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처럼 닥치고 지지하는 양당정치
가짜뉴스와 반과학적 주장, 로비 낳아
파리협정 탈퇴, 화석연료 개발 부추겨
미국 내 진영논리 극복해야 해법 나와
한국, 6월 대선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취임 직후 파리기후협정에서 탈퇴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에 지지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AFP=연합뉴스]](https://cdn.esgeconomy.com/news/photo/202504/10777_15207_5338.png)
[ESG경제신문=강찬수 환경전문기자] 도널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된 지 석 달 가까이 됐다. 트럼프가 촉발한 글로벌 관세 전쟁이 거센 폭풍처럼 몰아닥친 탓에 주요 관심사에서 밀려난 듯하지만, 그의 기후환경 정책의 퇴행은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당장 11일(현지시간)에도 AFP나 CNN 등 외신은 트럼프 행정부가 의회에 해양대기국(NOAA)의 기후 관련 연구실과 연구를 감독하는 사무기구 예산을 삭감해달라고 요청한 사실을 전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요청안이 그대로 실행된다면 당장 내년부터 NOAA의 연구 부문 예산 가운데 75%가 뭉텅이로 사라지게 된다. 이와는 별도로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정부효율부(DOGE)는 NOAA 직원 1000명 이상을 해고하기도 했다.
지난 9일에는 우주항공국(NASA)이 미국 지구변화연구프로그램(USGCRP)의 기술직원 20여 명을 지원하는 계획을 해지했다고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가 보도했다. 행정부의 지시로 NASA가 컨설팅 업체인 ICF인터내셔널과의 계약을 해지했다는 것이다.
이번 조치로 4년마다 발행되는 미국 국가 기후 평가(NCA) 보고서의 발표가 지연되거나 내용이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2월 말 중국 항저우에서 열렸던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회의에 국무부 직원과 과학자들의 참석을 허용하지 않았다. 당시 IPCC 회의는 제7차 기후변화평가(AR7) 보고서의 내용과 발간 시기를 결정하는 중요한 회의였는데 미국 과학자들이 불참함으로써 7차 보고서 발간이 지연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미 해양대기국(NOAA) 산하 연구소에서 일하다 해고된 한 직원이 항의 집회에 참석해 피켓을 들고 있다. [AP=연합뉴스]](https://cdn.esgeconomy.com/news/photo/202504/10777_15211_156.png)
환경보호국에 심한 핍박을 가하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환경적인 행보는 환경보호국(EPA)에 대한 핍박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당장 취임 전부터 트럼프의 정권 인수팀은 수도 워싱턴 DC에 있는 EPA 청사와 여기서 일하는 7000여 명의 공무원을 수도 밖으로 내보내는 방안을 논의했다.
행정부는 2월 초 EPA에 기후변화와 대기오염 등을 담당하는 직원 1100명에게 언제든 해고될 수 있다고 경고했고, 2월 14일에는 실제로 근무 기간이 1년이 안 된 수습 직원 388명을 해고했다.
DOGE는 EPA 인력 수십 명을 감축했다가 철회하기도 했고, 3월 11일에는 EPA가 5만 달러를 초과하는 자금을 집행하려면 사전에 DOGE의 승인을 받으라고 요구했다.
EPA의 새 수장으로 취임한 리 젤딘은 EPA 지출을 65% 이상 삭감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젤딘은 연방 하원의원(뉴욕) 시절에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PA) 등을 포함해 최소한 18개의 환경 관련 법안에 반대표를 던진 전력이 있다.
