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김광기 칼럼] ESG 공시 놓고 ‘민낯’ 드러낸 재계와 정부

  • 기자명 김광기 기자
  • 입력 2024.07.01 10:13
  • 수정 2024.07.05 07:14
  • 댓글 0

SNS 기사보내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시 의무화, ‘최대한 늦추고 보자’ 대응
ESG를 ‘피하는 게 상책’인 규제로 인식
지속가능보고서 조차 대부분 외주 대필
앞서 공시하며 내재화하면 실익 더 클 것

대한상공회의소가 발간한 ESG 글로벌 공시기준 가이드복.
대한상공회의소가 발간한 ESG 글로벌 공시기준 가이드복.

[ESG경제신문=김광기 기자]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초안을 놓고 정부와 재계가 보이고 있는 대응은 한마디로 실망스럽다. ESG를 가급적 피하거나 미루는 게 상책인 ‘귀찮은 규제’ 정도로 인식하는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는 최근 기업 설문조사와 세미나 등을 통해 ESG 공시 의무화에 대한 입장을 취합했고, 정부에 곧 전달할 계획이다. 그 내용을 보면 ▶공시 시점을 5년 뒤인 2029년(‘28 회계연도 정보)부터, ▶공시 범위에서 스코프3(협력업체 정보) 제외, ▶저출산 대책 등 제101조 공시 반대 ▶사업보고서 통합 법정공시 최대한 유예 등이다.

이를 보면 우리 기업들의 ESG경영에 대한 기본 인식과 철학, 글로벌 동향에 대한 이해, 실행 의지와 진정성 등에 의문을 갖게 만든다.

국내에도 ESG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게 벌써 4년째. 그동안 ESG 경영을 선포하고, 총수나 CEO들이 앞장서 ESG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ESG위원회 조직을 갖추고,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내고, ESG 평가등급을 잘 받았다고 홍보하고, 언론사 행사에 나가 상을 받던 일들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정부도 문제다. 세계 주요국 중 가장 늦게 ESG 공시 의무화 초안을 제시한 가운데 그나마 언제(공시시점)부터, 무엇(공시범위)을 공시할지 시장이 궁금해 하는 내용은 쏙 빼고 의견수렴을 하겠다고 한다. 과연 탈탄소 등 ESG 지속가능성 이슈를 기업 경영과 자본시장 투자에 접목시키려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사람이든 조직이든 결정적 선택의 순간이 오면 속내를 드러내게 마련이라 했던가. ESG 의 실천을 외쳐온 국내 기업과 정부가 공시 의무화 문제에 직면해 지금 보이는 모습이 딱 그렇다.

ESG를 피하고 싶은 규제로 보는 시각

가장 먼저 지적할 것은 ESG에 대한 기본 인식이다. ESG 공시와 공급망 실사 등이 법제화되는 것은 국제적 추세다. 규제라면 규제다. 돈이 들고 자칫 민형사상 소송에 휘말릴 우려가 따른다.

하지만 ESG 규제는 다른 경제 규제들과 성격을 달리한다. 반드시 어떤 절대적 측정치를 달성하도록 요구하고, 이를 어기면 벌을 주는 방식이 아니다. 예컨대 탄소배출량을 얼마 줄여야 하고, 인권·윤리경영은 어디까지 해야한다고 강제하지 않는다. 다만 어떤 의사결정 및 관리체계 아래서, 어떤 목표를 갖고, 어떤 결과를 내고, 그게 어떤 위험이나 기회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지 그 정보만 투명하게 공개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 정보가 가짜인 것으로 판명되면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소송을 당할 수는 있다. 이는 현재 기업들이 재무지표 상 적자를 낸다고 처벌받지 않지만, 그 정보가 허위로 드러나면 처벌받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는데까지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만 거짓없이 투명하게 공개하면 문제될 게 없다는 얘기다.

ESG 정보 공개를 위한 데이터관리시스템 구축이 부담일 순 있지만, 현재 범정부 차원에서 이를 지원할 계획이며, 민간 전문기관들도 관련 서비스 판매 경쟁에 나서 크게 걱정할 게 없다.

대한상공회의소가 한국경제인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상장사협의회 등과 공동으로 6월 25일 개최한  ‘국내 ESG 공시제도에 대한 경제계 토론회’ 모습. 공시 의무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컸다. 사진=ESG경제
대한상공회의소가 한국경제인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상장사협의회 등과 공동으로 6월 25일 개최한  ‘국내 ESG 공시제도에 대한 경제계 토론회’ 모습. 공시 의무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컸다. 사진=ESG경제

글로벌 동향 모르는 우물안 개구리

일단 늦춰놓으면 마음이 좀 편할지 모르지만, 큰 코 다칠 수 있다. 유럽연합(EU)을 필두로 당장 내년부터 ESG 공시 의무화가 시작된다. 아시아의 일본·싱가포르·말레이시아·태국, 중남미의 멕시코·브라질까지 ’26~28년 순차적으로 시행에 들어간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기후공시가 소송으로 표류하고 있지만, 미국 내 기업 본사가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주는 독자적으로 ‘27년부터 기후공시 의무화를 시행한다.

