필요도 없이 스코프 3 배출량이 중대한 사안이 아니라고 주장하기가 더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 ESG 정책 번지수 못찾는 대한민국 정부
- 글로벌 기업 75%, ESG공시 준비 "아직 안 됐다"
- 美 SEC, 펀드 ‘그린워싱’ 단속 강화...'80% 룰' 엄격 적용
- ESG 공시 논란 가열...그린피스 법정공시 도입 헌법소원
- 美 SEC, "4분기에 기후공시 기준 확정 목표...업계 의견 충분히 검토"
- 금융위, "ESG 공시 2026년 이후로 연기"…재계 요청 수용
- ESG 공시 의무화 1~2년 연기 실효성은?
- 탄소배출 국내 검증 시동...3개 검증기관 선정
- 애플, 탄소 감축 비용 "소비자에 전가하지 않겠다"
- 엑손모빌 CEO "석유메이저 '악(惡)'으로 몰면 수백만 명 빈곤 빠뜨려"
- SEC 관계자들, 기후공시 '스코프3 완화' 가능성 시사
- SEC 4월 기후공시 기준 확정 예정...스코프3 완화 가능성
- IBM, 기업 스코프 3 배출량 수집 시스템 출시
- SEC 기후공시 안착하려면...소송 등 '넘어야 할 산' 남아
- 미 SEC의 ESG공시, 스코프3 빠졌다고 우습게 봤다간 '큰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