EPA는 급기야 3월 12일 전기자동차 장려책 등 전임 조 바이든 대통령 시절의 ‘그린 뉴딜’ 정책을 폐기한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내년 1월 파리기후협정 정식 탈퇴 전망
사실 트럼프 행정부의 반환경적인 행보는 일찍 예견됐다. 집권 1기(2017년 1월~2021년 1월) 때인 2017년 6월 트럼프 행정부는 파리 기후협정 탈퇴를 선언한 바 있다. 파리협정이 미국 경제에 불리해서 미국 국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탈퇴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파리협정 제28조는 협정이 발효되고 3년이 지났을 때부터 유엔에 통지서를 보낼 수 있고, 통지 1년 후에 탈퇴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파리협정은 2016년 11월 4일에 발표됐고, 실제 미국의 탈퇴는 2020년 11월 4일에야 가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20일 취임 직후 주유엔대사에게 파리협정에서 탈퇴한다는 서면 통지서를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측에 즉시 보내도록 지시하는 행정명령을 발령했다. 이번에는 탈퇴 절차가 1년밖에 걸리지 않을 전망이다.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에 따르면 파리협정 당사국이 탈퇴를 통보하면 ‘탈퇴서가 유엔에 접수된 날부터 1년 후’ 또는 ‘탈퇴서에 명시된 날’ 중에 더 늦은 날에 탈퇴의 효력이 발효된다.
미국이 파리협정에서 탈퇴하면 리비아·이란·예멘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꼴이 된다. 현재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3%를 차지하는 배출량 세계 2위 국가이고, 온실가스 누적 배출량 세계 1위인 미국의 무책임함을 보여주는 처사다.
파리기후협정에서 탈퇴하면 미국은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설정하고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의무를 지지 않게 되고,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 출연도 거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한 석탄화력발전소. [AP=연합뉴스]](https://cdn.esgeconomy.com/news/photo/202504/10777_15209_5855.png)
민주당 집권 주 정부와 정면 대결 양상
트럼프의 이런 행보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장악한 일부 주(州)에서는 기존의 기후정책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캘리포니아는 신차 가운데 무공해 차량 비율을 2026년 35%, 2030년 68%로 늘린 뒤 2035년부터는 100% 무공해 차량만 판매되도록 의무화한 바 있다. 바이든 정부는 임기 말인 지난해 12월 캘리포니아의 이 정책 추진을 허가했다. 미국 내 11개 주에서도 캘리포니아의 정책을 따라 2035년까지 휘발유 차량 판매를 금지키로 했는데, 이는 미국 자동차 시장의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다.
하지만 공화당은 연방 의회에서 캘리포니아주의 2035년 무공해 승용차 판매 의무화 정책을 폐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공화당 측은 1996년 제정된 ‘의회검토법’을 활용할 생각인데,의회검토법은 과반의 찬성으로 신규 규제를 뒤집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캘리포니아주의 휘발유차 금지 조치는 연방 규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의회 검토법 적용시 법적 논란이 되고 있다.
여기에다 트럼프는 지난 8일 화석연료를 제한하려는 주 정부의 법률·규정·정책·관행을 식별하고 이를 불법화하기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주 정부와 정면충돌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백악관은 “많은 주에서 미국의 에너지 우위와 경제적·국가적 안보를 위협하는, 이념적 동기에서 비롯된 기후변화 정책 또는 에너지 정책을 제정했거나 제정 과정에 있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행정명령에 반발도 거세다. 당장 민주당 소속의 뉴욕주 주지사인 캐시 호컬 등은 “연방 정부가 주정부의 권한을 박탈할 수 없으며 행정명령으로 주법이 저지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권토중래(捲土重來)
집권 1기 당시에도 트럼프는 오바마 행정부의 기후환경정책을 뒤집는 조치를 100건 이상 취했고, 실제로 98건을 실행에 옮겼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의 ‘퇴행’에서 복구하기 위한 노력을 진행했다. 그 결과, 행정명령 등은 서명만으로 복원이 가능한 것은 되돌렸지만, 일부는 지리한 법정 다툼을 벌여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따라 일부(37%)만 다시 복원됐고, 나머지 73%는 복원이 되지 못했다.
