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들, 기후목표에 집중하다 은행의 지배구조 리스크는 간과
부도 SVB, 리스크책임자 장시간 부재...규제당국도 감독 소홀
전문가 “ESG 한 요소에 집중하면 탈나...세 측면 다 챙겨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위치한 SVB 본사 정문을 보안 요원이 지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위치한 SVB 본사 정문을 보안 요원이 지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SG경제=이진원 기자] ESG펀드도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의 후폭풍에서 자유롭지 못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ESG펀드들이 ESG, 즉 환경·사회·거버넌스 중 기후목표 등 환경 측면에 과도하게 골몰하다가 거버넌스 리스크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피해를 보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ESG펀드임을 ‘표방’하거나 ESG투자를 ‘목표’로 내세움으로써 유럽연합(EU) 기준에 ESG펀드로 분류되는 915개 펀드가 SVB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된 것으로 파악됐다.

사스자 베슬릭 넥스트젠ESG의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이는 ESG 점수만 곧이곧대로 믿고 투자하는 게으른 자산운용사들이 많다는 뜻”이라며 “SVB 사태는 탄소 발자국에 올인하는 펀드 운용사들이 거버넌스 리스크를 적절히 관리하지는 않고 있었다는 걸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베슬릭 CIO가 언급한 ‘ESG 점수’란 SVB가 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MSCI)의 ESG평가에서 A등급을 받은 걸 두고 하는 말이다.

SVB, 클린테크 기업들과도 거래 

ESG펀드들은 본래부터 친환경 재생 에너지 기업들에 대한 투자를 선호하는데, 이 기업들이 가장 많이 거래하는 은행이 SVB다. SVB는 벤처업체들을 주로 상대하지만 클린테크 기업들에게도 주요 자금줄 역할을 해왔다. 청정에너지에서부터 농업에 이르기까지 기후와 지속가능성 분야 고객 수만 1,550곳 정도인 것으로 추산된다.

시울프서스테이너빌러티컨설팅을 운영하는 HSBC홀딩스의 고위 간부 출신 레베카 셀프는 이와 관련해 “ESG의 3대 요소 중 한 가지, 즉 환경만을 보고 ESG 포트폴리오를 운용하려는 발상 자체가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SVB에 최고리스크책임자도 장기간 공석 

SVB에 거버넌스 리스크가 있었다는 사실은 14일(현지시간)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의 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연준이 SVB 파산 사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SVB 내에 작년 상당 기간 최고리스크책임자(CRO)가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복수의 소식통이 블룸버그에 전했다.

이는 SVB 내에 은행을 경영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생길 수 있는 리스크 및 관련 기회를 책임 있게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임원이 부재했다는 의미다.

이런 문제가 있었음에도 SVB는 규제당국의 감시를 피해왔다. 규제당국이 초대형은행들에 대한 감시에 집중하다보니 SVB는 엄격한 감시망에서 벗어나 있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SVB는 미국 내 16위권 금융회사다.

전문가들 “거버넌스에 신경 써야”

전문가들은 ESG투자업계에서 자산운용사가 사회 및 거버넌스 리스크에 대한 적절한 ‘실사(due diligence)’를 하지 않고 기후 포트폴리오 구축에 몰두할 때 SVB 파산과 같은 사고가 터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실바람 라지고팔 컬럼비아대 회계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위기가 터졌을 때나 G, 즉 거버넌스에 대해 걱정할 뿐 주가만 오르고 있으면 G를 말하는 사람이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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