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국내 철강 생산∙소비기업 인식 조사
소비 기업 150곳 중 그린철강 구매 목표 세운 기업 단 한 곳
글로벌 추세 역행… “뒤처진 준비로 수출 경쟁력 약화” 우려

포르쉐 차체 조립 과정. 자동차 산업은 대표적인 철강 수요 중 하나로, 포르쉐는 스웨덴의 저탄소 철강사 'H2그린스틸'과 오는 2026년부터 저탄소 철강인 '그린철강'을 공급받기로 하는 계약을 지난해 10월 체결했다. (사진=H2그린스틸)
포르쉐 차체 조립 과정. 자동차 산업은 대표적인 철강 수요 중 하나로, 포르쉐는 스웨덴의 저탄소 철강사 'H2그린스틸'과 오는 2026년부터 저탄소 철강인 '그린철강'을 공급받기로 하는 계약을 지난해 10월 체결했다. (사진=H2그린스틸)

[ESG경제신문=김현경 기자] 산업계 전반의 탄소중립 달성 요구에 따라 전 세계 철강업계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소화한 ‘그린철강(Green Steel)’ 개발 및 상용화에 나서고 있다. 자동차, 선박, 건설 등 철강을 사용해 제품을 만드는 글로벌 기업들도 자사 및 공급망의 탈탄소 전환을 위해 그린철강 구매에 나서는 등 세계적으로 그린철강에 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 철강 소비 기업 150곳에 관련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단 1곳만 "그린철강 조달 목표를 세웠다"고 답하는 등 국내 철강 소비 기업들은 이 흐름에 매우 뒤처져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은 18일 이러한 내용이 담긴 보고서 ‘한국 철강산업의 그린철강 전환’을 발표했다. 국내 철강 생산 및 소비기업의 그린철강 인식을 조사한 것은 이번 보고서가 최초로, 이번 조사엔 철강 소비기업 150곳과 생산기업 50곳이 참여했다. 이들은 그린철강 소비(생산) 경험과 의향, 향후 소비(생산)에 관련된 목표수립 여부, 그린철강을 위한 추가 지불 의향와 관련된 질문에 답했다.

생산기업 58%, 소비기업 90%... "그린철강 목표나 계획 없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7%를 차지하는 철강산업은 철을 만드는 생산 공정 자체에서 대규모 온실가스 배출을 피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었다. 자연상태 철광석을 쇳물로 녹이는 과정에서 석탄인 코크스를 환원제로 사용해 녹을 제거하며 대량의 이산화탄소를 내뿜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핵심적인 그린철강 기술로 '수소환원제철'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환원제로 코크스가 아닌 재생에너지로 만든 그린수소를 사용하고, 쇳물을 만들 때 재생에너지 전력을 이용한 전기로를 이용해 철강 생산 공정의 탄소 배출을 0에 가깝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티센크루프, 아르셀로미탈 등의 해외 유수 철강기업들은 각국 정부 지원 하에 수소환원제철의 상용화를 서두르고 있는 실정이다. 스웨덴의 저탄소 철강사 'H2그린스틸'은 대규모 그린철강 생산 공장을 내년부터 가동하는 것을 목표로 건설 중이며, 이미 포르쉐와 벤츠, 볼보 등 유수의 자동차 업체들과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한 포스코는 수소환원제철 기술인 '하이렉스(HyREX)'를 개발하고 있으나, 2027년에나 시험 생산 플랜트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조사 결과, 국내 철강 생산 및 소비 기업 모두 그린철강 생산과 사용 준비가 미미한 수준으로 드러났다. 특히 그린철강 전환을 놓고 소비 기업과 생산 기업 간의 인식 차이가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에 참여한 생산 기업의 58%가 “그린철강에 대한 목표도 없고 향후 목표에 대한 계획도 없다”고 답했으며, 소비 기업은 그 비율이 90%에 달했다.

반면 아직 목표를 세우진 않았어도, 생산기업의 42%는 향후 목표 수립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으나, 같은 응답을 내놓은 소비기업은 9%에 불과했다. 국내 그린철강 소비에 대한 신호가 미약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래프=한국 철강산업의 그린철강 전환(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그래프=한국 철강산업의 그린철강 전환(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그린철강 수요가 공급을 초과할 정도로 빠르게 증가하는 해외 상황과 달리, 국내 철강기업들이 그린철강에 소극적인 이유는 가격 때문인 것으로 확인됐다. 소비기업은 “비싼 가격 때문에 목표수립을 하지 않는다(62%)”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생산 기업 역시 ‘원가 상승(31%)’, ‘소비자 요구 없음(21%)’ 순으로 소극적 대응의 원인을 가격에서 찾았다. 

다만 생산기업과 소비기업 모두 ‘그린철강이 미래 경쟁력에 있어 중요하다’는 것엔 공감했다. 5점(매우 그렇다) 척도로 조사한 항목에서 소비기업은 평균 3.57점, 생산기업은 3.72점으로 나타났다.

그린철강 수요 확대, "정부 적극적 개입 필요"

보고서는 철강 소비 기업에서 나타난 미약한 그린철강 구매 신호는 철강산업의 전환 노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판로가 불확실하면 생산 기업이 선뜻 투자에 나설 수 없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넷제로 달성을 위해서는 그린철강 도입이 필수적이며, 이를 외면하는 기업들의 넷제로 목표는 현실적인 변화 없이 목표만 제시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린철강에 대한 준비 미흡은 수입품에 탄소비용을 부과하려는 글로벌 규제에 따라 한국 철강산업 및 국산 철강을 사용한 기업들의 수출경쟁력 약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유럽연합(EU)는 ‘탄소국경세’로도 불리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오는 2026년부터 본격적으로 실시해 탄소 관세를 부과할 방침이다. 미국이 추진 중인 청정경쟁법(The Clean Competition Act)도 철강을 비롯한 수입제품에 대해 톤당 55달러의 탄소세를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특히나 이번 조사에서 “향후 그린철강 구매를 고려하고 있다”고 답한 소비 기업 8곳 중 5곳이 수출 경쟁력에 민감한 자동차 업종이라는 점도 글로벌 무역질서에서 그린철강의 중요성을 보여준다고도 보고서는 덧붙였다.

남나현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선임연구원은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그린철강 수요 촉진의 열쇠”라고 강조하며, “그린철강 기준 확립과 공공조달 확대로 수요를 촉진하고, 그린철강 생산시설 투자에 대한 재정 지원과 그린 수소 및 재생에너지 확대로 생산기업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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