집권 2기인 트럼프 행정부는 1기 때보다 반환경적인 정책을 더욱 거세게 밀어붙이고 있다. 반환경정책을 펼치기에는 1기 집권 때보다는 유리한 상황이다. 1기 때와는 달리 ‘환경과의 전쟁’에 제동을 걸 만한 인물이 부족한 것도 이유다 .
1기 집권 때는 트럼프의 비논리적이고 파괴적인 계획에 맞설 수 있는 합리적인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런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다. 반기를 들만한 사람은 아예 배제했다.
과거에는 정부 안팎에서 강한 반대가 있었고, 각종 소송으로 이어졌다. 절차적 정당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정책이 다시 복원된 경우도 있었다. 이번에는 트럼프가 4년 동안 정치 경력을 더 쌓았다는 점이 다르고, 훨씬 더 치밀하게 준비했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정책 뒤집기’가 소송까지 이어진다고 해도 전보다 부담이 적다. 대법원이 보수 절대 우위 구조로 재편된 만큼 트럼프 당선인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과학계 불신하는 보수층 지지 결집 효과
트럼프의 반환경적, 반과학적 태도는 어디서 연유했을까.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 중 상당수는 보수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 공화당 내에서도 기후변화에 대한 회의론이 강한 편이다. 특히 일부 복음주의 기독교인들과 산업계 이해관계자들은 정부 규제를 반대하는 경향이 있다. 트럼프가 “기후변화는 사기”라고 주장했던 것은 반(反)엘리트 정서를 자극, 과학계를 불신하는 보수층의 지지를 결집하는 전략에 따른 것이란 시각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환경적 태도는 미국의 화석연료 산업 활성화를 중요한 경제 정책으로 내세운 것과 관련이 있다. 석탄 및 석유 산업의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일자리 창출과 경제 성장, 물가 안정을 촉진하려 한다는 것이다.
‘작은 정부’와 ‘자유 시장’을 강조하는 트럼프는 환경 규제가 기업 활동을 방해한다고 판단한다. 민주당 정권에 의해 강화된 환경 규제를 철폐하고, 연방 정부의 개입을 줄이려는 정책을 추진하는 이유다.
여기에 개인적 신념과 정치적 브랜드도 한몫하고 있다. 트럼프는 본인 스스로 비즈니스맨 출신으로서 규제 완화를 통한 경제 성장을 강조해왔다. 그는 “기후변화는 중국이 미국 제조업을 약화시키기 위해 만든 개념”이라는 주장까지 하면서 반(反)기후변화 정책을 정치적 아이덴티티로 만들었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가 NOAA나 EPA, NASA, IPCC 등의 전문가를 해고하고 연구를 방해하는 것도 이유가 있다. 이들 기관과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가 트럼프의 기후정책을 공격하는 부메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트럼프의 기후정책이 과학에 기반을 두지 않고 있음을 트럼프 자신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진영논리가 정책 판단 왜곡, 비판 기능 마비
일부에서는 트럼프의 기후정책이 미국의 민주·공화 양당 체제의 진영논리 속에서 자라난 ‘괴물’이라는 시각도 있다.
멀리 1980년대 이후 석유회사는 기후 과학을 불신하게 만드는 로비 활동을 이어왔고, 때로는 ‘가짜뉴스’도 매우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양당 사이의 지지가 스포츠처럼 변질되고 당파 정치화되면서 ‘가짜 뉴스’가 창궐하게 됐다.
진영논리 탓에 선거에서 이슈와 정책에 따라 정당을 선택하기보다는, 스포츠에서 자기 팀을 절대적으로 응원하는 것처럼 정당을 먼저 선택해 지지하도록 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빨강과 파랑의 경쟁은 소속감과 정체성을 부추기고, 그룹 내 이런 분위기는 진영 외부의 아이디어, 증거 및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진영 내부 규범을 따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더 강한 소속감을, 더 강한 소속감은 규범을 더욱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이제 기후변화에 대한 조치에 반대하거나 지지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옳고 그름을 벗어나 수백만 명의 미국인의 문화적 정체성의 일부가 돼 버렸다. 석유회사는 공화당이 장악한 주와 스윙 보트(swing-vote) 주에 자금 살포와 로비 활동 및 허위 정보 확산을 집중했다.
