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P, “연임 위한 밀실 투표” 비판...비위 제보도 받아
백 사장 4연임, 국민연금·기업은행 입김이 변수로
1대 주주 기업은행, '18년에도 “셀프 연임”이라며 반대

[ESG경제=권은중 기자] 행동주의펀드 FCP(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가 이번달부터 시작 예정인 KT&G 사장의 후보 선임 절차가 공정하지 않다며 다각도로 제동을 걸고 나섰다.
KT&G의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이미 KT 사장과 포스코 사장 연임 과정 절차의 공정성을 제기해 연임을 저지시킨 바가 있어 KT&G 사장 선임 결과가 주목된다. 현 정부 들어 옛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된 포스코, KT 등 이른바 '주인없는 기업' 최고경영자(CEO) 셀프 연임이 국민연금 등에 의해 저지되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FCP는 백 사장을 비롯해 KT&G 임직원은 물론 차기 사장 선임에 관여하고 있는 사외이사들의 비리행위를 제보받겠다며 익명 채팅방을 개설했다. FCP제보센터라는 이름으로 개설된 이 채팅방은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 같은 이름으로 검색하면 개별 입장이 가능하다.
이상현 FCP 대표는 “지금까지 이메일과 전화로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며 “더 많은 분들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일대일 익명채팅방을 개설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FCP는 이 채팅방을 통해 KT&G와 계열사, 협력사의 임직원들로부터 거버넌스 개선을 위한 의견을 구해 주주활동에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이 대표는 “사외이사는 원래 경영진을 감시하는 역할이지만 이미 경영진과 2인3각을 이룬 지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며 채팅방 개설 이유를 설명했다.
앞서 3일 FCP는 지난달말 공개된 차기 사장 선임 절차가 불공평하다며 입장문을 내고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기도 했다. FCP가 문제 삼은 것은 지배구조위원회-사장후보추천위원회-이사회로 이어지는 3단계 사장 후보 선임 기구가 모두 백 사장 재임 중 선임된 사외이사로 채워져 있다는 점이다. FCP가 사외이사들의 비위 등의 부당 행위를 제보받겠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사외이사들, 모두 현 사장 재임 중 선임”
지난해 8월 공시에 따르면 KT&G의 지배구조위원회 5명은 전원 현직 사외이사로 구성됐다. 사장후보추천위원회도 전원 사외이사로 채워질 예정이다. 이사회 역시 8인 가운데 6명이 백 사장 재임 중 선임된 사외이사다. KT&G는 지난달 28일 사장 후보 공개모집을 시작하며 차기 사장 선임을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
FCP는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행동주의 사모펀드다. 지난해 3월 FCP는 주주 자격으로 KT&G 정기주주총회에서 현금 배당 확대, 추천 사외이사 선임 등을 제안했지만 대부분 부결됐다. FCP가 보유한 KT&G 지분은 1% 수준으로 알려졌다.
백복인 사장은 2015년 KT&G 공채 출신 첫 사장에 올라 2018년과 2021년 연임에 성공했다. 하지만 백 사장은 아직 공식적으로 4연임 의사를 밝히진 않았다. FCP는 2015년 백 사장 취임 후 KT&G 주가와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며 백 사장 4연임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KT&G는 앞서 사장 선임 과정이 불공평하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차기 사장 선임 과정을 완전 개방형 공모제로 도입했다. 포스코와 마찬가지로 현직 CEO 셀프 연임을 위한 꼼수라는 비판의 근거가 된 ‘현직 사장 우선 심사제’도 지난해 말 폐지했다. 하지만 FCP는 사장 선임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사외이사 문제를 거론하며 “말장난”이라며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국민연금, KT·포스코 잇따라 반대해 주목
이 과정에서 1대 주주인 기업은행의 행보가 주목된다. 지난해 7월 국민연금을 따돌리고 KT&G의 최대주주(6.93%)로 올랐다. 기업은행은 지난 2018년에도 백 전 사장의 첫번째 연임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KT&G는 2018년 1월 사장 지원 자격을 ‘KT&G 전·현직 전무 이상’으로 한정해 이틀 동안 사장 공모를 낸 뒤, 서류 심사와 면접을 각각 하루 만에 끝내고 백 사장 연임을 확정해 비판을 샀다. 이때, 기업은행은 주주들을 대표해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연금의 행보도 주목된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KT 사장과 포스코홀딩스 회장 연임에 잇따라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구현모 전 KT 대표이사 사장이 연임 의사를 밝혀 이사회에서 적격 판정을 받고서도, 국민연금 반대에 가로막혀 결국 하차했다. 국민연금은 또 포스코 역사상 최초로 3연임을 도전했던 최정우 회장에 대해서도 “공정하고 투명한 기준”을 명분으로 압박해 자진 사퇴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국민연금이나 기업은행은 현재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국민연금 공단 관계자는 “사장 임명 절차에 대해선 어떤 입장도 내지 않는 게 원칙”이라고만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소유분산기업의 지배구조 선진화를 요구하고 있는데다 대표적인 예로 특정 CEO의 장기 집권의 발판을 마련해 주는 ‘황제 연임’을 지속적으로 문제점으로 꼽아와 국민연금이나 기업은행이 4연임 시도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연금은 중소기업은행과 미국계 사모펀드 퍼스트이글인베스트먼트에 이은 KT&G의 세 번째 대주주(지분율 6.31%)다.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은 지난해 7월 KT&G 지분을 일부 매각해 3대주주로 바뀐 동시에,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일반 투자’로 바꿨다. 이는 국민연금이 주주로서 의결권을 적극 행사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미국계 퍼스트이글인베스트먼트는 백 사장 편으로 분류된다.
KT&G, 꾸준한 주주환원정책으로 반전 모색
이에 대해 KT&G 관계자는 “지배구조위원회가 1월 말 사장 후보 심사대상자(쇼트리스트)를 확정하기 전에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인선자문단의 의견을 구할 것”라며 사장 선출 과정의 투명성 확보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표결로 가면 43%의 지분을 갖고 있는 외국계 주주들의 표심이 중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KT&G의 주가와 영업이익은 지난해 예년에 견줘 좋지 않았지만 시가 배당률은 4%로 높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KT&G 관계자는 “지난 3년 동안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 등을 더한 총주주환원액은 약 2조7500억원으로 높은 수준의 주주 환원 정책을 펼쳐 왔다”며 “총주주환원액은 당기순이익의 93% 수준인데 국내 시총 톱10 기업 평균은 22%에 불과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KT&G는 한국 기업으로는 드물게 주식 가치를 높이기 위해 꾸준히 자사주를 소각해 왔던 점도 눈길을 끈다. KT&G 감사보고서를 보면, 최근 3년간 약 1조원의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했다. 지난해 말 향후 3년간 역시 1조원의 자사주를 추가 매입해 매각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만약 백 사장이 중도사퇴를 하지 않는다면 3월 주총에서 치열한 표대결이 점쳐진다.
한편 한국ESG평가원의 2023년 정례 상장기업 ESG 평가결과를 보면 KT&G는 종합 등급 A+로 최상위권을 기록한 가운데, 특히 거버넌스가 S로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 그만큼 거버넌스 관련 제도와 실천에 뛰어나다는 평가다. 거버넌스 S등급 KT&G가 과연 백 사장의 4연임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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