재계의 희망대로 한국이 ’29년부터 ESG 공시 의무화에 들어가면, 중국(‘30년 시행)과 더불어 세계 꼴지 대열에 끼게 된다. 세계 10위권 경제 선진국으로서 위상과 국제적 책임에 걸맞지 않은 모습이다. 이는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글로벌 투자자금의 국내 유입을 막아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더 심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대다수 기업들은 국내 공시를 늦춰봐야 별 실익이 없다. 해외에서 현지 법인이나 공장을 가동하고, 완제품은 물론 부품·소재를 수출하는 기업들은 현지 규제에 따라 ESG 정보를 공시해야 한다. 국내에서 안한다고 풀리는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가급적 빨리 하면서 적응하는 게 상책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말이 있다. 어차피 맞을 매라면 빨리 맞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상책이라는 걸 군대 생활을 해본 사람은 안다. 엎드려 맞을 순서를 기다리는 게 사람을 더 힘들게 한다.

ESG에 진정성을 갖고 대응하는 기업이라면 두려울 게 없다. 오히려 ESG 내재화를 앞당기며 전 임직원의 참여를 이끄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목표와 계획을 뚜렷하게 세우고 그 성과들을 정기적으로 꼼꼼하게 기록·확인하는 학생들이 성적을 쉽게 올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국내 약 180개 기업은 ESG 경영을 한다는 증명으로 매년 6월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한다. 이들 중 80~90%가 외부 컨설팅회사에 외주를 주는 방식으로 이 보고서를 만든다. 여기에 드는 비용이 매년 2억~3억원이다. 한마디로 족집게 과외 선생에게 돈을 주고 시험 답안지를 대신 써달라고 하는 셈이다.

그 내용을 보면 굳이 공시하지 않아도 되는 홍보성 자화자찬이 상당 부분이고, 글로벌 공시 기준에서 요구하는 필수 항목은 수치 몇 개 제시하고 대충 넘어가는 사례도 많다. 글로벌 기업들의 ESG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발간 사례를 보면 한국과 달리 대부분 자체 제작이다.

ESG 경영의 실태와 성과는 내부 구성원들이 움직인 결과이고 그 내용은 구성원들이 누구보다 잘 기록할 수 있다. 외주는 책자 디자인과 데이터 인증 정보면 충분하다. 실제 국내에서도 그렇게 해서 지속가능보고서 발간 비용을 10분의 1 정도로 대폭 줄이는 기업들이 나오고 있다. ESG 공시 의무화 시대가 열리면 이게 저절로 가능해 진다고 볼 수 있다.

정부의 안일한 대응이 기업을 게으르게

ESG 공시 의무화의 키는 사실 정부가 쥐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21년에 ESG 공시 의무화 일정을 ‘2025년부터’로 제시했고,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2026년 이후’로 유예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런데 지난 4월 내놓은 공시기준 초안에서는 아예 공시 일정을 제시하지 않아 혼선을 자초했다. 이제껏 ESG 공시 초안을 발표한 세계 주요국 중 공시 일정을 제시하지 않고 무한정 열어놓은 상태에서 의견수렴에 들어간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이에 따라 재계와 자본시장에서는 정부가 ESG 관련 정책에 이렇다할 의지가 없으며, 기업들 요구에 순응하겠다는 시그널을 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만약 그렇다면 결코 기업을 도와주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나중에 밀린 숙제를 한꺼번에 하느라 더 많은 비용과 고통을 치르게 만들 수 있다. 미리미리 강하게 단련시키는 게 기업을 도와주는 길이다.

정부는 탈탄소 등 글로벌 ESG 동향을 면밀히 파악해 기업들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피할 수 없는 길이니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게 피해를 줄이고 오히려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시그널을 분명히 줘야 한다.

기업들이 우려하는 사업보고서 통합 법정공시 문제는 과도기적인 한국거래소 공시로 적응 기간을 충분히 주고, 스코프3 배출량 등 데이터의 정확성을 기하기 힘든 부분들에 대해선 면책 조항을 두는 방식 등으로 기업들을 안심시킬 필요가 있다.

ESG 공시의 근본 목적은 기후변화 등에 대응한 '리스크 관리'이지 정확한 ‘데이터 측정’이 아니다. 데이터는 어디까지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다. 

Back to the Basic

기본으로 돌아가 보자. ESG경영과 관련 정보의 공시는 기업들이 환경과 사회 이슈에 대응해 리스크를 줄이며, 경제와 사회, 지구환경의 지속가능성에 기여하겠다는 자발적 실천이 그  출발점이다. 누가 시켜서, 뭔가 보여주려고 하는 요식 행위가 아니다. 최선을 다해 실천하고 그 결과를 담담하게 이해관계자들에 알리면 된다. 부족했던 부분은 개선과제를 찾아 다시 실행해 나가면 된다.

정부 규제와 글로벌 법제화가 무서워 시작한 게 아니고 스스로 해보겠다고 약속했던 일이니, 솔선수범하여 앞장서 보면 어떨까. 현 정부가 ‘2026년 이후’라고 했는데, ‘2026년부터’ 하겠다고. 유럽 다음으로 미국보다도 빨리 말이다. 다만 해보면서 부족한 부분들을 꼼꼼하게 개선해 나갈테니, 처음에는 쉬운 것부터 좀 느슨하게 해보자고 정부에 제안하면 어떨까.

[김광기 ESG경제신문 발행인]

                                                                김광기 ESG경제 발행인
                                                                김광기 ESG경제 발행인

 

관련기사

저작권자 © ESG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하단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