정치권도 이런 분위기에 올라탔다. 네이처 인간 행동(Nature Human Behaviour) 저널에 게재된 최근 논문을 보면, 연구진은 1879년부터 2022년까지 미국 의회 의원들의 800만 건의 연설에서 사용된 정치적 수사를 분석, 연설에서 사용된 언어가 데이터와 사실에 더 중점을 두는지, 아니면 개인적 신념과 주관적 해석에 더 중점을 두는지 파악했다.
그 결과, 1976년 이후 의회 연설에서 ‘사실’은 지속해서 감소했고, 개인 의견과 주장이 급속히 늘기 시작했다. 2021년 이후 공화당의 연설에서 ‘사실’의 하락은 훨씬 가팔랐다.
진영논리에 갇힌 정치에서는 정책의 질이 뒷전으로 밀리고, 과학과 사실조차 정치적 무기로 변질된다. 기후변화처럼 인류 전체가 직면한 문제마저도 정치적 ‘프레임 전쟁’의 일부로 소비될 뿐이다.
트럼프의 기후정책은 단순한 정책 실패가 아니다. 그것은 진영논리가 어떻게 정책 판단을 왜곡시키고, 비판의 기능을 마비시키며, 결국 공공의 미래를 위협하는가를 보여주는 경고의 사례다. 한국 사회, 한국 정치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할 점이다.
트럼프의 정책 뒤집기에도 한계는 있어
지난 5일 미국에서는 트럼프 정책에 반발, ‘국정에서 손을 떼라’는 의미의 ‘핸즈오프'(Hands Off)’ 시위가 대대적으로 열렸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민권 단체, 노동조합, 참전용사 단체 등 150곳의 단체가 50개 주 전체에서 1300개 집회를 열었다. 60만명 이상이 참가 신청한 것으로 추산됐다. 이처럼 트럼프의 독주가 계속될수록 시민이나 야당인 민주당 측의 반발도 그만큼 더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은 트럼프의 기후정책으로 인해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화석연료 사용은 확대하는 반면에 전기 자동차 보급에는 소극적이고, 해상 풍력 확대에도 반대하기 때문이다. 전임 바이든 행정부조차도 당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제시한 탄소제로 로드맵에서 벗어난 상태였는데, 거기서 훨씬 더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가 문을 닫았던 석탄화력 발전소를 재가동하려 해도 이미 늦어버린 정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재생에너지와 비교했을 때 경제성이 없기 때문에 재가동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 1기 때부터 대폭 늘어나기 시작한 재생에너지 시장은 이미 대세가 됐기 때문에 트럼프로서도 되돌리기 어렵다.
기후행동에 반하는 극우 국제연대 촉발할 수도
트럼프의 기후정책 방향은 국제 사회의 기후변화 대응 노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파리협정 재탈퇴 추진은 국제사회의 기후 위기 대응 의지를 꺾는 ‘도미노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제기되고 있다. 법적 구속력 없이 신뢰와 리더십에 기반을 둔 신기후체제(기후변화협약과 파리기후협정)에서 세계 최대 경제국이 취하는 ‘자국 이기주의’ 태도는 다른 국가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당장 트럼프가 일으킨 관세 무역 전쟁 소용돌이 속에서 유럽연합(EU)이 기후정책을 후퇴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과의 경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과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유럽의 극우 정당의 선전(善戰)이 맞물리면서 각종 선거에서 가장 큰 패배자는 기후 문제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러시아·우크라이나 및 가자지구 전쟁, 인플레이션, 포퓰리즘의 부상에 여러 나라에서 기후 문제는 주요 의제에서 밀려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와중에 국제사회에서 극우 세력이 반기후 연대를 형성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기후 재정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후퇴한다면, 개발도상국들이 필수적인 기후 재원을 확보하기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3월 7일 미국은 ‘공정한 에너지전환 파트너십(Just Energy Transition Partnership)’ 탈퇴를 선언했다. 이 협력체는 미국과 유럽연합을 포함한 선진국이 45억달러를 신흥국의 에너지 전환에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것으로, 미국의 탈퇴는 전 세계적인 기후변화 대응에 균열을 일으킨 또 하나의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물론 ‘부식성 강한 영향력’을 고려할 때 트럼프가 집권하는 동안 차라리 미국이 국제 기후 회담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사실 더 낫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공통 분모 찾아 협력해야 진영논리 극복 가능
트럼프 폭풍이 몰고온 ‘기후 대응 체제의 위기’는 극복돼야 한다.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기후 위기가 그만큼 심각하고, 바로 발등에 떨어진 불이기 때문이다. 산업화 이전 대비 기온 상승을 1.5℃로 묶기 위해서는 인류에게 허용된 탄소 배출량 상한선을 지켜야 한다.
그게 바로 탄소 예산(carbon budget)인데, 지금 같은 속도로 인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면 4년 3개월 후에는 그 예산이 바닥이 난다. 남은 4년여 동안 인류가 크게 달라지지 않으면 1.5℃ 목표는 달성하기 어렵다.
앞으로 국제 기후 협상 테이블에서 미국의 빈자리는 중국과 유럽연합(EU)이 메꾸고 주도권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의도와 달리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위상만 키울 수 있다.
결국 트럼프 폭풍을 바른 길로 이끌 해법은 미국에서부터 찾을 수밖에 없다. 세 번째 집권까지 꿈꾸고 있는 트럼프를 제어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의 유권자들이다.
무엇보다 미국 내 당파적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 정치인들이 진영논리의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치적 성향과 일치하는 기후정책에만 집중하면 분열이 심화될 뿐이고, 효과적인 기후 대응책은 찾을 수도 없다.
진영논리를 허물기 위해서는 어린이의 건강과 지역 사회의 안전 등과 같은 공유 가치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이러한 공유 가치는 이웃과 제가 누구에게 투표했는지와 관계없이 지역 정치적 의제에서 최우선 순위로 떠오를 수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역시 당파를 초월한 대응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민주·공화 양당 소속의 24명의 주지사로 구성된 연합인 미국 기후연합(US Climate Alliance)의 역할이 기대된다. 기후변화에 대한 미국인을 나눠놓는 당파적 장벽을 허물려면 야심 차고 생산적이며 모범적인 ‘연합’의 구축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경우 공화당이 장악한 상당수 지역에서 그에 따른 감세와 지원 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도 전면적인 철폐는 못할 전망이다. 이런 지점에서도 양당의 연합은 가능할 것이다.
한국, 정도를 걷는 것이 최선의 방책
대통령 선거를 앞둔 한국에서는 기후변화 이슈가 헌법 개정이나 국민연금, 의료 개혁 등 다른 뜨거운 이슈에 밀려 본격적인 논의 주제에서 다소 비켜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기후 이슈를 조금만 넓은 시각에서, 긴 안목으로 둘러본다면 그렇게 소홀히 다룰 문제는 아니다.
트럼프 정권은 짧지만, 인류 사회는 2030년, 2050년 이후에도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대한민국도 트럼프 폭풍과는 상관없이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등 온실가스 감축 정책은 강화해야 한다.
탈탄소 정책이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는 수단이기도 하고, 신산업 경쟁력을 키우는 밑거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과 같은 국제사회의 대응 역시 우리에게도 이러한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결국 한국은 미래세대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당장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기후위기 대응 원칙에 따라 철저하게 준비하고 당당하게 대응하는 것, 정도(正道)를 걷는 것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트럼프의 기후정책에 대응하는 최선의 방책이 될 것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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